명동성당 지하 고해소를 찾아올 때는 풀잎에 매달린 아침 이슬을 하나씩 가져오세요 추수가 끝난 들녘의 노을을 들고 와도 좋고 상고대 핀 흰 강변을 그대로 가져와도 좋아요 무엇보다도 명동성당 지하 고해소를 찾아올 때는 먼저 은행에 들러 당신의 돈을 다 찾아 배고픈 거리에 볍씨 뿌리듯 뿌리고 오세요 쓰러진 눈사람이 일어나 돈을 주워 가면 빈손에 가득 눈사람의 눈물을 담아 오세요 당신도 인생의 눈길을 함부로 걸어 눈길에 난 당신의 발자국이 길이 되지 못했지만 명동성당 지하 고해소를 고요히 찾아올 때는 병든 아내나 노모의 손을 꼭 잡고 오세요 고해소 문 앞까지 찾아올 수는 있지만 내 문을 두드릴 수 없는 당신을 위해 나는 항상 밖으로 영원히 열려 있으므로 고해소 문을 두드릴 수는 있지만 나를 열고 들어올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