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i-Di/씨앗 글 흩날려 (Quelle)

중동사태와 역사 안에 참여하시는 하느님

행복나무 Glücksbaum 2023. 6. 9. 18:21

아프리카와 중동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는가?
그들은 여러 가지 문제들과 상황에 맞부딪쳐 생의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국가군 속에서 일어난 민족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향하는 건전한 징조가 되고 있다. 어떤 나라들은 더 자유롭고 더러는 그렇지 못하다. 어떤 나라는 독자적인 정부를 세웠으나 경험을 통하여 배우는 오랜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몇몇 나라의 경험은 행운에 찬 것이었으나 어떤 나라의 경험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떤 민족주의운동은 다른 나라들을 고려치 않고 일어났다.
이들 중 여러 나라가 독재체제이며 극소수만이 민주정부를 운영할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는 민주주의나 파괴적인 세력(들)에게 여러 가지 문제들과 진실하지도 않고 값어치도 없는 미심쩍은 사건들을 일으키도록 기회를 주기도 했다.
어떤 나라에 있어서는 소위 통제된 민주주의에 대한 요청도 있는 형편이다.
민주주의의 역할 가운데 국민에 대한 교육은 국가건설에 필수적이다.
전쟁과 독재로 인해서 수많은 피난민이 기아와 무주택 상태로 고통당하고 있다.
 
중동에 대한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그들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희망을 찾도록 하자.
대부분 이 모슬렘이며 소수가 기독교인 아랍제국에 있어서, 몇몇 나라들은 석유 때문에 극도로 부유하고 나머지는 매우 가난하다. 중동의 여러 나라에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대중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부유한 나라들을 포함하여 모든 중동 국가(들)은 개발도상국들이다.
문맹률은 레바논과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70%- 90%에 이르며 특별히 여성들 중에 문맹자가 많다.
더욱 급격한 인구 증가는 그들에게 실제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음식물의 부족과 식량 생산의 결핍은 산유국을 제외하고 영양실조와 기아의 원인이 된다. 평균 사망 년령은 대부분의 나라에 있어서 35세 – 45세이다. 이는 보건 서비스의 부족, 식량부족 및 여러 가지 영양가를 지닌 식품 메뉴를 만드는 지식의 부족, 그리고 가난 때문이다.
 
열정적인 모슬렘들은 모든 회교국가에서 전부를 지배하려고 꿈틀댄다. 이란에 있어서 신정 정체인 호메이니 체제는 모슬렘 신도에게 좋지 못한 그림을 그리고 말았다. 자유주의적 모슬렘들은 가장 불행하다. 근본주의 이슬람주의는 모든 모슬렘 국가에서 적나라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슬람은 국가 종교가 되어야 하는가? 혹은 국가가 세속화되어야 하는가?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평화조약을 체결하였다.
 
참조:
「이집트」·「이스라엘」평화조약 조인
중앙일보 입력 1979.03.26 16:00
 
【워싱턴】
「이집트」와「이스라엘」은 27일 상오4시(한국시간)「워싱턴」에서 31년간의 적대관계를 끝맺고 「아랍」민족과 유대인사이의 평화공존시대를 여는 평화조약에 조인했다. <관련기사3면>
「사다트」「이집트」대통령과 「베긴」「이스라엘」수상이 「카터」미대통령 참석하에 백악관북쪽 잔디밭에서 서명한 이 조약에 따라 두 나라는 2주일 안에 비준서를 교환하고 조약이 발효되는 l개월안에 미국의 참여 하에「요르단」강서안 몇 「가자」지구에 대한 「팔레스타인」자치협상을 벌이게 된다.
조약 발효4, 5개월부터「이스라엘」 군의 「시나이」반도철수가 시작되며 10개월안에 양국은 전면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돼 있다.
그러나 관측통들은 앞으로 이 조약에 반대하는 「아랍」국가들에 대한 설득작업과 「팔레스타인」 문제해결 전망에 따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중동평화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있다.
이 조약은「사다트」대통령이 77년 11월 처음으로「예루살렘」을 방문한지 16개월 만에, 작년 9월 「캠프데이비드」협정 서명 6개월 만에 서명됐다.
조인식장에 양국대표단, 미국상하의원, 각료, 외교사절 등 1천 6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명된 조약문서는「아랍」·「헤브루」어·영어로 된 ⓛ조약 본문 ②「이집트」「이스라엘」관계 수립, 「이스라엘」의「시나이」반도 철수지도 등 부속 문서 ③양국 공동서한 ④미국의 대 「이스라엘」각서 ⑥「팔레스타인」자치실현을 위한 공동서한 등이다.
「카터」대통령은 조인식에서 『이제 우리는 평화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고 『질시와 반목이 없는 새로운 역사를 기록해 두자』고 말했다.
「사다트」「이집트」대통령은 협정이 타결된 것은 일의 시작일 뿐이지만 필요불가결한 시작이었다고 말하고 「아랍」국가들 모두에도 평화가 마련되는 협정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베긴」「이스라엘」수상은 평화에의 초석은 깔렸다고 말하고 『더 이상의 전쟁과 불신을 없애자』고 호소했다.
.......
 
비록 이 조약이 유엔의 그 어떤 성명서보다 더 팔레스타인 백성들에게 권리를 안겨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독립 국가에 꿈을 성취시킬 수 있는 최대의 가능성으로서의 정착에 이르려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협상의 결과를 기다리거나, 협상하려고 협력하는 대신 어떤 아랍 국가들은 조약 자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레바논은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자국의 존엄성을 위협했기 때문에 레바논은 이를 저지하려고 했다. 여기서 내란이 일어났고 갑자기 시리아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여 그들을 도왔다.
오늘날 레바논의 절반이 시리아 군인의 손에 들어갔다. 나머지 75%가 발랑기스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실정이다.
레바논의 대부분은 파괴되었다. 부자 레바논인들은 대부분 유럽으로 이민 가버렸고 가난한 사람들만이 남아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희망이 있는가?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에 참된 평화가 열릴 것인가?
레바논은 정치적으로 안정적이라 말할 수 있는가? 고역적이고 맹신적인 종교집단은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리만큼 수적으로 감소될 것인가? 중동의 여러 나라는 그 생활의 질을 향상 시키기 위하여 국민들의 상황으로 개발하는 일에 열을 낼 수 있을 것인가? 피난민들은 결국 정착하게 될 것인가?
 
이집트 국민은 30년 간 전쟁상태를 지내고 나서 처음으로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레바논 국민은 현재로서는 아무런 희망이 조짐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귀향할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고향을 등졌다. 이스라엘 국민은 안전한 국경이 현실화 될 수 있음을 알기 시작했다. 가난한 백성들은 서비스가 증진되고 생활의 질적 향상이 현실화핳될 때를 추구하고 있다.
 
도처에서 민중들은 하느님과 그들의 관련성에 대하여 수많은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 잡다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자극되어 – 진리를 찾고 있다.
 
민중은 의미 있는 삶에 주리고 목마르다. 그들은 충만한 생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들은 희망과 만족과 기쁨을 주는 생애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하느님은 –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사람들에게 충만한 인생을 허락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셨다.
하느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통하여 그들의 영적 사명감을 깊게 하고 그들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하여 지금도 일하고 그 앞으로 계속 일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교의 교회는 침묵할 수 없다.
교회는 백성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교회는 민중의 현장에 이를 분배해야 하며 그들과 그들의 공동체를 발전시켜 주는 모든 가능한 프로그램과 활동으로 그들에게 도입시켜야 한다.
주님은 고통당하는 백성에게 복음을 가져오고 쪼개진 마음들을 한데 묶으며 포로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게 하시려고 그의 교회에 기름을 부으셨다. (이사야서 61, 1). 이 일이 실현될 때 정의가 물처럼 흐르게 될 것이고 공의는 흐르는 시냇물처럼 될 것이다.
(아모스서 5, 24)
 
예수는 민중들의 영적 생과 물질적 생, 양쪽 모두에 큰 관심을 보이셨다.
예수는 죄인들(눅15)에 대해서만큼 헐벗은 사람,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셨다. (마 25, 31-41) 백성(국민, 시민, 민중)에게 베푼 모든 일은 그분에게 한 것이다. (마태복음서 25, 40).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Kirche, 그리스도교 교회의 통칭) 는 민중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공의를 세워야 한다. 공의는 하느님의 행동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는 비인간화시키는 요소(들)에 대항해야 한다.
교회는 민중들이 더 인간적으로 되도록 도와야 하고,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행동하는 것이 곧, ‘참사랑’이다.
 
 
[재입력 / 10. Oktober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