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말과 말들...

뻔뻔한 김문수.., ‘나, 김문수를 좀 안다.’

행복나무 Glücksbaum 2025. 5. 29. 23:14

이런 걸 보다보면, 어떻게 한때 노동운동가로서 조지아 (그루지아)에서 그 명성을 날렸던 스탈린이 결국에 가서 철권의 통치자가 됐는지, 그 심리적 배경을 알 것 같다. 현실이지만, 각종 반항적 운동의 크고 작은 "수령님", "의장님", "대표님", "지도자님" 등등 속에서는 노동/민중 해방이 아닌 권력 장악을 꿈꾸는 이들은 늘 있어 왔다. 단, 스탈린의 경우에는 승리한 혁명의 지도자 중의 한 명이 그 동료들을 거의 다 도살한 뒤에 혁명이 낳은 국가를 그 손에 넣은 것이다. 경우에는, 미완의 혁명을 지도하려다가 결국 소기의 목표 달성에 패배한 일개 "수령"이, 적진에 투항하여 전향을 통해서라도 그 권력의 꿈을 실현해보려 한 것이다. 그 옛 동료들을 고문하고 죽였던 그 과거 적장의 손을 잡으면서라도 권력, 오로지 권력....

정말, 이런 인생을....뭐 넷플릭스 TV-드라마로 만들면 교훈적인 의미도 적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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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글:
같은 대학을 나왔고, 같은 노동운동을 하였으며, 같은 민중당에 몸담은 적이 있다. 자연인 김문수는 장점이 많은 사람이다. 젊은 날 김문수가 선택한 '그 지독하게 힘든 노동운동'에 대해서 나는 늘 경의를 표했다.

그런데다. 집 앞에 나붙은 선전벽보가 요즘 나의 영혼을 괴롭히고 있다. 벽보 속의 김문수는 내가 알고 있던 과거의 노동운동가가 아니고 헌정파괴집단의 앞잡이가 되어 있다.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무런 '뉘우침'이 없다. 모든 것이 정정당당하단다. 벽보를 보면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올라오는 것이 있다. 해도 해도 이것은 아니지 않는가?

김문수는 윤석열을 두둔하였다. 다른 모든 국무위원들이 일어나 국민에게 사죄하는데 딱 한 국무위원만 사죄하길 거부하였다. 그 자가 김문수였다. 김문수의 '정정당당'은 윤석열의 내란행위를 정정당당하게, 뻔뻔하게, 옹호하겠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전두환도 그랬다. 2천여 광주 시민을 살상한 자가, 어느 날 정당의 간판을 '민주정의당'이라고 내걸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는 평화로웠다. 마치 애미닭과 병아리가 놀고 있는 닭장에 삵쾡이를 풀어놓은 격이었다. 전두환은 헬기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3천 명의 공수부대원들을 투입하였다. 그렇게 학살극을 벌인 자가 어느 날 국민 앞에 나서서 '민주와 정의'를 외칠 때 우리는 엎어졌다.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도 뻔뻔할 수가 있는가?
전두환의 뻔뻔함을 계승한 것이 김문수의 정정당당이다.
김문수는 집요한 사람이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갈 위인이다. 그 어떤 변절도, 그 어떤 죄악도 김문수의 내면에선 정당화된다. 김문수는 그 동네에서 크기 위해서 '악마의 손'을 잡을 필요가 있음을 절감했나 보다. 2015년 11일, 대구공고의 총동문회 체육대회가 열리고 있는 학교를 찾아가 김문수는 전두환의 손을 잡았다.

아직도 오월광주의 진실은 규명되지 않고 있다. 5월 21일, 그날 집을 나간 자식이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시체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행방불명자가 240여 명에 달한다. 사살한 시체를 흔적도 없이 유기하도록 명령을 내렸음이 분명하다.

전두환의 손을 잡고 큰 김문수, 그는 이번 망월동에서 또 한 번의 변신을 하였다. "오월 광주, 피로 쓴 민주주의"라고 적었다. 아무 부끄러움 없이 정정당당하게 적었다. 1980년 5월 광주의 현장을 지휘한 자는 정호용이었다. 정호용은 전두환 학살극의 대리인이요, 집행자였다. 알고 보니 김문수는 정호용에게까지 도움을 구했다.

김문수의 변절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는 안병직의 제자이다. 안병직의 제자 이영훈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옹호한다. 이영훈은 일왕이 조선의 국권을 강탈하였다는 사실을 굳이 외면하는 사람이다. 학교를 짓고, 은행을 설립하고, 철로를 놓는 모든 행위를 후진국 조선을 위한 '투자'로 간주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영훈은 위안부에 대한 성착취를 계약에 의거한 성매매 행위로 간주하는 것이다.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김문수의 발언은 그가 안병직을 따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윤석열의 내란을 두둔하고, 학살자 전두환과 정호용의 손을 잡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는 김문수는, 전태일에게 한자를 가르쳐주고, 도루코에서 노동조합운동을 하고, 서노련으로 탄압받던 노동운동가 김문수가 아니다. 2025년 5월의 김문수는 한국현대사의 모든 훼절을 한 몸으로 비호하는 범죄집단의 대변자이다. 친일파를 정당화하고, 학살자를 옹호하고, 내란세력을 방어하는 반민족, 반민주 집단의 수장이다.

"나는 방탄복을 입지 않아요"라며 김문수는 자신의 당당함을 과시한다. 아니다. 그것은 국민을 눈속임하는 적반하장의 기만술이다. 윤석열이 무슨 짓을 하였던가? 북파공작원(HID)을 동원하였다. 북파공작원은 요인암살을 임무로 활동하는 특수군이다.
김문수는 방탄복을 입게 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는가? 먼저 정치인의 신변을 위협한 자는 윤석열이었다.

김문수의 가슴 속에는 역사나 민족이 없다. 삶에 대한 성찰이 없다. 그를 움직이는 건, 오직 출세이다. 1989년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김문수가 내가 몸담고 있던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에 가입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단, 하나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조직의 대표로 받들어달라는 요구였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제안이어서 우리는 거절하였다. 김문수는 자신의 이름을 팔고 다니는 속물임을 나는 그때 알았다.

지난 시절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젊음을 바친 분들이 많다. 김민기는 그 어마어마한 작곡을 하고서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늘 자신을 '뒷것'이라고 불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이끌면서도 이름 '석 자' 내놓길 꺼리는 분들이 많다. 김정남 선배처럼 말이다. 10만 명이 넘는 학생운동가, 노동운동가들이 다들 공익(公益)을 위해 사익(私益)을 버렸다.

이대로 가면 우리 사회에 도덕불감증이 번질까 우려스럽다. 조상들이 물려준 소중한 가치인 염치(廉恥)를 우리가 지금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괴롭다. 5월 27일 새벽 4시, 윤상원은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고교생, 문재학과 안종필도,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그렇게 지킨 민주주의인데, 왜 이렇게 우리의 민주주의는 비틀거리는지, 안타깝다.


글, 황광우


(사)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