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화롯가 이야기들

질경이

행복나무 Glücksbaum 2022. 10. 27. 05:27

그것은 갑자기 뿌리를 내렸다, 뽑아낼 새도 없이
슬픔은
질경이와도 같은 것
아무도 모르게 영토를 넓혀
다른 식물의 감정들까지 건드린다.
어떤 사람은 질경이가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서둘러 뽑아버릴수록 좋다고
그냥 내버려두면 머지않아
질경이가
인생의 정원을 망가뜨린다고
그러나 아무도 질경이를 거부할 수는 없으리라.
한 때 나는 삶에서
슬픔에 의지한 적이 있었다.
여름이 가장 힘들고 외로웠을 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슬픔만이 있었을 뿐
질경이의 이마위로
여름의 태양이 지나간다.
질경이는 내게
단호한 눈짓으로 말한다.
자기자신으로부터, 또 타인으로부터
얼마만큼의 거리를 두라고
얼마나 많은 날을 나는
내 안에서 방황했던가
8월의 해시계 아래서 나는
나 자신을 껴안고
질경이의 영토를 지나왔다.
여름의 그토록 무덥고 긴날에.

시, 류시화


[ 18.Jun.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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