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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교수 징계 회부에 대한 입장문

행복나무 Glücksbaum 2024. 4. 10. 08:58

서울신학대학교 박영식 교수 징계 회부에 대한 ‘한국민중신학회’의 입장문

2024년 3월 학교법인 서울신학대학교(총장 황덕형) 백운주 이사장은 동 대학교 교양교육원 박영식 교수에 대한 징계요구서를 통해 그에 대한 중징계를 지시하였습니다. 이유인즉슨 박 교수의 저서 『창조의 신학』(동연, 2018)을 포함한 그의 창조신학이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의 창조론과 배치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박영식 교수는 2022년부터 전개된 조사위원회의 의견 제출 요청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성실히 소명한 바 있습니다. 그의 창조신학은 성결교회와 서울신학대학의 신학적 전통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개신교 교회의 전통과 현대 주류신학자들의 견해와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창조 역사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 있는 것이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신앙고백이 박영식 창조신학의 골자입니다. 박영식 교수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란 ‘자연의 나라’에서 ‘은총의 나라’를 거쳐 ‘영광의 나라’를 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이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창조 활동 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이 땅의 대표적인 신학자입니다.

우리 ‘한국민중신학회’는 그 누구보다 충실하게 본인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창조의 섭리를 모범적으로 가르쳤던 박영식 교수의 연구 결과를 폄하하고 왜곡하는 학교법인 서울신학대학교의 금번 조치가 중세의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연상시키는 지극히 부당한 처사라 간주하며 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는 바입니다.

과학과 종교 사이 갈등과 대화의 역사는 신학사의 중요한 장면입니다. 그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신앙과 이성, 초월과 내재, 계시와 신비로 대변되는 그리스도교 변증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근래 그리스도교 신앙은 양자 사이의 분리와 대립보다는 대화와 종합으로 신학적 지혜를 모아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했던 말,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요, 과학이 없는 종교는 맹인이다”라는 말은 과학과 종교 사이 관계를 고민하는 신학도들에게 많은 영감을 선사합니다.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신앙 없는 과학은 위험하고, 과학 없는 신앙은 맹목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박영식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과학과 종교 간의 대화 한 가운데 서서 고뇌하던 신학자이고, 과학의 권위에 기대어 신학에 가해오는 충격과 압력 앞에서 심사숙고하며 신학을 변증했던 신학자입니다. 그는 과학이 던지는 물음과 과제들을 개신교 신학의 전통에 따라 비판적으로 독해하고 숙고하는 과정에서 신학적 균형의 추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한국 신학계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귀한 학자입니다.

사회참여적인 민중신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박 교수의 입장은 무난하고 어느 부분은 교회 친화적으로 치우친 면도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영식 교수의 저서와 논문들은 교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모범적인 사례였기에 저희가 감히 비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진지하게 고뇌하면서 과학과 신학의 상관관계를 하나님에게 물었던 학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박영식 교수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를 그가 속한 성결교회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서울신학대학의 빛나는 신학적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에 대한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이런 이유로 그 누구보다 성결교회와 성결신학을 사랑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치면서 신학적 답변을 구했던 박영식 교수를 향한 서울신학대학교의 금번 조치는 무척이나 애석하고 어처구니없는 처사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갈릴레이에 앞서 ‘무한우주론’을 주장하다가 처형당한 브루노는 자신을 기소한 사람들을 향해 “내 형량이 선고되는 것을 듣는 나 자신의 두려움보다 당신들의 두려움이 오히려 더 클 것이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브루노가 했던 이 말을 고스란히 박영식 교수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갈릴레이와 브루노에게 만행을 저질렀던 교회는 20세기 말, 그들에게 행한 잘못을 인정하고 복권시켰습니다. 왜 서울신학대학은 고대/중세 세계관에 갇혀 몽매한 판정을 내렸던, 300년도 훨씬 전에 저지른 교회의 만행을 되풀이하려 하십니까?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한국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찌하여 그대들은 또다시 교회를 조롱거리로 만드는 처사를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한국개신교의 대표적 교단으로 성장한 성결교단의 수치이고, 유수한 신학교육 기관인 서울신학대학의 역사에도 오점을 남기는 결정이 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 ‘한국민중신학회’는 학교법인 서울신학대학교에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박영식 교수를 향한 귀교의 처사는 권력의 힘으로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복음의 기쁨을 억누르는 퇴행적 선택입니다. 이번 징계 절차에 대한 즉각 중단, 당사자에 대한 사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까지를 포괄한 깊은 숙고를 귀교에 호소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뜨겁게 변증했던 사도 바울을 기억합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한복판에서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강변하는 바울에게 임했던 진리의 영이 박영식 교수와도 함께하여 그를 쓰러지지 않게 할 것이고, 그로 인해 신앙의 진리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한국민중신학회’는 복음의 선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박영식 교수와 함께 할 것입니다. 아울러 박영식 교수를 비롯한 이 땅의 모든 고난받는 사람들에게 주께서 주시는 위로의 영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Veritas vos liberabit!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2024년 4월 5일


한국민중신학회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