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아직 상황은 마무리되지 않은 채
국민의 마음은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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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히브리서에는 다섯 차례 양심에 대한 개념이 등장합니다.
히브리서 9장 9절에서는 현시대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온전하지 못한 양심’을,
히브리서 9장 14절에서는 ‘구원받은 양심’을,
히브리서 10장 2절에서는 ‘죄의 양심’을,
히브리서 10장 22절에서는 ‘깨끗해진 양심’을,
히브리서 13장 18절에서는 어느 때고 올바르게 처신하려고 하는 참된 양심, ‘바른 양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양심이라는 말이 빛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이미 법에만 저촉되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해도 된다는 마음을 넘어, 법을 가볍게 무시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무서운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누구보다 정의와 양심에 먼저 물어야 하는 사회지도층이 법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한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헌법재판소에 호소합니다.
되어야 할 일은 빠르게 되도록 하는 일이 정의의 실현이며 양심의 회복입니다.
우리 안에, 저 깊숙이 살아있는 정의와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면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법은 상식과 양심으로 해결이 안 되는 일이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인간 사회의 최후 보루입니다. 따라서 되도록 상식과 양심 안에서 해결될 수 있어야 좋은 사회입니다.
정의에는 중립이 없습니다. 우리 헌법이 말하는 정의의 판결을 해주십시오.
극도의 혼란과 불안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로 가족과 이웃이 싸우고,
수없이 많은 상점이 폐업을 하고,
젊은이들은 어디서 미래를 찾아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모두가 너나없이 ‘어려운 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돌볼 처지가 안 되면 사회는 더욱더 나밖에 모르는 일이 가속화되고,
인간이 서로를 돌보고 협력하지 못한다면
공영의 길은 점점 멀어집니다.
이제 올바르면서도 조속한 회복을 위해 빠른 시일 내에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린 사람들에 대한
시시비비를 명백히 밝혀주시길 촉구합니다.
저는 평생 예수님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라는 말씀을 매우 중요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이웃에게 주는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정부는 국민에게,
국민은 각자의 이웃에게 좋은 것을 주려는 그 마음이 사랑이며 치유이며 회복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어쩌면 모든 회복의 출발일지 모릅니다.
각자의 양심에 기대어 한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하며 나아가며 행동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결단은 부활로 나아가는 다시 태어남입니다.
[Samstag , 22. März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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