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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동진: 성서 판소리 중에서 “예수 수난과 부활”

행복나무 Glücksbaum 2023. 2. 26. 18:52

박동진(朴東鎭, 1916-2003)

충남 공주군 장기면(현재 공주시 무릉동)에서 태어나 20세기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이다. 세습예인 집안 출신으로, 조부가 줄광대였으며 숙부는 또랑광대였다.

17-18세(1932-1933)에 손병두에게 1년간 단가와 토막소리를 배웠으며, 이후 김창진(金昌鎭, 1875-?)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심청가〉를 익혔다. 22세에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정정렬(丁貞烈, 1876-1938)에게 〈춘향가〉를 배웠으며, 이어 박지홍(朴枝洪, 1889-1961)에게 〈흥보가〉, 유성준(劉成俊, 1873-1944)에게 〈수궁가〉, 조학진(曺學珍, 1877-1951)에게 〈적벽가〉 등을 배웠다. 강정자(姜貞子, 1942- ), 이정일(李正一, 1953- ), 김양숙(金陽淑, 1964- ) 등이 그의 제자이다.

30세 이후 햇님국극단, 조선창극단, 우리국악단 등의 창극단체에서 공연 활동을 하는 한편, 작곡 등의 창작 활동도 많이 했다. 47세에 국립국악원 국악사로 들어가, 이때 판소리 완창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53세에 〈흥보가〉를 5시간 동안 완창했고, 이어 〈춘향가〉를 8시간에 걸쳐 완창했다. 그리고 55세에 〈심청가〉를 6시간, 56세에 〈적벽가〉를 7시간, 57세에 〈수궁가〉를 5시간 동안 완창했다. 이 가운데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의 당시 실황녹음 음원이 문화체육관광부·충청남도 공주시의 정리 사업에 의해 음반과 사설집의 형태로 출간되었다. 한편 박동진은 55세에 〈변강쇠타령〉, 57세에 〈성서판소리전통연희〉, 〈배비장타령〉, 58세에 〈이순신 장군 일대기〉, 59세에 〈숙영낭자전〉, 62세에 〈옹고집타령〉을 발표했다. 74세에 SKC에서 판소리 다섯 바탕 음반을 취입했다. 77세에 TV 광고에 출연해 〈흥보가〉 중 '놀보, 제비 몰러 나가는 대목'을 불러 크게 유행시킴으로써, 일반인들이 판소리를 친숙하게 느끼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83세에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을 개관했다.

박동진은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가 부른 〈적벽가〉는 정춘풍(鄭春風)-박기홍(朴基洪)-조학진으로 이어지는 바디이다. 그의 성음은 약간 쉰 듯한 수리성으로 칼칼한 느낌이 나는 목이다. 독공 기간이 길었던 만큼 성량이 매우 커서, 유장하고 장엄한 장면이나 전투 장면을 묘사하는 데 탁월했다. 박동진은 전통적인 판소리를 고수하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고,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게 판소리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켰다. 실전 7가 중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 〈장끼타령〉, 〈숙영낭자전〉의 복원을 시도했으며, 〈성서판소리〉, 〈이순신 장군 일대기〉 등의 창작 판소리를 발표했다. 소리판에서도 현장성과 즉흥성을 발휘해 창조적인 아니리를 구사했으며, 육담과 비속한 표현, 재담을 거침없이 사용해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그는 이처럼 사설의 확장이나 변용에 융통성을 가진 판소리의 '열린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창조적 광대로 평가된다. 그리고 박동진이 시도한 완창 발표는 판소리사적으로 많은 의미를 지닌다. 〈흥보가〉(1968), 〈춘향가〉(1969), 〈심청가〉(1970), 〈적벽가〉(1971), 〈수궁가〉(1972) 다섯 바탕의 완창 발표는 이전 시기까지 침체되었던 판소리에 활력을 불어넣고, 기교 위주로 흘러가던 공연계에 반성의 계기를 마련했으며, 주로 토막소리로 부르던 공연 관습을 점차 전환시켰다. 이후 완창 발표는 창자의 예술적 기량을 가늠하고, 진정한 명창의 면모를 확인하는 절차로서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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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중 ‘수난과 부활’은 초동교회 교인으로서 부활절 예배중 눈물로 찬양한 그의 신앙고백이었다.

[26.Februar.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