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 효녀가 심청이라면, 고대 로마에는 페로가 있다. 페로는 늙은 아비 키몬이 금이야 옥이야 키운 외동딸이다. 그런데 아비가 어떤 일로 감옥에 갇혔는데, 청천벽력 같은 판결이 떨어졌다. 먹을 것을 아무 것도 주지 말고 굶겨 죽이라는 것이다. 혼자 옥바라지를 하는 효녀 페로는 매일 쇠약해지는 아버지를 보면서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른다. 간수가 어찌나 서슬이 퍼런지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도 들여보낼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며칠 못 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생긴 것이다.
페로는 며칠 고심 끝에 야릇한 꾀를 하나 낸다. 굶어서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제 젖을 물리기로 한 것이다. 효심이 지극하면 처녀라도 수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뚝딱 생겨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죽음의 문턱을 오락가락하던 키몬은 다행히 회생했다. 페로가 매일 풀방구리 드나들듯하면서 젖을 물리니 오히려 늙은 아비는 살이 포동포동 올랐다.
뭐, 이런 줄거리인데, 이 이야기는 고대 로마의 역사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가 기원후 30년경에 펴낸 『로마의 기념할 만한 업적과 기록들』의 제5권 4장에 실린 이야기이다. 이 책에는 특히 부모에 대한 효성, 형제 사이의 우애, 조국에 대한 충성의 본받을 만한 사례가 다수 수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페로와 키몬의 이야기가 가장 빛났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르네상스 문필가 보카치오가 『로마식 사랑』(Caritas Romana)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정리하고 펴내서 그 훈훈한 내용이 널리 알려졌다.
효녀 페로 이야기는 곧 인문학자와 예술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 감옥이라는 밀폐된 공간 상황과 죽음을 앞둔 절박한 심리 장치를 교묘하게 엇대 놓고, 아버지와 딸 또는 젊은 여자와 늙은 남자의 배역 구성까지 얹었으니 구랏발 하나로 먹고 사는 인문주의 글쟁이들의 입맛이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사회적 통념으로서의 윤리적 가치와 혈연적 가치로서의 효성이 어떤 함수 관계로 해석되는지가 논쟁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도 딸이 아버지에게 젖가슴을 꺼낼 수 있는가? 그리고 딸의 행동에 대한 아버지의 선택은 어땠을까? 이런 문제가 인문학자들의 관심사였다면, 이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좀 다른 문제와 씨름했다. 아버지와 딸의 역할과 심리적 전개를 효율적으로 표현하려면 두 등장인물의 표정과 몸짓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또는 어두운 감옥의 공간 배경과 횃불 조명의 명암법을 어떻게 줄거리의 전개와 연결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실제 구성을 짜고 채색을 실행하는 화가들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이다. 효성의 덕목에 밑줄 쫙 긋는 그림을 그려야 할 텐데, 가령 감옥 쇠창살 바깥에서 처녀가 허연 젖만 불쑥 들여보내는 식의 자세를 취했다가는 자칫 그림이 우스꽝스러워질 위험이 있고, 그렇다고 어린 딸이 젖무덤 사이에 늙은 아비를 꼭 끌어안고 있는 식으로 가다가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리스’의 주제처럼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의 주제로 오해를 받을 소지가 생긴다. 본받을 만한 교훈 그림이 싸구려 눈요깃감으로 전락해서는 안 될 말이다.
네덜란드 화가 마이포겔도 틀림없이 이런 문제로 머리를 싸맸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가난한 화가는 이런 말로 예술의 부끄러움을 위로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지. 심 봉사 딸 심청이라도 그랬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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