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약 920km 남쪽에 터키의 네 번째로 큰 대 도시가 아다나(Adana)이다. 아다나에서 40km쯤 달렸을 때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소도시가 나타났다. 이곳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사도 바울이 태어나고 성장한 다소(Tarsus)이다.
다소는 6천년 이상이나 존속해온 가장 오래된 성읍이다. 주전 3천년 경 헷 제국은 다소를 키주와트나라고 부리는 지역의 수도로 삼았다. 주전 2천년 경 파괴되었던 이 다소에 그리스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고 그리스와 로마시대에는 아테네,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소아시아에서 학문과 문화의 중심도시였다. 주전 67년 로마제국은 다소를 로마 영토인 길리기아의 수도로 삼았다. 특히 동로마제국 시대의 길리기아 지역의 정치적 수도였다.
다소는 약 50만 인구가 살았던 지적 문화의 중심지로, 알렉산드리아의 학교와 쌍벽을 이루는 훌륭한 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로마의 유명한 웅변가요, 정치가였던 키케로가 이곳 총독으로 통치하기도 했고, 로마의 황제의 스승이었던 철학자 에데노도로스가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곳이다. 다소는 그리스도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시켰던 바울을 길러내기에 적합한 수준 높은 성읍이었다.
바울이 뛰놀며 자라났던 다소는 지금 인구 8만의 소도시다. 그러나 이곳이 사도 바울 당시에는 큰 문화의 도시였음을 현지 박물관에서 직감할 수 있었다. 신약성서 가운데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13권이 그와 관련된 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바울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바울은 보잘 것 없는 외모에 구변도 없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 더구나 그에게는 고질병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감수하면서 세 번에 걸친 전도 여행을 통해 기독교의 복음을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는 인류의 복음이 되게 했다.
1) 클레오파트라의 문
오늘날 다소가 과거에 누렸던 영광을 증언해 주고 있는 유일한 유적은 이 도시 입구를 지키는 성문이다. 율리우스 케사르를 유혹하여 자신의 보호자로 삼았던 클레오파트라는 케사르가 암살당하자 마르크안토니우스 장군이 주둔해 있는 다소까지 찾아와 그에게 접근했다. 다소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장군과의 만남은 그 후의 역사의 방향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클레오파트라는 아프로디테와 같은 옷차림을 하고 킨두스 강을 거슬러 올라가 그를 만났다.
2) 바울의 생가(Paulus-Brunnen)
성문을 지나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을 지나다 보면 ‘바울의 우물’(Paulus-Brunnen)이라고 쓴 표지판이 눈에 띈다. 바로 바울이 생가가 있던 곳이라고 전해지는 장소이다. 지금도 맑고 시원한 물을 도르래를 통해 두레박으로 길어 올릴 수 있다.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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