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to mit Geschichte/인물 사진

고 박태순.

행복나무 Glücksbaum 2023. 8. 30. 06:18

시대의 풍속과 역사로서의 소설
- 박태순의 산문정신


지난 금요일(2023년 8월 25일) 소설가 박태순 선생(1942〜2019)의 4주기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지하 1층 강당에서 열린 추모 행사는 김남일, 오창은 두 평론가의 박태순 문학에 대한 발표와 이승철 시인의 ‘사진으로 보는 박태순의 삶과 문학’과 함께 박태순 전집 간행에 대한 보고로 진행되었다.

전집간행위원장인 염무웅 선생의 말씀처럼 박태순은 그 문학적 성취와 문학사적 중요성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래도 이날 행사에는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후배들이 20여명이나 참석하여 전집을 간행하는 일을 시작했으니 내년쯤이면 우선 중•단편 전집이 나올 것 같다. 장편과 르포, 일기를 포함한 본격적인 전집을 위한 1차 작업이다.

사실 박태순은 민중문학의 중요한 작가지만 잘 읽히는 작가는 아니다. 단편소설도 감칠맛이 없고 무덤덤하여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음식으로 치면 강낭콩과 동부를 넣어 입안에서 살살 녹는 고슬고슬한 햅쌀밥이 아니라 거칠고 딱딱한 현미잡곡밥 같다. 인내심을 가지고 여러 번 씹어야 가까스로 그 구수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조미료나 향신료를 치지 않은 그의 건조한 문체는 성형이나 화장을 하지 않은 아낙처럼 투박하고 억센 인상을 주는데, 뚝배기보다는 장맛이라고 그 깊은 뜻과 궁량은 아는 사람만 겨우 헤아려 짐작할 뿐이다.

‘당당한 비주류 작가’ 박태순의 삶과 산문정신에 대해서는 1980년 박태순과 고은 등이 주축이 되아 발간한 ’자유실천문인협회(자실’) 기관지 『실천문학』의 편집실무를 담당했던 후배 김남일 소설가가 잘 짚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본인의 말대로 김남일은 박태순과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민중의 이야기꾼, 시대와 역사의 증언자 혹은 기록자, 국토와 민중을 찾아 방방곡곡을 헤맨 순례자, 문학적 상상력으로 역사를 재해석한 역사학도, 제3세계 문학운동을 처음으로 소개한 문화운동가.

그의 아들 박영윤 변호사의 말대로 “집안 식구들에게는 자상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그래도 잘 살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삶이 아닌가. 생전에 박태순 선생은 제3세계 작가들의 시와 기록,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 공연 테이프와 독일의 반체제 음유시인 볼프 비어만의 노래 테이프 등 각종 자료들을 후배인 나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다.

언젠가 박태순 선생이 대구시내 남산동의 전태일 생가와 이소선 여사의 고향인 대구 근교를 탐방하는 길에 나에게 연락이 닿아 동대구역 앞에서 만났는데, 다짜고짜 포장마차로 데려가 연거푸 소주잔을 내미는 것이었다. 술이 약한 나는 몇 잔 마시지 못해 얼굴이 벌개지는데, 그는 소주 한, 두 병은 맹물 마시듯이 들이키며 쉬지 않고 내가 잘 모르는 전태일과 이소선 여사에 얽힌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그는 남의 집이나 여관은 절대 가지 않고 꼭 여인숙에서 묵는 고집이 있다. 포항의 아동문학가인 고 손춘익 선생(1940〜2000)은 “박태순이는 말이야, 여인숙에서 자면서 새벽에는 꼭 미제 콜만 버너로 커피를 끓여 마신단 말이야”하고 껄껄 웃으며 흉을 보기도 했다. 다혈질이고 정이 많은 두 사람은 깍듯한 서울내기와 투박한 경상도 문둥이로 결이 전혀 달랐지만, 누구보다도 격의 없는 친구 사이였다.

박태순의 초기 작품들에 대해서는 오창은 평론가가 「도시적 감성의 진화와 민중 발견의 리얼리즘」이라는 발제문을 통해 자상하고 예리하게 분석한 바 있으므로 덧붙일 말은 없다. 집에 와서 박태순의 1980년대 작품들을 모은 단편집 『신생(新生)』(민음사, 1986)의 뒷편에 붙은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박태순 문학의 산문정신과 시대정신의 윤곽을 대강 그려볼 수 있겠다. 작가는 <민중문학>을 넘어서 <사회소설>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회소설>이란 그렇다면 무엇인가. ‘소설은 풍속이다’하는 것으로부터 출발을 해서 그 소설이 한 시대의 역사가 되게 하는 방향을 갖고 싶은 것이다. 70년대에 우리는 소설이 양심이며, 그리하여 진실의 체현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80년대의 산문정신은 그보다 큰 것을 감당할 것을 요구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체의 전체적인 허위 구조 속에 내재해 있을 진실의 체계, 그 총체적 풍속을 밝혀내는 일이 선행돠어야 한다면, 그 바탕으로부터 이 시대의 산문문학, <사회소설>은 씌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1980년대 소설의 과제가 “사회 구성체의 허위 구조 속에 내재해 있을 진실의 체계, 그 총체적 풍속을 밝혀내는 일”이라는 말이다.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사회구성체 논쟁은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변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명제로 귀결되었는데, 박태순 선생은 이러한 사회과학적 틀로는 진실의 체계를 밝혀낼 수 없으며, 그러므로 산문정신은 숨겨진 진실의 체계, 즉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총체적 풍속을 밝혀내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가 말하는 ‘총체적 풍속’이란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기계적인 계급론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해관계와 어긋나거나 계급적 이해관계를 배반하는, 존재와 의식의 괴리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실제 현실에서는 가난한 노동자가 재벌이나 부자들의 편을 드는 일이 다반사가 아닌가.

“60년대 문학으로 규정된 첫 번째 창작집 『무너진 극장』, 그리고 ‘외촌동 사람들’이란 부제를 붙였던 두 번째 창작집 『정든 땅 언덕 위』와는 달리” 세 번째 창작집 『신생』에서는 “비공식 부문 노동자, 소작농과 노동자, 농공(農工) 마을의 부랑층, 루트 세일즈맨, 조직 노동자, 소시민, 중산층, 중상류 부랑층… 따위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시도의 목적은 “계층적 인식 때문에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풍속사를 파악하기 위한 필요성에서였”다고 밝힌다.

박태순의 작품들은 그의 이같은 산문정신에 따라 건조체로 기록한 197, 80년대 한국의 사회사라고 할 수 있다. 소설적 재미는 없지만 분칠이나 가공을 하지 않은 중하류층 인간들의 적나라한 생활상을 그의 작품들처럼 생생하고 정확하게 보여주는 역사기록은 없다. 이 시대를 알려거든 신문 사회면이 아니라 박태순의 소설들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나올 본격적인 박태순 전집에는 중•단편은 물론이고 장편과 르포, 국토기행문, ‘자실’에 관한 일기와 기록도 당연히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25. August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