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화롯가 이야기들

우 음 [시, 신경림 지음]

행복나무 Glücksbaum 2024. 5. 27. 16:57

 

 

아무리 낮은 산도 산은 산이어서

봉우리도 있고 바위너설도 있고

골짜기도 있고 갈대밭도 있다.

 

품 안에는 산짐승도 살게 하고 또

머리칼 속에는 갖가지 새도 기른다.

 

어깨에 겨드랑이에 산 꽃을 피우는가 하면

등과 엉덩이에는 이끼도 돋게 하고

가슴팍이며 뱃속에는 금과 은같은

소중한 것을 감추기도 한다.

 

아무리 낮은 산도 알건 다 알아서

비바람 치는 날은 몸을 웅크리기도 하고

햇볕 따스하면 가슴 활짝 펴고

진종일 해바라기를 하기도 한다.

 

도둑 떼들 모여와 함부로 산을 짓밟으면

분노로 몸을 치 떨 줄도 알고

때아닌 횡액 닥쳐

산 한 모퉁이 무너져 나가면

꺼이꺼이 땅에 엎으러 져 울 줄도 안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근심 어린 눈으로

사람들 사는 꼴 굽어보기도 하고

동네 경사에는 덩달아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출 줄도 안다.

 

아무리 낮은 산도 산은 산이어서

있을 것은 있고, 갖출 것은 갖추었다.

알 것은 알고 볼 것은 다 본다.

 

 

, 신경림 (1933-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