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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법원·헌법 묵살하고 ‘대통령’ 자리 동원해 정치 보복…트럼프 ‘유사 독재’로 흔들리는 미국

행복나무 Glücksbaum 2025. 4. 8. 16:12

- 입법·사법부 권한 묵살하며 공적기관 사유화·우방국까지 팔 비틀며 일방주의 강요…쏟아내는 행정명령으로 읽어보는 USA 트럼프 그리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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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정권이라고 꼭 헌정 질서를 파괴할 필요는 없다. 파시스트나 일당 독재뿐 아니라 ‘경쟁적 권위주의’도 있다. 선거에서 각 정당이 경쟁하긴 하지만, 집권 세력이 권력을 남용해 선거구도를 자기들한테 유리한 쪽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국가기관을 무기화해 반대 진영을 겨냥해 배치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경쟁적 권위주의 직전 상황까지 내몰려 있다. 헌법만으론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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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적 권위주의 (competitive authoritarianism)....다당제는 있어도 집권당이 장기, 초장기 집권이 가능하고, 정치인-관료-자본가 카르텔의 전황이 일상화되고, 사법부가 행정부를 전혀 견제하지 못하고 입법부 역시 힘이 매우 약한 구조. 대체로 오늘날 터키와 같은 구조다.
지금 미국이 이 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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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57개 주요 무역상대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REUTERS

“미국민은 우리를 신뢰했다. 우리는 최고의 취임 첫날, 최대의 취임 첫 주, 미국 역사에서 가장 특별한 취임 첫 100일로 보답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 취임식 전날인 2025년 1월19일 워싱턴의 ‘캐피털 100’ 경기장을 가득 메운 열광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저 한 소리가 아니었다. 취임 74일째를 맞은 4월3일 현재 그는 미국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취임 10주차(3월24~30일)에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각종 행정명령은 ‘트럼프의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베네수엘라 원유 수입해도 보복관세

백악관이 누리집에 공개한 자료를 보면, 3월24일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에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의 안보·외교·경제에 현저한 위협이 발생하면, 그 대상이 되는 국가와 국민의 거래금지와 자산몰수 등을 대통령이 명할 수 있는 ‘국제긴급경제권한법’(1977년) 등에 따른 조처다. 그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의도를 갖고 기만적으로 범죄자와 살인범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행정명령에 따라 4월2일 이후엔 직간접적으로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수입한 나라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모든 상품에 관세 25%가 부과된다. 제재 대상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 정부와 기업 등에 일방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전형적인 ‘제3자 제재’(세컨더리 보이콧)다. 군소리 말고 말 들으라는 뜻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3월15일 성명을 내어 “(베네수엘라에 뿌리를 둔 갱단인) ‘트렌 데 아라과’(TdA) 카르텔 소속으로 합법적 시민권이 없는 14살 이상 모든 베네수엘라 국민을 체포·구금·추방할 것을 선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법원의 제지 명령에도 3월16일 이를 실행에 옮겼다. 미국에선 이제 법원도 행정부의 발아래에 있다.
취임 65일째였던 3월25일 트럼프 대통령은 100번째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상 유례없는 규모와 속도다. 이날 그가 내놓은 행정명령 가운데 3건에 눈길을 줄 만하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은 미 연방수사국(FBI)의 ‘크로스파이어 허리케인’ 수사와 관련된 모든 문서의 비밀을 해제하도록 명했다. 연방수사국은 ‘크로스파이어 허리케인’이란 암호명으로 2016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대선 선거운동과 러시아 연루설을 수사했다. 이 수사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지명으로 이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선거대책본부가 러시아 쪽과 공모했다는 직접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 백악관에 재입성한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 보복에 ‘대통령’이란 공직을 동원한 모양새다.

2025년 3월2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여성 역사의 달’을 기념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AP


.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대형 로펌의 각종 폐해를 명분으로 ‘제너 앤드 블록’이란 로펌에 각종 제재를 가하도록 명했다. 여기에는 해당 로펌 직원에 대한 △비밀 취급 인가 취소 △정부청사 접근권 차단 △정부 발주 계약 수주 불허 등이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로펌이 “정파성에 기반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위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무슨 말일까?
행정명령으로 정치 보복 혹은 보상

트럼프 대통령은 1월28일 ‘화학적·외과적 훼손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제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19살 이하 트랜스젠더 청소년에 대한 호르몬 요법과 사춘기 예방약 처방 등과 관련한 연방정부 예산 지원을 금하는 것이 뼈대다. 미국민권연맹(ACLU)은 2월4일 해당 행정명령이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을 대행하는 로펌이 바로 ‘제너 앤드 블록’이다. 정책에 대한 반대를 ‘합법’으로 치장해 짓밟고 있는 셈이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선거의 고결함을 보존·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도 내놨다. 미국 시민권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신분증을 제출하도록 하는 등 기존보다 유권자 등록 절차와 부재자(우편) 투표 신청 절차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뼈대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승리한 2016년 대선 때도, 패배한 2020년 대선 때도 부정선거 의혹을 쏟아냈다. 미국인이 아닌 사람이 버젓이 투표하고, 부재자 투표를 조작해 선거를 ‘훔쳤다’는 등의 주장이 ‘부정선거론’의 핵심이다.
미국 헌법은 선거 일시와 장소, 방식을 주 정부에 일임하고 있다. 주 정부가 잘못을 저지를 경우 개입해 상황을 바로잡을 권한은 입법권을 지닌 의회에 있다. 대통령에게 선거와 관련해 아무런 권한이 부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자신의 지시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주 정부에 대해선 “연방 선거예산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포스트는 3월25일 선거법 전문가의 말을 따 “유권자 등록과 부재자 투표 절차 강화의 목적은 명확하다. 유권자를 귀찮게 해 투표율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선 헌법도 뛰어넘을 기세다.

3월26일은 데번 아처에 대한 사면령으로 시작했다. 벤처투자자 출신인 아처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과 2008년 ‘로즈몬트 세네카 파트너스’란 투자자문 업체를 차렸다. 아처는 2022년 2월 자금 유용 등의 혐의로 징역 1년1일형에 처해졌다. 투자자의 손해에 대해 4.300만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도 더해졌다


2025년 3월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백악관에서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주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AFP


“부친의 이름을 ‘명품’처럼 팔았다.” 아처는 2023년 8월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헌터 바이든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이던 부친을 내세워 투자자를 현혹했다고 주장했다. 헌터 바이든이 투자자들이 보는 앞에서 수십 차례 부친과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했다는 게다. 아처의 증언은 2024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호재’ 중의 호재였다. 그가 당선 이전부터 아처를 사면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이유다. 우호 세력엔 ‘응분의 보상’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까?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하는 모든 차량과 차량 부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관세 부과 대상엔 멕시코·일본·한국·캐나다·독일 등이 포함됐다.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라”고 우방국을 노골적으로 위협한 게다.
 
다양성·공존의 가치 무차별 파괴
3월27일 서명한 행정명령은 모두 3건이다. 첫째, 로버트 뮬러 전 특별검사가 ‘러시아 게이트’ 수사를 전후로 근무했던 로펌 ‘윌머헤일’에 대한 제재 명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로버트 뮬러의 수사는 정부 기구를 ‘무기화’한 것을 상징한다. 그럼에도 윌머헤일은 ‘우리 회사와 법률가란 직군의 가장 고귀한 가치를 구현했다’며 로버트 뮬러와 그 동료들에게 막대한 보상을 했다”고 맹비난했다. 제너 앤드 블록과 마찬가지로 윌머헤일 쪽에도 △비밀 취급 인가 취소 △정부청사 접근권 차단 △정부 발주 계약 수주 불허 등의 불이익이 가해졌다.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정치 보복을 가하고 있다.
둘째, 워싱턴디시 소재 스미스소니언 재단과 각급 박물관에서 ‘반미국적 이념’을 걷어내라는 명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역사를 새로 쓰려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시도를 목격해왔다. 그들은 객관적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이념으로 대체했다.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자유와 개인의 권리, 행복한 삶을 신장하기 위해 미국이 이룬 비교 불가능한 진전을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압제 등으로 덧칠했다. (…) 한때 미국의 우수성과 문화적 성취의 상징이었던 스미스소니언은 이제 분열적이고, 인종 중심적 이념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지식과 문화의 담지자’를 자임하는 스미스소니언 재단은 1846년 의회 입법에 따라 설립돼 민관 협력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운영돼왔다. 연간 10억달러 남짓한 예산은 의회가 책정·지원한다. 행정부는 개입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 이행의 주체로 제이디 밴스 부통령을 지목했다. 그의 과업은 △미국인의 공통적 가치를 비하·훼손하고 △인종에 따라 미국을 분열시키고 △연방정부의 법률·정책과 일치하지 않는 전시 또는 프로그램을 발본색원하는 것이다. 스미스소니언 행정명령을 두고 ‘이념적 순결 테스트’란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다시 위대해진 미국’을 위한 문화전쟁이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 모양새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내세워 공무원의 단체교섭권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도 내놨다. 연방정부 정책 전문매체 ‘거번먼트 이그제큐티브’는 3월27일 “행정명령에 따라 국방부·국무부·보훈부·법무부·에너지부·국토안보부·재무부·내무부·농무부 등과 국제무역청·환경보호국·연방통신위원회 등 독립기관에 재직하는 공무원들은 노동법이 보장한 단체교섭권을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며 “이는 전체 연방 공무원의 67%, 노동조합에 가입한 연방 공무원의 75%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를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제한했다. 대통령이 법 위에 군림할 수 있음을 선언한 게다.


2025년 3월31일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TDOV)을 맞아 미국 뉴욕 맨해튼 도심에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AFP


“헌법만으로 민주주의 지킬 수 없어”
법 규정도, 법원의 명령도 무시한다. 대통령에게 부여된 법적 권한을 정치적 보복에 동원한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선 헌법도 뛰어넘을 수 있다.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우방이든 동맹이든 팔을 비틀어버리면 그만이다. 합법을 포장해 반대 세력을 제압하고, 극단적 이념을 ‘공통의 가치’로 내세운다. ‘트럼프의 나라’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8년)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2023년) 연작으로 잘 알려진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학 교수는 외교안보 전문매체 격월간 포린어페어스 3·4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짚었다.
“권위주의 정권이라고 꼭 헌정 질서를 파괴할 필요는 없다. 파시스트나 일당 독재뿐 아니라 ‘경쟁적 권위주의’도 있다. 선거에서 각 정당이 경쟁하긴 하지만, 집권 세력이 권력을 남용해 선거구도를 자기들한테 유리한 쪽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국가기관을 무기화해 반대 진영을 겨냥해 배치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경쟁적 권위주의 직전 상황까지 내몰려 있다. 헌법만으론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



[Dienstag, 08. April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