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화롯가 이야기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3.1운동”

행복나무 Glücksbaum 2023. 6. 23. 17:31

옛날옛날 내가 너만 한 아이였을 때
우리나라는 온통 일본 놈 세상이었단다.
일본 놈들이 총칼로 우리나라를 짓밟고는
땅도 빼앗고 집도 빼앗았단다.
말도 빼앗고 글자도 빼앗았단다.
그리고는, 일본 놈들은 뽐냈단다.
일본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나라라고.
일본이 세상에서 가장 잘난 나라라고.
 
우리는 땅에서 쫓겨나고 집에서 쫓겨나
추위와 굶주림에 떨면서 거리를 헤매기도 하고
기차를 타고 멀리 만주로 떠나기도 했지만,
아버지와 형들은 말했단다.
어머니와 누나들은 말했단다.
우리의 힘으로 일본 놈을 몰아내겠다고,
이 땅에서 모조리 내몰겠다고
 
선생님들은 우리한테 몰래 얘기했단다.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정신을 잃지 말자고,
밤이면 우리들도 모여 앉아 노래했단다.
주먹 불끈 쥐고 눈물 흘리며 노래했단다.
우리 손으로 이 나라 되찾겠다고.
우리는 끝내 일본을 이기리라고.
 
아가야, 사랑하는 아가야.
나는 그 때 일을 잊지 못한단다.
아버지와 형들이 사랑방에 모여
밤늦도록 태극기를 그리던 그 때 일을.
일본 놈들을 이 땅에서 내 몰 그 날이
내일 모레 로 다가왔다고 아버지들은 말했단다.
 
그 날은 1919년 3월 1일이었단다.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아버지와 형들은 거리로 달려나갔단다.
어머니와 누나들도 거리로 달려나갔단다.
서울에서 평양에서 부산에서
장터에서 산골 마을에서 나루터에서
일본 놈들이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고
구둣발로 짓밟았지만,
우리는 물러서지 않고 외쳤단다.
“물러가라, 일본 놈들은 물러가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맨주먹 앞에
일본 놈들이 겁을 먹고 도망쳤단다.
우리는 알았단다. 사랑하는 아가야.
우리가 얼마나 힘있는 나라인가를.
우리가 얼마나 굳센 민족인가를.
 
일본 놈들 총칼에 맨주먹으로 맞서 싸워
수만 명이 죽고 다치고 잡혀갔지만
힘없는 나라라고 약한 백성이라고
더는 아무도 우리를 깔보지 못했단다.
아가야, 사랑하는 아가야!
이제는 네가 우리나라를 지켜야 한단다.
남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힘써야 한단다.
 
 
글, 신경림
 
 

[01. Maerz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