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한님 뜻 받들기 26

"그분의 세계를 지향하며"

베드로후서 3, 3- 13 찬송 “하느님을 모르는 체 하는 자들아, 알아두어라, 내가 너희를 찢겠으나 구해줄 자가 없으리라.”(시50:22-23) 이어서 “감사하는 마음을 제물로 바치는 자, 나를 높이 받드는 자이니, 올바르게 사는 자에게 내가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주리라.” 세속에 침잠해 있는 자들에게 외치는 성서의 외침입니다. 갓 쓰고 자전거 타는 것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우스운 것이 믿음생활이 아닌가? 하고 젊은이들의 마음이 빗나가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은 사람의 수명을 백 살까지 살게 하는데 이르고 있어 하느님의 말씀을 하나의 신화처럼 여기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세태입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현대를 사는데 있어서 부가 얼마만큼 축적되느냐? 가 삶의 근거를 이루는 것처럼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무릎 꿇음과 꿈 키우기"

마가복음서 11, 20- 25 찬송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보증 곧 증거”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이 뜻을 붙들고 사는 내 믿음의 수행이요, 이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 ‘내 믿음’ 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 가운데 어떤 가난한 사람에게 밤중에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밤중에 대접할 것이 없으므로 이웃집 부자 친구에게 달려가서 빵 세 덩어리만 질려 달라고 했으나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서지 않고 계속하여 끈질기게 부르짖어 깨워 가지고 방을 요구했습니다. 성서를 보면, 이 부자 친구는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너무 귀찮게 강청하므로 ..

"세계 최고보다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향해야 해"

스가랴서 8. 12 [1-23] 찬송 1. 세계 최고보다는 평등한 세상이 되도록 얼마 전, 인터넷에 어떤 사람이 올린 글을 읽어보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최고이며, 지상 낙원임을 수치를 통해 열거한 것을 보았습니다. 땅 덩어리는 작지만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아도 세계 제일을 달리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세계 제일로 뻗어 나가는 인천공항은 4년 동안, 세계 제일, 전 세계가 찾는 TV, 휴대폰, 컴퓨터 등 IT산업으로 세계정상을 달리고 있다는 것 입니다. 세계 건설 현장이나 조선 수주는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고, 세계 제일의 국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 한국처럼 교육열이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미국의 대통령인 오바마도 부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이야기입니까? 그러나 ..

믿음: "아브라함이 희망을 심다"

창세기 21, 22- 34 찬송 9, 488, 635장 아브라함이 에셀 나무를 심은 이유는 ‘하느님께서 나와 내 후손에게 이곳을 반드시 주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 입니다. “ 나무를 심으면 뭘 해? 내가 그 열매를 따 먹을 수 없을 텐데” 이런 회의론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아브라함은 나무를 심었습니다. ‘내가 지금 당장 그 열매를 따 먹지 못한다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믿음을 보증하는 에셀 나무를 정성껏 심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은 것들의 증거’가 된다는 성서의 말씀은 신앙으로 살아온 사람의 경험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진솔한 말씀입니다. 실로 믿음과 소망으로 심은 에셀 나무는 몇 백 년 후에 그의 후손이 쉴만한 그늘이 되고, 안식처..

[스크랩] 외국의 의료보험 및 국민연금의 관리운영체계(독일, 일본, 영국, 대만)

외국의 의료보험 및 국민연금의 관리운영체계(독일, 일본, 영국, 대만) 독일 일본 영국 대만 개요 비스마르크에 의한 최초의 사회보험제도. “사회적 시장경제”-자치운영, 사회적 협력, 사회적 연대성 원칙 포괄적 의료보험제도-인구 90% 공적질병금고 가입 1962년 시행,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원형 피용..

"힘있다 뻐기는 자들에게 보라는 듯 차려주신 밥상"

시편 23, 5. 요한1서 5, 4- 12 찬송 89, 429장 시편 23편 가운데서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부분은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 주시고" 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장면이 새로 바뀝니다. 여기서 다윗은 양이 아니고 손님으로, 하느님은 목자가 아니고 주인으로 비유가 되고 있습니다. 주인은 손님을 귀빈으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근동지방에서는 자기를 죽이려는 원수에게 쫓기게 되면 자기가 보호를 받고 싶은 사람의 천막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주인의 보호와 환대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므로 원수들도 천막 문 밖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집주인으로 원수에게 쫓기던 사람을 맞아들일 뿐 아니라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향연을 베풀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