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화롯가 이야기들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행복나무 Glücksbaum 2022. 11. 14. 06:41

이따금 나는 생각한다.
무당벌레로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아니, 삶이 더 가벼울 것이라고,
더 별의 눈동자와 닮을 것이라고,
멀리 날지는 못해도 중력에
구속받지 않을 만큼은 날 수 있다.
혼자 혹은 무리 지어 날 만큼은
아무도 그 삶에 개의치 않고
언제든 원하는 장소로 은둔하거나
실종될 수 있다.

명색이 무당일 뿐 이듬해의 일을
점치지 않으며
죽음까지도 소란스럽지 않다.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도착한다.
운 좋으면
죽어서 날개하늘나리가
될 수 있고
더 운 좋으면
무로 사라질 수도 있다.
어떤 결말이 기다린다 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니까.  
아니, 기꺼이 원하니까.
큰 순환에 자신을 내맡기는 기술은
이들을 따를 자가 없으니까.
지구에서 일만 오천 일을 머물면서도
내가 배우지 못한 것이 그것이니까.

이따금 나는 생각한다.
손등에 날아와 앉은 칠성무당벌레와
삶을 바꾸고 싶다고
나는 아무것도 손해 볼 것 없지만
무당벌레는 후회막급이리라.

그에게는 한 개의 슬픔이
천 개의 기쁨을 사라지게 하겠지만
나에게는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사라지게 할 테니까.

시, 류시화


[24.Feb.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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