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to mit Geschichte/인물 사진

고 장준하(張俊河)

행복나무 Glücksbaum 2023. 11. 14. 17:09

장준하, 1918년 10월 1일 (1918년 음력 8월 27일) -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가, 종교인, 언론인, 사회운동가이다.
본관은 안동으로, 일제 강점기에 교육 활동을 하였고 일본군 쓰가다 부대에 자원 입대하여 1944년 1월 제65사단 7991부대에 배치되었으나 그해 7월 장쑤 성 쑤저우에서 탈출, 중국 중앙군관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중국군 중앙군 준위가 되었다. 1945년 중국 쓰촨 성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찾아가 1945년 2월부터 한국광복군 소위로 복무하였다. 한국광복군으로 재직 중 미국 CIA의 전신인 전략첩보대(OSS)에서 활동하면서 3개월간 국내 진공작전에 가담하여, 국내 밀파 특수공작원으로 대기하던 중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

1945년 11월 임정 귀국 제1진으로 귀국, 이후 김구의 비서로 있다가 이범석의 민족청년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1공화국에서 공무원에 채용되어 서기관으로 임용되었고, 1950년 문교부 국민정신계몽 담당관, 1952년 문교부 국민사상연구원 기획과장, 서무과장, 사무국장 등을 지내고 《사상계》를 창간하였으며, 1956년 동인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사상계》는 당시 자유당 정권을 규탄하며 4·19 혁명의 단초가 되었으며, 혁명 이후 제2공화국에서 장면 내각의 문교부 대학교육심의회 의원, 국토건설단 기획부장, 국토건설단장 등을 지냈다.

5·16 쿠데타 이후 한일회담 반대 운동, 베트남 전쟁 파병 반대 운동에 가담했다. 6대 대선에서 윤보선의 지지 유세 중 박정희의 친일파, 남로당 경력을 문제 삼았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고, 이후 신민당과 윤보선과 함께 국민당에서 활동했다. 1967년부터는 7대 국회의원을 지내 국방위에서 활동하였다.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 선고에 대해 2013년 1월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1975년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는 모종의 거사를 준비 도중,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최후를 맞았다.

가명 김신철(金信鐵)이 있으며, 일본식 창씨개명 이름은 '장안준하'(張安俊河)이다. 그리스도교 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 세례명은 루수이다.


[17. August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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