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화롯가 이야기들

불국사에서 [정호승]

행복나무 Glücksbaum 2022. 10. 25. 03:31

불국사에 가서 불국은 보지 못하고
불국사우체국 부근만 서성거렸다.

우체국 앞 신라장 여관 담 너머로
백목련이 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우체국 창가에 앉아 편지를 쓰다가
부치지도 않고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부지런히 전화를 걸고 있었다.

나는 혹시 그들이 불국에 전화를 거는가 싶어
전화번호부를 일일이 뒤져 전화를 걸었으나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아무도 받지 않았다.

불국사 저녁 종소리 속으로 날아가는
산새 소리가 들리고
다보탑 돌사자가 홀로 포효하는 소리도 들려왔으나
불국사에 가서 결국 불국은 보지 못하고
청운교 앞에서 관광 기념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만 쓸쓸히 따라갔다.


시, 정호승


[13. März.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