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

마사다 요새

행복나무 Glücksbaum 2000. 3. 5. 20:15


 

마샤다요새가 있는 사해 서안에 인접한 산(해발 400m)


 

 

 

사해 서편 4km에 위치하며 사해 수면 450m 높은 가파른 요새 마사다의 길이는 600m, 폭 300m로 주전 250년 경 ‘알렉산더 야나이’라는 대제사장이 처음으로 요새를 만들었고 주전 40년경 헤롯왕이 요새 겸, 별장으로 쓰기 위해 웅장한 궁전을 북쪽 끝에 만들었고 23m 높이의 38개 감시탑과 5.5m 높이의 성벽으로 철옹성을 만들었다. 1955 - 56경부터 1963년까지 이갈 야딘 교수 팀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로마 군에 종군했던 요세푸스의 기록을 전설로만 여겨오다가 발굴 결과 물 저장소(몰탈 로 방수한 물 저장소, 약 4만 톤으로 1,000명이 40년을 쓸 수 있는 양을 보관), 창고(과일 말린 것, 올리브 유 등을 보관), 병기창고, 병사들의 막사, 헤롯의 호화 목욕탕(로마에서 배워 온 문화로 지하에는 냉탕이 있고 온탕, 온돌식의 증기탕이 있다.) 그리고 시나고그(회당)등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요새내의 비잔틴 교회에 있는 모자이크는 자연석으로 색을 넣어 그 색이 변하지 않게 한 것이 특색이다. 순례자는 처음에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등산했으나 지금은 케이블-카로 단숨에 정상에 오른다.

 

 

이곳은 영화를 통해서 잘 알려진 이야기의 고장이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 군에 의해 파괴된 후 열심당과 그의 가족 967명이 이 천혜의 요새에 올라가 싸우다가 전원 자결한 곳이다.(73년) Zeloten 즉 열심당은 주전 6년 로마 총독 구레뇨가 국세 조사를 실시했을 때 이에 반대하여 조직한 국수주의적 유대인 집단(행1:13, 5:37)인데 베드로도 이 집단에 속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예루살렘을 격파한 후 로마의 티토 장군의 휘하에 있던 실바 장군은 5,000여명의 로마 군을 이끌고 와서 마사다를 포위하고 항복할 것을 권유했으나 열심당의 지도자 ‘엘리아살 벤 야에르’는 끝까지 항전할 결의를 보였다. 로마 군은 요새를 공략하기 위하여 서쪽에 흙을 쌓아올려 요새에 올라가 함락시키기로 작전을 세우고 토사를 쌓았으나 마사다 성 위에서의 공격이 만만치 않아 많은 로마군사의 희생을 가져왔다. 결국 이스라엘 포로들을 동원하여 토사를 계속 쌓았다. 요새의 열심당은 노예가 된 동족을 죽일 수는 없었다. 73년 달 밝은 가을, 로마 군이 요새를 쳐들어오기 전날 밤이었다. 엘리야살의 연설을 듣고 난 빛의 전사들은 각자 가족에게로 돌아가 아내와 자식들을 자신의 칼로 죽이고 함께 죽을 장소로 되돌아와 10명씩 그룹이 되어 제비에 뽑힌 사람이 9명씩 죽이고 남은 자 중에서 제비를 뽑아 엘리아살만 남기고 모두 죽게 되었으며 엘리아살은 형제들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 형제에게 자기를 죽인 후, 모든 건물에 불을 지른 후 죽으라고 당부했다. 그 형제는 사명을 다하고 자결했다. 다음날 아침 로마 군은 필사의 저항을 각오하고 요새로 진격해 들어왔으나 보이는 것은 널려 있는 시체 뿐, 적을 격멸하여 얻는 승리의 기쁨 대신, 자유 아니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유대인의 정조와 인격 앞에 숙연해 졌다. 숨어 있던 다섯 아이와 두 여자를 통해서 그들의 최후가 전해진 것이다.

 

 

 

현재 마사다에 있는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헤롯시대의 것으로서 북쪽은 궁전, 창고, 목욕탕, 행정 건물, 공동 주거지로 되어 있고, 서남쪽은 서쪽 궁전, 소궁전, 유골 안치소 및 수영장으로 되어 있다.

 

 

1) 급수시설

 

마사다에는 항구적인 급수시설이 없어 헤롯이 요새를 만들며 4개의 물 저장소를 크게 만들었다. 저장량은 39,7000 M³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2) 성벽과 성문

 

천혜의 방어 요새지이다. 1,370M의 외곽 성벽과 30개의 망루, 4개의 문이 있다.

 

 

3) 공공창고

 

출입구가 하나뿐인 긴 창고와 열한개로 이루어진 많은 문의 창고가 있다. 창고에는 술, 기름, 밀가루, 등이 저장되었다.

 

 

4) 궁전

 

북쪽 궁전은 왕과 그 측근들이 사용하는 개인 별장이었고, 서남쪽 궁은 헤롯 의 집무실, 소궁은 왕의 가족들과 궁정의 신하들이 살았다.

 

 

5) 기타 부속 건물들

 

목욕탕 공동 주거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케이불카로 연결해 놓은 마샤다 성채

 


요새에 오르는 케이블 카 기지

 

옛날에는요새로 오르는 길이 Snakepath라는 이 길 밖에 없었단다.

 

성채 모형(해발 400m 원래 헤롯왕의 별궁이었는데
로마 티로스군 1만5천명에 대항 996명의 유대인이 최후까지 저항하다가 최후 상황에 이르자
로마군의 능욕을 면하기 위해 병사들이 그들의 가족을 살해하고 동료를 처단한
다음 최후의 자결(AD70년)을 했다는 곳. 요새는 하나의 소도시였다.

 

 

 

로마군이 쌓아 올린 교두보

 

 

 

마사다 요새 건물 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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