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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모 (현재명, Bergama)

행복나무 Glücksbaum 2007. 12. 26. 17:24

이즈미르에서 정 북쪽 방향으로 100km쯤 올라가면 소도시 버가모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이 일곱 교회 중 버가모 교회이다.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 도시의 이름도 베르가마(Bergama)로 변했다.
오늘날 인구 6만 명 정도의 농업 집산지에 불과하지만 이곳에 돌무더기처럼 널려 있는 엄청난 양의 역사의 유적들은 버가모의 과거에 융성했던 대 도시였음을 잘 보여준다.
버가모의 전성기는 기원전 3-1세기 사이의 그리스 시대였다. 이곳은 버가모 왕국의 수도로서 주변지역에 군림하던 큰 도시였다. 버가모의 산 위에 세워졌던 아크로폴리스의 왕궁과 신전들의 유적은 한 때 번성했던 버가모 왕국의 권세와 영광을 증언해 주고 있다. 이곳에서 제우스 신전의 제단 초석을 발견한 사람은 고속도로를 건설하던 독일의 한 토목 기사였다. 그에 의하여 발견된 신전의 초석의 비문은 베를린에 있는 박물관 고고학자들에 의해 해득되었고 신전의 기초 석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얕는 동산처럼 보였던 베르가마 신전 터는 30년 넘도록 세세하게 발굴되어 지금은 이 지역의 유물들이 독일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페르가몬 박물관에는 이곳에서 발굴한 것뿐만 아니라 중근동의 건축과 종교 유물이 가장 많기로 유명하다.


 
 1) 버가모 도서관

버가모에 남아 있는 유적 중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도서관이다. 지금은 한 권의 책도, 한 평의 서고도 없이 건물 기초부분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그리스 시대, 이 도서관은 특히 도서 수집광이었던 유메네스 왕의 후원으로 크게 팽창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버가모 도서관이 자기네 도서관보다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버가모에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시켰다. 당시 책들은 파피루스에 기록했다. 이집트는 양질의 파피루스 산지였다. 파피루스 공급이 끊어지자 버가모 도서관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말과 같이 버가모 사람들은 파피루스를 대체할 새 서사용지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양피지였다. 양의 가죽을 펴서 늘린 다음 표백, 건조하면 훌륭한 필사 자료가 되었다.
버가모 사람들이 고안해 만든 양피지를 영어로는 파치멘트(parchment)라 하고 헬라어로는 버가멘(Pergamen) 이라 한 것은 이 지역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2) 고대 버가모 아스클레피온 종합병원

버가모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종합병원이었던 아스클레피온(Asclepion)이다. 버가모 병원은 기원전 4세기 때 설립되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아스크레피온 유적은 서기 2세기 하드리아누스 로마 황제 때 건축된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는 의료의 신이었다. 이 신의 이름에 유래하여 버가모의 병원 이름을 ‘아스클레피온’이라고 지은 것이다.
1960년대에 발굴된 버가모의 아스클레피온은 우선 그 방대한 규모가 순례자들을 놀라게 한다.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돌로 포장된, 폭이 20m나 되는대로, 800m에 이르는 구간이 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다. 길 양편에는 약 15m 높이의 석주들이 도열해 있어 장관을 이룬다. 병원 구내에는 의학도서관을 비롯해서 일반치료실은 물론이요, 음악요법을 위한 야외음악당, 명상요법을 위한 긴 터널 통로, 목욕요법을 위한 진흙 목욕실들이 갖추어져 있다. 약물 투여뿐만 아니라, 심리요법을 포함한 전인적인 치료방법을 사용한 병원이다.
많은 유적 가운데 돌기둥에 부조된 뱀의 형상이 흥미롭다. 그리스 신화에서 뱀은 의료의 신이 되는 아스클레피우스를 상징한다. 뱀의 껍질을 벗고 새 생명을 얻듯이 아스클레피우스의 도움으로 사람들이 질병의 껍질을 벗고 새 생명을 얻는다는 뜻에서 뱀이 ‘의료 신’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도 병원이란 군대의 의무 병과에 뱀을 심벌로 표현한 것은 여기서 유래하는 것이다.

버가모의 아스클레피온은 고대 뛰어난 의학자 중 갈렌(Galen)을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버가모 출신인 갈렌(주후 2세기경의 사람) 당대의 최고의 의학자로 해부학 분야를 개척하였고, 특히 그의 병리학 연구는 근세까지 서구 의학의 교과서였다. 버가모의 종합병원이 고대 세계, 최고의 의료센터로 자리잡은 것은 갈렌의 힘이 컸다.

 
 3) 버가모 교회

버가모에 남아 있는 교회(묵 2:12-17) 유적은 오늘날 터키인들이 ‘크즐 아블루’라고 부르는 거대한 벽돌 건물이다. 터키 ‘붉은 건물’이란 뜻으로, 이 건물은 서기 2세기 경 세워졌는데 본래는 이집트의 세라피스 신을 위한 신전이었다. 흥미 있는 사실은 이 신전이 버가모를 가로질러 흐르는 세리노스 개천 위에 세워져 있다. 지금도 이 건물의 지하층으로 내려가면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개천 위에 신전을 지은 것을 보면 고대에는 이 장소가 특별한 곳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세라피스 신전의 내부는 가로 100m, 세로 200m에 이르는 대규모였고, 신전 자체도 높이가 20m에 달하는 웅대한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주후 300년에 비잔틴 시대에 들어와서 이곳은 오랫동안 교회로 사용되었으나 비잔틴 제국이 쇠퇴와 함께 점차 황폐해져 13세기 이후로 예배는 완전히 그치게 되었다.
오늘날 이 건축물 한쪽 구석에 이슬람교도들을 위한 기도처가 만들어져 있어 완전한 폐허로 전락되는 신세를 면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