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화롯가 이야기들

예수 따르는 사람, 이윤란을 애도하며 [2.Nov.2020]

행복나무 Glücksbaum 2022. 11. 20. 22:02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초동교회의 신도로 뒤늦게 예수 믿고 따랐다.
난 그의 세례를 받게 하고 그 어머니의 영결예배와 하관예배를 드려주었다.
멀리 독일에서 부음을 들으니 애도하며 꽃길 출발한 것을 환송한다.
그리고 그때, 하느님 나라 본향에서 재회하거자 한다.



평생 경기민요 전승과 보급에 헌신한 이은주(본명 이윤란) 명창이 2020.11. 2일 오후 9시30분께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8. 고인은 경기민요 인간문화재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은주(본명 이윤란) 명예보유자가 노환으로 지난 2일 오후 별세했다.

“공연을 못하면 며칠 동안 잠이 안 와요. 죽는 한꺼정은 제대로 해야지.”
90여 년 소리와 함께 살아온 경기민요 명창 이은주(98·본명 이은란) 선생이 2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난 이 명창은 15세 때부터 원경태 선생에게 경·서도소리, 가사, 시조, 잡가 등을 배우며 소리길에 들어섰다. 아버지는 “시집이나 가지 무슨 소리냐”며 반대했지만, 어머니는 “너 하고 싶은 것 꼭 하라”며 남편 몰래 딸을 서울까지 데려다 줬다. 스승은 “쟁반에 옥 굴러가는 소리 같다”며 ‘은주(銀珠)’란 예명을 붙여줬다. 1939년 인천 홍명극장 명창대회에서 평안도 민요 ‘수심가’로 장원을 하며 일찍이 스타가 됐다. 김소희와 가깝게 지냈는데, 이은주(윤란) 안비취·묵계월 명창과 함께 경기민요를 대표하는 ‘트로이카’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을 떨쳤고, 1975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로 지정됐다.
이 명창은 오래도록 불리지 않은 ‘태평가’를 6·25 전후로 직접 복원해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1948년 첫 음반 취입 이후 유성기 음반 90여 종과 전축용 LP 300여 종까지 국내 소리꾼 가운데 가장 많은 음반을 취입했다. 1993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75년 이은주 경기창연구원을 개원해 후진 양성에 힘썼다. 여든이 넘어서도 매일 두 시간씩 ‘제자’부터 ‘제자의 제자’까지 지도하며 경기민요 전승에 헌신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제13회 방일영국악상을 받았다. 한명희 전 국립국악원장은 “이 명창의 음악 세계는 경중미인(鏡中美人)”이라며 “소리가 청초하며 섬세하고 미려하다”고 했다.

유족으로 딸 최순희씨가 있다.
빈소는 한양대 장례식장, 발인은 5일 오전 6시40분. (02)2290-9442


글, 명창 이은주의 경기민요 연구
A study on the Gyeonggi-minyo of the great folk singer, Eun-Ju Yi

명창 이은주(윤란) 1922년 경기도 양주군에서 태어나 13세에 국악계에 입문해 명창 원경태에게 사사하였다. 1938년 인천 흥명극장 팔도명창대회 장원을 차지한 후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은주는 1939년 경성방송국 출연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국악활동을 시작, 해방후 대한국악원 및 서울중앙방송국 민요부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8년 해방 후 첫 국악음반인 고려레코드의 민요 녹음에 참여하였다. 또한 1955년에는 단성사가 주최한 명창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하는 등 경기민요 보급 및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즉 인간문화재로 인정되었다. 
이은주의 12잡가는 도드리 장단을 기본 장단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묵계월, 안비취 등 12잡가 보유자의 음악과는 기본적으로 구성을 같이하지만, , 의 경우 안비취의 제자인 이춘희나 이창배, 정득만 등 남명창들이 시작을 6박으로 내는데 비해 이은주는 4박으로 내고 있으며, 의 경우 시작 부분 ‘가세’를 이춘희는 2박으로 내는데 비해, 이은주는 3박으로 내고 있는 등 음악적 어법에서 의미있는 차이점이 발견된다.
시김새와 선율 역시 묵계월, 안비취와 비교해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이은주는 요성은 d'(레′)음으로 지속음은 격한 요성을 사용하며 동음분박인 경우 목을 툭 치면서 순간적인 멈춤과 동시에 다음 음으로 진행하는 창법을 구사한다. 특히 의 경우 장식음으로 사용된 ‘시’음이 다른 명창들과 달리 빈번하게 출연한다는 점에서 매우 주요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붙임줄을 이용한 뻗는 음이 자주 나타나고, 호흡하는 지점이 정확하며, 호흡후에는 늘 강박으로 시작하는 특징을 보인다. 또한 중모리 장단 느낌이 많이 반영되어 2소박 느낌을 주는 대목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이은주의 12잡가는 음악적으로 매우 뛰어나고, 시김새와 선율이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이은주는 지난 70여년 동안 국악사에 기념비적인 많은 공적을 쌓았다. 우선 음반발매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은주의 음반은 그 동안 400 여매 정도 발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조사결과, 1947년 고려레코드사에 처음으로 민요음반을 취입한 이래 약 60여년 동안 유성기 음반 80면, LP음반 185매, CD 67매 등 모두 332종의 음반을 발매하였다. 이 수치는 카세트테잎과 8트랙음반 및 미확인된 SP, LP 등을 포함하지 않은 숫자로, 이들 숫자까지 포함할 경우 실제 400여 매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은주는 매년 정기적인 제자발표회, 찾아가는 문화재 공연 등 무대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수백회 이상의 공연활동과 방송활동을 통해 경기민요를 보급하고 전승하는데 매진해왔다. 이은주는 1939년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이래 각종 공연 및 방송활동을 꾸준히 해왔는데, 주요언론과 홍보물을 통해서 확인되는 공연만도 30년대 1회, 40년대 3회, 50년대 6회, 60년대 17회, 70년대 33회, 80년대 16회 90년대 42회, 2000년대 36회 등 154회이다. 
전수 및 이수교육 등 제자양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은주는 1980년 제자 김금숙을 첫 이수자로 인정한 이래 지금까지 모두 50여명의 이수자를 길러냈으며, 이들 가운데 8명이나 전주대사습놀이 민요부 장원을 차지하는 등 국악계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은주의 대표적인 경기민요로 각인되고 있는데조사결과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신민요 가수 선우일선의 를 편곡한 노래인 것은 맞지만, 이은주가 가사와 선율을 새로이 다듬고, 음악구성상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후렴구를 생략해 재창조한 민요 의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출처: 저자: 방인숙


[3.Nov.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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