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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누구인가?

예수는 오랫동안 그럭저럭 생존을 유지해오다가 점점 더 심하게 억압을 받게 된 한 피점령지의 농민들 사이에서 살았다. 그 당시, 이것은 구조적인 불평등과 불의의 세계의 한 현상이었다. 그러한 세계에서 그는 대안이 될 만한 새로운 비전(vision)을 제시했고, 또한 그것을 삶으로써 살아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여, 그것을 더불어 나누고자 했다. 그 비전은 무상의 치유와 나눔의 식사가 있는 공동체, 하느님 앎과 서로의 앞에서 평등한 공동체였다. 그는 여성과 어린이와 남성, 그리고 나병 환자와 적빈자와 정신질환자들을 똑같이 초대했다. "와서 함께 먹고 고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주십시오." 라고 말이다. 이 새로운 공동체가 하느님나라의 모습, 즉 시이저가..

예수시대, 사회적 분위기

예수시대에 있어서 팔레스틴 내의 유대인 사회를 아래의 몇몇 집단들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바리사이 파 바리사이새파의 기원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일반적으로 짐작되기로는 이들은 일찍이 세속적이고 종교에 무관심한 일반 평민들과 구분하여 "하시딤"(경건한 자)들이라 불려지던 세대들의 후예가 아닌가 싶다. 이 부류는 아마도 셀류시드 왕조가 유대인들에게 부과하려 했던 헬라화 과정에 반발하여 일으킨 마카비 전쟁 직전부터 시작하여 이 전쟁이 진전되는 동안에 생겨난 것으로 본다. 그들이 바리사이파사람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게된 것은 요한 히르카누스 통치 기간 중이었다.(주전 135- 105년 경) 이 바리사이파 란 의미는 일반적으로 '분리된 자' 란 뜻으로 해석되었다. 바리사이파란 종교의식의 준수에..

예수시대, 정치적 분위기

우리는 예수의 하느님나라 선교활동의 무대였던 현장을 찾아가는 관계로 오늘날의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이 아니라 예수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를 살펴보아야 하겠다. 기원 전 63년에 로마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이두매 출신의 안티파렐을 실권자로 세웠다. 기원 전 43년에 그가 암살 당하자 그의 아들 헤로데가 로마로부터 '유다와 사마리아의 왕'이라는 칭호를 받고 33년간 팔레스티나를 다스렸다(기원 전 37-4년). 헤로데는 자신의 왕위를 안정시키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요새와 식민지 설치 및 예루살렘 성전 증축 등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무자비하게 징수했다. 그는 유다 인들에게 그들의 종교와 풍속에 따라 살도록 허용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리스의 문화도 개방시켰다. 헤로데의 전제적인 통치 태도는 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