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호의 서재 탐험』을 펼쳤는데 머릿속에 ‘백 촉 전구’가 켜졌다. :
이 책은 ‘우리 시대의 ‘독서가’ 12명을 방문하여 인생과 독서에 대한 생각을 나눈 내용이다.
타인의 서재는 책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유추하게 만든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서재의 책들이 겹치는 책 주인들은 대체로 생각이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01
시국사범을 변호하면서 그들이 읽은 책을 같이 읽었다는 전 대통령 문재인,
02
독서는 영화의 힘이자 원천이라는 영화감독 박찬욱,
03
교수직을 마다하고 중국 서적 ‘서울삼련’을 경영하는 서점 주인이자 엄청난 독서가 김명호,
04
배움과 공부에는 끝이 없다는 서예가 박원규,
05
인생의 책으로 마루야마 마사오의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를 든 변호사 강금실,
06
책을 사들일 때는 책 읽을 시간도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 장석주,
07
몇만 권이 넘는 책의 장서가이자 탁월한 기획편집자인 열화당 대표 이기웅,
08
『로마인 이야기』 전 15권 등 평생 수많은 책을 번역해 온 번역가 김석희,
09
정치는 소모적이지만 독서와 글쓰기는 축적이라는 정치인이자 작가 유시민,
10
낮잠 소파와 스파가 있는 놀이 공간의 도서관을 꿈꾸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총장 한경구,
11
가난한 고교 시절, 입주 가정교사 집의 책을 다 읽고 어느 날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 조성기,
12 ‘재일교포유학생 간첩단사건’으로 투옥되어 감옥 독방에서 고전과 역사, 철학서를 읽었다는 번역가 박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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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독서는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자 GPS, 표지삿, 이정표였다.
인생의 중량이 실린 대화가 전혀 무겁지 않았던 이유는 저자의 인문학적 깊이와 진솔한 태도가 독서가들을 무장 해제시킨 것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독자인 나는 책을 읽는내내 편안했다.
그들이 말하는 ‘운명의 책’이나 보유한 장서를 구경하는 것도 큰 즐거움을 주었다.
번역가 박종일의 감옥독서 부분을 읽다가 불량배에서 흑인인권운동가로 전환했던 휴이 뉴턴과 멜컴 엑스를 생각했다. 그들도 교도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은 후 삶이 변했다.
사람은 누가 억지로 교화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독서가 주는 사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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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호의 서재 탐험』은 내가 구독하지 않는 모 일간지에 실렸던 연재 칼럼이었다.
얼마 전 내가 진행을 맡았던 조성기 작가의 북 토크에 이 책을 읽고 임했다면 질문의 깊이가 달라졌을 것 같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조성기 작가와 내가 경험과 생각의 일치를 이루는 부분에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인생의 책으로 빅터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들 때 내가 왜 본능적으로 그에게 마음이 닿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도 강연 중에 누군가 추천할만한 인생 도서를 물으면 이 책을 거론한다.
다 같이 힘든 상황에서 더 배고픈 사람에게 자신의 빵을 나누는 사람은 어디에도 있다.
나는 그런 그들이 세상의 희망이며
사람의 품위를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인생을 비굴하게 살지 않도록 내 마음속 서늘한 기둥 하나를 세워준 책이다.
나는 열두 명의 독서가들을 주제로 열두 편의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들과 겹치는 나의 책에 대한 이야기도 마구 쏟아낼 수 있다.
『1980년 5월 24일』 북 토크가 끝나고 카페도 아닌 밤의 공원에서 김언호 대표와 조성기 작가 두 분과 함께 벤치에 앉았는데 아주 오래 만난 사이처럼 편안했다.
그날 바람이 불었고 우리의 이야기는 밤하늘로 날아갔다.
나는 평생을 책과 더불어 지낸 사람들에게서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김언호의 서재 탐험』을 먼저 읽었다면 나는 보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리라.
평생 책을 읽고 만든 사람은 책의 진가를 알아본다.
『김언호의 서재 탐험』은 한길사 대표 김언호가 아닌 인문학자 김언호가 썼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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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열두 명 독서가의 서재 사진을 보며 내가 놓친 책을 찾고 있다. 독서는 혼자 읽고 사유하는 것이지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서재가 평화로운 이유다.
글, (남 이름만 쓴 익명의 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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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ias a la Vida
https://youtu.be/pakI-_X7amA
[15.Mai.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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