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숲에서 길을 잃다. [시, 김혜자]
사람 숲에서 길을 잃다. 너무 깊이 들어와버린 걸까 갈수록 숲은 어둡고 나무와 나무 사이 너무 멀다 동그랗고 야트막한 언덕배기 천지사방 후려치는 바람에 뼛속까지 마르는 은빛 억새로 함께 흔들려본 지 오래 막막한 허공 아래 오는 비 다 맞으며 젖어본 지 참 오래 깊이 들어와서가 아니다 내 아직 어두운 숲길에서 헤매는 것은 헤매이다 길을 잃기도 하는 것은 아직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 탓이다 깊은 골짝 지나 산등성이 높은 그곳에 키 낮은 꽃들 기대고 포개지며 엎드려 있으리 더 깊이 들어가야 하리 깊은 골짝 지나 솟구치는 산등성이 그 부드러운 잔등을 만날 때까지 높은 데 있어 낮은, 능선의 그 환하디환한 잔꽃들 만날 때까지 시, 김해자 [01. Februar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