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나는 날입니다. 우리 가족이 함께 여름 휴가를 떠나는 날이거든요. 목적지요? 남해 바다에 있는 선녀도라는 섬이에요. 이름을 처음 들어 보셨다구요? 하긴 나도 그런 섬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지요. 사흘 전 아빠로부터요. 어쨌든 그 섬에는 꽤 유명한 해수욕장이 있고 동백나무 숲이 울창하다고 해요. 검은빛의 조약돌이 깔린 해변 마을은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는 얘기도 들었구요,
아무러면 어때요, 내게 중요한 것은 푸른빛의 바다지요. 난 바다를 좋아해요. 장래 희망이 해저 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예요. 스킨스쿠버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잠수를 했는걸요. 이래 뵈도 잠수 경력 2년이 넘는답니다. 선녀도 주위의 바닷가를 살펴보고 그곳에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는지 관찰일지를 쓸 거예요. 괜찮지요? 제 계획.
휴게실에서 아이스크림과 핫바를 먹었습니다. 아빠는 커피를 마시며 경제신문을 보구요. 엄마가 "이곳까지 경제신문이냐"고 핀잔을 주었지요. 그렇지만 나는 이해해요. 우리 아빠, 요즘 잘 나가는 벤처 기업의 과장이거든요. 휴가철이라 고속도로는 많이 밀렸습니다. 어떤 구간에서는 아예 십분 이상 차가 꼼짝 못하고 서 있기도 했지요. 차를 세운 사람들은 모두 차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거나 음료수를 마셨습니다. 그런데, 저런…. 담배를 피우는 어른들이 모두 꽁초를 도로에다 버리는 거예요. 음료수 캔을 차창 밖으로 휙 던지는 사람도 적지 않구요.
차가 조금씩 움직이자 이번에는 갓길로 달려가는 차들이 생겼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한 대가 달려가자 곧바로 몇 대의 차들이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우리 아빠가 엄마에게 찡긋 눈짓을 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참으세요, 애들 보는데"라고 얘기했지요. 차가 멈춘 곳에서 아빠는 계속 경제신문을 보았는데 큰 제목이 "피서지 땅도 자세히 살펴보자"였습니다.
내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아빠는 "좋은 피서지를 찾아야 휴가를 잘 보낼 수 있다는 뜻"이라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아주 많은 고생 끝에 우리는 선녀도로 가는 배를 타는 항구에 닿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배가 선녀도 가는 마지막 배라고 말했습니다.
부둣가는 너무 붐볐습니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았습니다. 문제는 그 배에는 차를 50대 밖에 실을 수 없는데, 모여든 차는 100대도 넘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먼저 자기 차를 싣겠다고 여기저기서 다툼이 일었습니다. 그 속에서 어떤 고급 승용차는 분명 뒤에 왔는데도 다른 차보다 먼저 배에 올랐습니다.
짜증이 났습니다. 선녀도의 관찰 계획만 없다면 금세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지요.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킨스쿠버를 생각하고 꾹 참을 수밖에 요.
선녀도에 도착하자 나는 내 계획이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섬에는 온통 사람들의 소음뿐이었습니다. 삼겹살 구워 먹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춤추는 사람, 악 쓰는 사람….
그보다도 내가 더 놀란 것은 주차장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무밭이나 콩밭에 버젓이 주차를 했습니다. 아빠도 무밭에 주차를 했는데 푸른 무 잎들이 모두 차바퀴에 깔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주차요금을 받아갔지요. 그 날밤 나는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더 많은 주차요금을 받기 위해 일부러 주차장 자리에 곡식이나 채소를 심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밤새 술 먹고 노래하고 떠드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내일 서울로 돌아가자는 말을 해야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묵은 모텔로 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아빠는 그 손님과 함께 악수를 하며 문밖으로 나갔습니다. 문밖에서 그 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참 좋은 땅입니다. 전망이 아주 좋아요. 2년만 묵혀 두면 세 곱 장사는 틀림없다니 까요. 주저말고 사 두세요."
글 / 곽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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