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시대에 미얀마의 광산·임산 자원의 개발, 운수·무역은 영국인이, 중소 규모의 상업과 유통은 중국인과 인도인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라와디강 삼각주의 벼농사지대에는 인도인 계절 노동자가 대량으로 유입하고, 하부(下部) 미얀마 농지의 1/3은 인도인 체티야(금융업 카스트)와 영국인을 포함하는 부재지주가 소유하고 있었다.
독립 후 정부는 외국자본을 추방하고, 경제의 미얀마인화정책을 취하였다. 특히 네윈이 집권한 이후는 미얀마식 사회주의에 입각하여 비미얀마인의 자본을 중심으로 국유화하여, 국영 경제구조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국영 경제구조는 처음부터 여러 요인으로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또 국내 치안의 혼란과 외국원조의 도입 억제 등으로 경제는 장기적인 침체 상태에 빠졌다. 62∼76년의 국내총생산 신장률은 연평균 3 %선이고, 공업생산의 신장률은 불과 1.1 %에 머물렀다. 또한 정부가 저임금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단행한 저미가(低米價) 정책과 농산물 거래의 통제가 농민의 생산의욕을 저하시켰다. 62년 이전에 연평균 200만 톤 이상이었던 쌀 수출이 70년대에는 50만 톤으로 격감하였다. 수출 총액에서 차지하는 쌀의 비율이 70 %였으므로, 수출 규모자체도 감소하였다. 거기에 정부가 균형무역을 고수하여 엄격한 수입제한 정책을 폈기 때문에, 원자재 및 설비 부족이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어, 만성적인 물자 부족, 실업 증가가 계속되었으며, 이를 보완하는 것으로 암시장과 밀수가 성행하였다. 74년 민정이양을 계기로, 이러한 악순환을 지양시키기 위해 먼저 외국원조 도입을 단행하였다. 72년까지 연평균 2000만 달러 정도였던 외국원조가 75년 이후에는 1억 달러가 넘었고, 국영공업이 회복할 징조를 보였다. 77∼78년의 경제성장률은 6.4 %로, 네윈 정권이 들어선 이래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나라의 기본경제인 쌀농사는 저미가와 공출제도로 인하여 여전히 생산의욕이 저하되어, 쌀 수출은 증가하지 않고 있다. 쌀 외의 수출품은 목재(주로 티크재)·콩·수산물·보석 등이며, 해마다 상당량이 밀수되고 있다. 석유는 76년부터 자급하고 있으며, 소량이지만 수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구리·아연 등 수출이 가능한 광물자원은 아직 미개발이어서, 목재·수산자원 등과 함께 장래의 개발이 기대된다. 공업화는 특히 뒤떨어져 있어, 민간 중소공업은 원자재 부족과 거래 제한 등으로 거의 유휴상태에 머물러 있고, 국영공업의 조업율도 78년 겨우 평균 70 %였다. 현재 석유화학·종이펄프·식품공업에 특히 중점을 두고 있다.
농림 · 수산업
토지개혁은 1953년부터 단행되어, 일정한 보유한도를 넘는 농지는 수용되어 토지를 갖지 않은 농민에게 분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 미얀마는 매년 300만 t 이상의 쌀을 수출하였으나, 세계대전과 유통구조의 혼란, 농민의 생산의욕 저하로 수출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었다. 하부 미얀마의 수출용 수전단작(水田單作) 농업에 대하여 상부 미얀마에서는 버마족의 전통적 농업이 행하여진다. 농지는 운하와 저수지에 의해 관개되며, 쌀·콩류·깨·땅콩 등의 식량작물, 목화·담배 등 다양한 작물이 재배된다. 샨 고원의 구릉지에서는 차와 각종 과일, 테나세림 연안 저지에서는 코코야자와 고무가 생산되고 최근에는 황마 생산도 늘고 있다. 삼림은 국토면적의 57 %를 차지하며, 1/4이 개발림 이다. 중요한 삼림은 독립 전부터 국유화되어 티크·핀카드 등 견목 류(堅木類)가 영국 계 기업에 의해 벌채되었으며, 가치 있는 수출품이었다. 현재는 국가목재청이 벌채·반출·제재·판매를 독점하고 있다.
수산업은 하천·호소·운하 등에서의 내수면 어업이 중요하다. 수산물은 염건어(鹽乾魚)나 어장(魚醬)으로 처리되며, 미얀마인의 식생활에 불가결한 것이지만 대형 어선과 냉장시설이 부족하여 국내소비량을 충족시킬 정도이다.
광공업
중요한 광산자원은 샨주 북부의 납과 아연, 샨주 서부에서 테나세림 지방에 걸친 주석과 텅스텐이며, 광산은 1962년부터 석유광물 개발공사가 경영하고 있다. 석탄은 친드윈강 유역의 칼레와에서 채굴되고, 철광은 샨주 각지에 매장되어 있으나 본격적인 개발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예난자웅과 차우크를 중심으로 하는 이라와디 강 중류 유역은 원유의 매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독립 전에는 유력한 수출품이었다. 유전은 전쟁으로 막대한 손상을 입었으나, 국영으로 복구·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산유 량은 독립 전 수준의 절반밖에 안 된다. 공업은 독립 전에는 정미(精米)와 제재 외에는 미미하였다. 산업 국유화 정책으로 외국 계 기업이 접수되고 국영공장이 신설되어, 양곤을 비롯한 공업지역이 형성되었다. 정미·제재·정유 외에 주요업종으로 설탕·식용유·담배·맥주·홍차 등의 식품공업, 철강·농업기계·펌프·면직물·견·화학섬유·마대·약품·세제·시멘트 등의 각 공업이 있다.
교통
이라와디 강은 강어귀에서 1,400 km 상류에 있는 바모까지 흘수 1.2 m의 기선이 항행할 수 있고, 삼각주지대에 3,000 km, 친드윈 강에 630 km의 가항(可航) 수로가 있다. 수입품의 85 %가 양곤 항으로 들어온다. 철도는 양곤∼만달레이 620 km, 만달레이∼미치나 540 km의 간선을 비롯하여 전국에 3,098 km의 노선이 있다. 주요도로의 총길이는 약 2만 5000 km, 그 중 1만 3700 km만이 우기에 통행이 가능하다. 항공은 국영기업이 양곤의 밍갈라돈 공항을 중심으로 국내·국제의 각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다양한 모습의 시내버스.
트럭 뒤나 픽엎에 매달려 가면 요금이 싸다나요.
매연으로 인한 환경 오염은
생각해 볼 일이다.
2007년, 택시들이 GAS를 넣기 위해
500m 씩 줄지어 기다린다.
2008년 드디어 시위가 일어나다.
원유와 가스를 채굴하면서도 가공능력이 없어
수입에 의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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