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같았으면 나보다 더 서두르며 재촉했을 아내가
오늘은 왠지 느긋했다.
단체로 가는 학술 세미나라고는 하지만
모처럼 아니,
결혼 이십여 년만에 처음으로 부부 동반인
나들이에 적이 마음이 설레었다.
지난 밤에는 동창 모임이 있어 자정이 훨씬 지나
귀가를 했지만,
마치 소풍가는 아이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건만
아이들의 식사와 도시락을 바삐 챙기고
욕실을 들락거리던 아내가 막상 화장대
앞에선 자못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초조히 시계를 연신 들여다 보면서도
오랜 만의 여행에 행여 기분이 상할까 봐
재촉을 하지는 않았다.
얼마를 그렇게 초조해 하다 가까스로 집을 나서기는 했지만
출근시간과 맞닿아 있어 공항까지 갈 일이 난감했다.
아내의 의견을 좇아 전철을 탔다.
그러나 교통체증에 관계없이 달릴 수 있으리라 여기고
탑승한 지하철은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역을 거쳐
간신히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비행기가 이미 이륙한 이후였다.
어이가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줄곧 들떠있던 모든 기대와
긴장이 풀리면서 허탈했다.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려던 중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다음 비행기에
탑승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이미 기분이 상해버린 뒤라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탔다.
자신이 늑장을 부린 과오에 대한 책임을 느낀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만 짓고 있었다.
나 또한 불편한 심기를 달래보려고 책을 펼쳐들었으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눈을 돌려 아내쪽을 바라보니,
시트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갑자기 아내가 측은해 보였다.
내심 울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이 되었다.
어쩌다 사업하는 사람의 내자가 되어 온갖 시련을 감내하며
나이 마흔을 넘긴 여자,
한 남자의 아내이기 이전에 독립된 존재로서 벅찬 고독감을
무겁게 안고 살아온 여인 ― 갑자기 그녀가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섬처럼 외로워 보였다.
언제나 부담없던 사람이었기에 아내를 굳이 따로 떼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일상 들이쉬는 공기처럼 그저 늘 그렇게 당연히
곁에 있는 걸로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아내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여보, 우리 다시 공항으로 갑시다" 했더니,
핀잔을 하면서도 결코 싫지 않은 기색을 보였다. .
마침 1시 15분 비행기에 자리가 있어 탑승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우린 제주에 도착했다.
먼저 떠난 일행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그들과의 합류
계획을 포기하고, 우리 부부는 마라도로 향했다.
국토 최남단의 작은 섬 ― 그곳의 초원을 뒹굴며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배편이 되지 않아
착한 어부의 아내인 산방덕이가 산신령이 되어 있다는
산방산으로 향했다.
지금부터 180만 년 전, 한라산의 용암이 분출할 때 파편이
날아와 생긴 산이라는 내력을 엉터리 전도사로 부터
들으면서 길목의 어느 호젓한 횟집에 도착했다.
망망대해가 한 눈에 보이는 2층,
넓은 방에 아내와 단 둘이 마주 앉았다.
참 오랜 만에 술잔을 부딪치면서 소주에 취하고,
제주바다의 풍광에 취했다.
대자연과 하나된 듯한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더 흠뻑 취하고 있었다.
가슴속에 감추었던 많은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20년 세월의 회포를 한꺼번에 풀어 놓는 듯했다.
언제나 남편을 스승처럼 생각해 왔다는 아내,
그 심연 같은 삶의 의미를 이제사 알 듯도 한데,
그래도 소박한 꿈만은 버릴 수 없어
이 다음 세상에는 나무꾼의 아내가 될지언정
공인의 아내는 되기 싫다는 푸념섞인 하소연에 가슴이
찡해왔다.
큰 나무 아래 작게 핀 풀꽃처럼 살고 싶다는 소박한 아내다.
현란한 예쁜 꽃들을 보고 모두가 환호성을 질러도
전혀 부럽지 않은 작은 풀꽃이 되어 고독한 이에게
잔잔한 기쁨을 전해주고 싶다는 한 여인이 곁에 있었기에
결국 나는 나 다울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스스로를 작다고 낮추는 사람은 결코
작은 사람이 아님을 안다.
내 집안 일보다는 세상 일을 걱정하고 만민을 위해
웅지를 품은 고집스런 지아비를 섬기는 아내의 사랑
해법(解法) 앞에서 나 역시 비로소 작아진다.
가장 여리고,
가장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영원히 구원한다는
괴테의 말이 오늘 갑자기 진정한 명언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지금 우리 부부는 비록 극과 극이 상충하고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하나의 질서요,
조화가 아니겠느냐는 선문답 같은 아내의 말에
마주보고 크게 웃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듯
어느 새 해는 서산에 기울고
횟집 아줌마의 부러운 눈길을 뒤로한 채 산방산에 올랐다.
산방굴 부처님께 참배를 하고 굴천정 바위 틈에서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산방덕이의 눈물을 받아 마셨다.
아내의 사랑을 거기 풀어서…,
옛날 옛적에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산방덕이는 가난한 어부인 남편과
오순도순 살았는데 산방덕이를 탐낸 고을 원님이
어부인 남편을 풍랑 사나운 바다로 내보내 불귀의 객이 되게 하고,
그 아내를 차지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산방덕이는 어기차게 고을 원님의 수청을 거부한 채
욕심만 가득한 듯한 인간세상을 버리고
산방산 산신령이 되어,
아직도 순수한 서방님의 사랑만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산방굴은 태초의 신비가 서려 있었다.
진정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전설을 향훈처럼 음미해 보았다.
하산길 성황당에서 아내와 함께 염원의 돌을 쌓았다.
다음 생애에는 나무꾼이 되고 싶다고,,,
아내 몰래 빌면서….
(수필가 김병관님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