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대선을 치렀다. 2-30대 투표 결과.., 과거로 가자는 젊은이들.
마침내 대선을 치렀다.
12월 3일에 계엄이 성공했다면 정상적인 선거는 폐지되었을 것이다. 투표장에서 도장을 찍으며 만감이 교차.
극우와 혐오의 힘을 막아야”를 공유했는데, 그 측면에서 어제 대선 결과는 양가적 감정을 갖게 한다. 한편으로 이재명 후보가 승리한 것은 내란 세력을 심판하고자 한 유권자의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하지만, 김문수-이준석 후보의 득표율 합산이 49.4%로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과 맞춘 듯이 똑같았다는 것은 역사의 경고처럼 보인다. 극우-혐오 정치를 대표하는 두 후보의 득표율 합계가 ‘여차 하면 집권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은, 윤석열의 파면 후에도 한국 민주주의가 여전히 매우 취약하다는 뜻이다.
여러 각도에서 대선 결과에 대한 분석과 성찰이 앞으로 이어지겠지만, 어제 눈에 띄었던 것은 2030대 남성의 투표 결과였을 것 같다.
지난 주 글에서 선거 전 마지막 한국갤럽 조사에서 18~29세 남성의 63%, 30대 남성의 59%가 이준석+김문수 후보를 지지한다는 점을 주목했는데, 어제 실제 투표에서 20대 남성의 이준석+김문수 지지는 그보다 상당히 더 높게 나왔다.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남성의 37.2%가 이준석 후보에, 36.9%가 김문수 후보에 투표하여 합계 77.3%가 양 후보를 지지했고, 30대 남성은 두 후보 각각 25.8%, 34.5%로, 합계 60.3%였다. 그에 반해 20대 여성은 58.1%, 30대 여성의 57.3%가 이재명 후보에 투표했고, 특히 20대 여성은 5.9%가 권영국 후보에 투표해서 권 후보의 전체 득표율 0.98%를 크게 상회했다(첨부 사진, 좌측 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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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0대 대선과 비교해 보겠다. 20대 남성의 58.7%, 30대 남성의 52.8%가 윤석열 후보에 투표했다. 2025년 대선에서는 20대 남성의 김문수+이준석 득표율이 3년 전의 윤석열 득표율보다 18.6% 높아졌고, 30대 남성은 7.5% 높아졌다. 특히 20대 남성의 보수 투표가 더 크게 증가했다. 국민의힘 정권이 내란을 일으켜 실시하게 된 대선인데, 국민의힘 대선 후보 김문수와 국민의힘 당 대표였던 이준석의 득표는 더 확장된 것이다.
분석한 바에 의하면, 대선, 총선, 지선 등 주요 선거에서 2030대 유권자 내에 성별에 따른 투표 성향의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총선이었고, 그후 2017년 대선, 2020년 총선, 2022년 대선, 2025년 대선으로 오면서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는 추세이다. 다른 연구에서 청년 세대 내 남녀 정치성향 차이가 200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의견도 보았다.
이 같은 청년 세대 내 성별간 차이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하건 간에,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현실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그리고 2030대 남성 내에 보수 정치의 사회적 기반이 적잖게 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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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2030대 남성 중에는 ‘보수 투표’를 하는 유권자 비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폭력적, 반민주적 태도를 가진 사람의 비율도 적지 않는다. 앞서 올린 페북 글에서는 ‘지나친 페미니즘의 영향을 막기 위해서라면 법 규칙을 어기거나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데 대한 동의율이 2030대 남성의 30%에 달한다는 올해초 조사 결과를 언급했는데, 오늘은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한 태도를 보겠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올해 1월에 실시한 조사에서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한 의견을 묻는 문항이 있었는데, 18~29세 남성의 무려 23.6%, 30대 남성의 21.1%가 "상황에 따라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낫다"고 응답해서, 성별X연령 집단 중에 70대 남성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민주주의나 독재나 상관없다"는 응답을 합한 수치는 20대 남성이 37.4%, 30대 남성이 35.7%로 모든 성별X연령 집단 중에서 가장 많았다.
그에 반해 2030대 여성은 '독재 선호'가 각각 9.1%, 4.8%로 모든 성별X연령 집단 중 최저였고, '상관 없다'를 합한 비율도 각각 19.1%, 13.5%로, 50대 남성(17.5%)과 더불어 가장 낮았다.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제도보다 항상 낫다"는 응답이 가장 많은 3개 집단도 30대 여성(86.5%), 50대 남성(82.6%), 20대 여성(80.9%)이었다. 40대 남녀와 50대 여성도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매우 높게 나타났다.(첨부 사진, 좌측 하단)
- <2025 EAI 양극화 인식조사>.
https://www.eai.or.kr/new/ko/pub/view.asp?intSeq=22687&board=kor_issuebrief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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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여러 측면에서 문제적인 모습이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면 “2030남성/청년 남성/이대남이 보수화, 극우화되고 있다”는 담론은 이제 이의의 여지가 없는 걸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 현실은 언제나 성급한 단언을 허락하지 않는 복잡성을 갖고 있다. 지난 번 페북 글에서 극우-혐오 성향을 보이는 2030대 남성의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대남 극우화’, ‘청년 남성 보수화’ 등의 단순한 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2030대 남성은 지표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며, 시기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한다. 선거에서의 투표 선택, 정당 지지율, 계엄에 대한 태도, 윤석열 탄핵 찬반,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 성평등이나 성폭력에 대한 인식,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한 인식 등, 각도에 따라 다르다. 대부분의 지표에서 진보 성향 비율이 높은 2030 여성과 달리, 2030 남성의 분포는 비일관적이고 모순적이다. 그러므로 ‘어떤 측면에서’ 2030대 남성의 점점 더 많은 비율이 보수적으로 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들의 ‘다른 측면’을 제거하는 단순한 시선은 오해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계엄과 서부지법 폭동을 옹호한 국민의힘 후보 김문수의 득표율이 2030대 남성 중에 35~36%에 달했다고 해서, ‘2030 남성의 극우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는 동기는 다양하기 때문에, 그런 결론은 성급할 수 있다. 지난 4월 4일의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선고 직후에 한국갤럽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탄핵 인용이 “잘못된 결정이다”는 응답이 20대의 경우 11%에 불과해 전체 평균 25%보다 훨씬 낮았을 뿐 아니라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낮았다(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 619호 2025 년 4월 2주). 20대 여성의 부정평가율이 아주 낮았다고 가정해도 20대 남성의 부정평가율 역시 매우 낮을 수밖에 없는 결과이다.
올해 2월 시사인-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서부지법 폭력 사태에 대해 "저항권 행사"라고 응답한 비율이 18~29세 남자 중 19%, 30대 남자 중 21%로 전체 평균 20%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에 반해 65~70%의 2030대 남성이 "법치주의 부정으로 도저히 용납 불가"라고 응답했다. 그런데도 계엄, 윤석열, 전광훈의 편에 섰던 김문수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높았다는 것은, 그에게서 어떤 다른 긍정적 측면을 보았으며 그것이 그의 잘못보다 커보였다는 뜻일 거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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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슈에 관한 청년 남성들의 의식도 ‘보수화’로만 규정하기 어렵다. 2030대 남성들의 3분의 2 이상이 ‘페미니즘’에 대해 매우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동성애자에 대해서는 어떨까? 2021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동성결혼 법제화" 찬성 비율을 성별X연령별로 보면 남성의 경우 18~29세, 30대, 40대, 50대, 60세 이상이 각각 65%, 57%, 26%, 25%, 17%로 2030대 남성의 찬성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동성애도 사랑의 한 형태"라는 문항에 대해서도 남성은 20대부터 82%, 74%, 56%, 56%, 32%로 나타나서 2030대 남성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 청년 남성들의 동성애에 대한 이 같은 태도는 최근 몇 년간 다른 여러 조사에서도 확인되었다.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448호, 2021년 5월 3주) (첨부 사진, 우측 상단)
https://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1210
최근 수 년간 수집한 많은 자료에서 얻은 중간 결론은, 지금 청년 남성들의 가치 기준은 명확히 보수적이라기보다는 유동적이고 비일관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청년 남성들은 왜 이렇게 유동적, 비일관적이며 그것의 함의는 무엇인가? 그리고 왜 보수 정치는 청년 남성의 보수적 잠재성을 정치적 자원으로 극대화하는 데 성공하는 데 반해, 민주당이나 진보 정당들은 청년 남성의 민주적, 진보적 잠재성에 충분히 접속하지 못하고 있는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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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대남 극우화’, 또는 ‘청년 남성 보수화’ 등의 담론에 동의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같은 담론의 언어적 함정 때문이다. 독일은 지난 10년 사이에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등에서 대규모 난민을 받아들였는데, 이 기간 동안 망명 신청자 중 범죄 피의자 수가 급증했다. 이에 대해 극우 정당 AfD는 ‘난민의 범죄화’라는 프레임으로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범죄 피의자 비율은 10%가 되지 않으며, 실형률은 더 적다. 하지만 ‘난민’=‘범죄’이라는 기호의 연쇄로 언어화되었기 때문에, ‘난민’이라는 집단 범주에 속하는 개인들은 ‘범죄’의 혐의를 받게 된다. ‘범죄 피의를 받는 난민들 문제’라고 조금만 바꾸어 표현하면 집단적 낙인 없이 문제를 논할 수 있는데 말이다.
비판적 담론 분석은 어떤 집단 범주에 부정적 속성을 부여하는 이 같은 담론들이 편견과 차별을 낳은 효과를 언제나 강조해 왔다. ‘외국인 범죄 증가’는 외국인 중 범죄율의 증가가 사실인 경우에도 차별적 담론이다. 외국인 중 범죄율이 추세상 늘고 있어도, 내국인 중 범죄율보다 낮을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외국인=범죄’라는 기호의 연쇄에서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된다. ‘빈민 폭력 증가’는 실제 빈민층의 폭력 행위가 증가하고 있을 때도 계급적 편견을 낳는다. 증가하는 빈민 폭력의 희생자도 빈민이 다수일 때가 많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빈민=폭력’이라는 담론에서 편견을 강화하게 된다. 그러면 범죄자가 아닌 외국인, 폭력의 피해자인 빈민은 담론적 폭력에 희생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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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에 출간된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우리 사회의 세대 담론이 그런 방식으로 특정 연령집단에 대한 낙인을 일상적으로 행한다고 비판했다. ‘386/586세대의 기득권화’, ‘20대 개새끼론’이 대표적이다. 지금 ‘청년 남성’, ‘이대남’은 어떤가? 위에 쓴 여러 근거에서 ‘극우 성향 청년 남성의 증가’를 깊이 우려하고 있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청년 남성의 증가’를 주목해 왔다. 하지만 ‘이대남의 극우화’, ‘청년 남성의 보수화’라고 단순하게 규정하는 것은 서부지법 폭동에 반대하는 70%의 20대 남성, 30대 남성 중 이재명 후보에 투표한 37.9%를 ‘존재하지 않는 자’들로 만들었다. 30대 남성에게서 가장 많이 득표한 후보가 이재명 후보였음에도 말이다.
탄핵집회에 참여한 이대남’ 심층면접 결과를 보면, 동년배 극우 성향 남성들과 접촉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거부감을 보이고 있고, 성별을 떠나 가치를 공유하는 또래 청년들과의 공동체를 소중히 한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네가 속한 이대남은 극우화하고 있어’라고 단정짓는 사회의 시선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그보다는 성별X세대 범주 내에 존재하는 차이와 유동하는 정체성, 그리고 헤게모니 경쟁을 잘 살피면서, ‘다른 이대남들’의 생각을 경청하고 함께 모색하는 것이 더 전향적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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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연구자들과 공저 『광장 이후』에 여러 측면에 관한 연구결과가 제시되어 있다.
한국사회 극우 세력의 다양한 유형과 전체 생태계를 분석하고 ‘청년 극우’가 그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살펴 보았다. 양승훈 교수는 ‘청년 남성 보수화/극우화’ 주장을 다각도에서 검토했고 이승윤 교수는 지난 20년간 청년 남녀가 고용, 소득, 복지 측면에서 안정-불안정 집단이 양극화되어온 추이, 특히 청년 남성 불안정 집단의 충격적 급증, 청년 여성 내 양극화보다 청년 남성 내 양극화가 더 크고, 청년 남성 불안정 계층이 미래에 대한 비관이 유난히 더 큰 현실 등 중요한 분석결과들을 제시했다.(첨부 사진, 우측 하단).
광장 이후 - 예스24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계기로 광장이 또다시 활짝 열렸다. 이 광장의 시민들은 과연 어디에서 왔으며,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광장 이후』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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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Juni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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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흘러 바다에 이른단다.
역류가 되고 싶다고
”과거로 갈 사람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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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갇혀 살아가는 측은한 젊은이들...
기억해라.
시간은 미래로 향하여 흐르고 있다는 것을!
꼭 잊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