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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시 공원과 궁전(Der Palais und Park von Sanssouci), Potsdam

행복나무 Glücksbaum 2022. 12. 31. 04:46

베를린의 외곽 서남방향으로 36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포츠담은 동독시절의 대도시 포츠담(Potsdam)을 만나게 된다. 이 도시를 찾는 이들을 붙들어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의 포인트가 상수시 궁전(Schlo Sanssouci, 1745-1747년)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포츠담에는 이외에도 인상적인 건축물들이 넓은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이틀 사흘 정도 넉넉한 시간을 두고 관광해도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특히 한국인의 눈길을 끄는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승전 4개국이 모여 이른바 포츠담 협정을 체결했던 회담장소, 세리실리엔 호프(Cecilien Hof)를 들 수 있다. 이 회담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소련 측은 전쟁 종료 후의 세계 정치를 구상했는데 한국의 독립 후의 신탁통치 안이 다루어지기도 했다. 또한 2001년 꽃박람회가 개최되는 곳으로 다양한 꽃의 동산을 거닐어 봄직하다.

(1) 프레드리히 2세
상수시 궁전은 1745년 당시 프로이센의 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대제 II (Friedriech II der Gro von Preu en)의 독자적인 설계를 바탕으로 세워진 건축물이다. 그는 제위 당시 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프로이센을 유럽 내 강국으로 등장시키는데 초석을 놓은 사람이다.
1712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아들이자 프리드리히 1세의 손자로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궁중생활을 즐기고 음악과 프랑스의 문학을 선호하던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갖춘 인물이었으며 당시의 지식층에 풍미하던 계몽주의에 대하여 깊은 이해심을 가지고 있었다. 예술과 문학을 향한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군사의 왕이라는 별명을 듣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금욕주의적, 군사적으로 훈육하려고 하여 아버지의 엄숙한 정신과 화합하지 못하였다. 그는 18세기가 되던 1730년 도주를 시도하다가 붙들려 그의 도주를 도왔던 친구 한스 헤르만 혼 카테가 교수형에 처해지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해야 했다. 이 사건의 결과로 그 자신 왕위 계승이 보장되었던 황태자의 지위도 박탈당하게 된다. 이후 2년 동안 프리드리히는 루핀(Ruppin)에서 군대 통솔과 시민행정을 배웠다. 자신이 사랑하지 않았지만 브라운슈바익의 페르디나드 일베어트 2세(Ferdinand Alberts II von Braunschweig)의 딸이었던 엘리자베드 크리스티네(Elisath Christine)와 결혼함으로써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부왕과 화해한 모습을 갖추고 황태자의 지위에 복귀한 이후 7년 동안 라인스베르크(Rheinsberg)에서 독자적인 시종 치제를 거느리고 철학, 역사, 시를 배우는데 몰두한다. 당시 그는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와 편지 교환을 하면서 논문 한편을 썻는데 볼테르는 이 논문에 '반 마키아벨리알'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이것은 계몽주의 사랑에 입각해 이태리 정치 사상가 마키아벨리(Nicolco Machavelli)의 군주론을 반박한 평화 군주론이다. 요컨데 군주는 국가의 제 1의 시종(der erste Diener seines Staats)으로서 무제한적 주권을 누리고 행사하지만 국민의 복지에 대한 의무를 반드시 져야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그는 부왕의 통치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진정한 화해에 이르게 된다.
1740년 부왕이 서거한 뒤에 왕위에 오른 프리드리히는 프로이센의 국력확장에 착수한다 이 해에 오스트리아 왕인 카알 4세(Kaiser Karl VI)가 서거하면서 마리아 테리지아(Maria Thresia)가 왕권에 오르는 정 정의 변화를 틈타 슐레지엔 지방에 대한 프로이센의 부분적인 영토권을 주장하면서 전쟁에 돌입하였다. 이 전쟁과 1744년에 재차 발생한 슐레지엔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끈 프리드리히 2세는 뛰어난 군사 전략가임을 입증하고, 이후에 발생한 7년 전쟁에도 결국에는 승리로 마감해 프로이센이 유럽 내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정사의 번잡함을 벗어난 안락한 생활을 할 거주 공간을 짓고자 하던 중 1744년 자신이 그린 스케치를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였던 게오르그 벤체스라우스 폰 크노벨스도르프(Georg Wenzeslaus von Knobelsdorff)에게 주어 궁전을 설계하도록 했다. 쌍수시 궁전은 프리드리히 2세가 사용목적으로 지어 이곳에서 정사를 보는 일은 드물었으며 지극히 제한된 인물들만이 이 궁정을 방문하거나 체류할 수 있는 특혜를 누렸다. 프랑스의 계몽학자 '볼테르'나 '바하'가 꼽힌다.
쌍수시라는 말은 "걱정이 없는 또는 근심이 없는"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프리드리히 2세는 사망과 더불어 상수시 궁전 측면에 안치되기를 원했다. 이러한 그의 바람은 그 당시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거한지 205년이 지난 1991년 8월에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안장지로부터 이곳으로 옮겨져 현재 궁전의 좌측면에 영면의 자리를 찾았다.
최초의 설계와 건축은 크노벨스도르프에 의해 이루어 졌지만 궁전을 포함한 공원 전체가 오늘의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까지 퀸켈, 레르지우스 그리고 슈틸러 등 당대 일급의 건축가들의 정성이 베어 있다. 정원은 조경 건축사인 '렌네'에 의해 설계되었다.
포츠담 시의 서쪽 끝 부분에 위치한 상수시 공원의 전체 길이는 2.5km폭은 1.5km 총면적이 700헥타르에 달하며 상수시라 불리는 본 궁 이외에도 궁전들과 장식된 동실 홀란드 풍 그리고 시칠리아 풍으로 조경된 정원이 분수와 동상들과 한데 어울려서 전체적으로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가운데 건축미가 뛰어난 검루들이 어울려 절묘한 배열의 조경 미를 자랑한다.
1990년도에는 유네스코에서 상수시 궁전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크노베리스도르프가 설계한 본 궁전은 원래 여름 휴양지의 거처로 고안되었다. 로코코 양식으로 궁전 전면의 기둥에는 여 상주와 남 상주가 부각되어 있으며, 중앙 홀이 위치한 부분의 반원형 돔으로 중심부를 두드러지게 처리함으로써 세로형으로 길게 지어진 건물 전체의 균형을 주고 있고 궁전의 건물을 전면, 후면으로 크게 나누어 볼 때 전면은 양측으로 나뉜 여섯 계단식의 포도나무 정원으로 꾸며져 있으며 후면에는 장중한 고전주의 코린도 양식으로 지어진 기둥들로 구성된 콜로나데(Kolonade)가 반원형으로 쭉 이어져 있다. 궁전내부는 구석구석 매우 섬세하게 손을 본 예술성이 돋보이며, 독일 로코코 양식의 건축내부장식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부분이다.
프리드리히 2세가 열광적인 음악 애호가인 탓인지 앙트와 페스트의 그림이 걸려 있는 궁전의 음악 공연실은 참으로 아름답다. 또 사면의 벽을 삼나무로 장식한 개인 도서관도 운치가 뛰어난 공간이다, 집무실과 침실은 그가 사망하던 해에 완성되었다.
침실에는 일인용 소파가 놓여있다. 마지막 죽음을 이 소파에서 맞이했다고 한다.
본 궁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와 약 2km가 넘는 중앙로를 따라가면 새궁전(Neue Palais)의 입구로 가게 되는데 가는 도중에 여기 저기 분수대와 석상들을 보게 된다. 이 길을 중심으로 공원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도처에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산재해 있다.

중앙로 벗어나 왼쪽 편에 프리드리히 4세의 명령으로 지어진 강한 이태리 풍의 영향을 느끼게 하는 평화의 교회를 보게 된다.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3개의 측면 회랑이 돋보이며 내부에는 베네치아 근방의 무라노 섬에서 가져온 12세기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그 건너편의 조그마한 숲길 측면에는 크노벨스도르프가 지은 넵튠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오른쪽을 따라가다 보면 회화전시관을 만나는데 이 건물은 본 궁전 앞에 서서 볼 때 동쪽의 끝에 위치해 있다. 부에링이 설계해 1755년에 건축이 시작된 이 건물은 이런 형태의 회화전시관으로는 독일 최초의 것이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소장품 중 적지 않은 것이 파괴되었지만 루벤스나 카르바지오의 명화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궁전으로부터 아래쪽으로 내려와 중앙로에 접어들기 전에 큰 분수를 만난다, 그 주변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석상들이 약 15m 간격으로 둘러쌓고 있다. 이제 이 자리에 서서 위쪽을 올려다보면 상수시의 심장부라고 불러도 좋은 포도밭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부 6층 계단식 양측으로 나뉘어 조성된 이 포도밭 정원은 방문객들에게 가장 선명한 인상을 남기게 하는 곳이다. 그 까닭은 아마도 단순함의 아름다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수시 궁전의 아름다움은 특징짓는 것은 두 가지라 생각되는데
하나는, 도청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인위적 가미에도 불구하고 건축물들과 정원이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푸근함을 느끼게 해주는 자연스러움이리라. 그리고 이런 느낌이 가져다주는 편암함과 아름다움을 통틀어서 ‘자연미’라고 부르고 싶다.
다른 하나는, 공원에 배치되어 있는 건축물들과 구조물들이 예외 없이 정교하고 섬세한 장인정신으로 빚어진 예술성을 드러내준다는 점이다.

상수시 공원에는 궁전 외에도 이 궁전과 동일한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미술전시관 볼 수 있으며 당시 유럽 전역에 유행처럼 건립한 중국 다실(Chinisches Teehaus), 로마 풍의 욕장, 홀란드 식의 풍차 그리고 인공적으로 만든 폐허 등이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과 조경을 감상할 수 있다.


[2022년 11월 2일 수요일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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