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사형 처형 - (wikipedia 인용)
루마니아 혁명정부 측은 그 전부터 차우셰스쿠 부부를 상대로 한 재판을 논의하고 있었으나 "잘못되면 차우셰스쿠 지지자들이 역으로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차우세스쿠 부부는 12월 25일 구국전선의 군사 법정에서 인민재판으로써 반역과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차우셰스쿠의 변호사 카를로마저 검사로 돌변해 "당신 편을 들어줘야 하는 처지지만, 당신이 이 나라에 해 놓은 짓을 보시오. 편을 들어준다고 해결될 문제요?
당신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오. 상식으로 누가 봐도, 아무리 당신에게 유리하게 설명해도, 당신이 이 나라 루마니아를 멸망으로 몰고간 것을 부인할 수가 없소.
내가 변호사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담당했지만, 당신 같은 최악의 예는 처음이오. 나도 당신을 포기했소."라고 차우셰스쿠에게 말할 정도였는데도,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의 국민을 배려해 사력을 다했다고 우겨서 재판장에게도 크게 미움을 샀다.
한편 소총수들은 차우셰스쿠를 죽이고자 총을 준비했고 차우셰스쿠의 처단형에 동참할 사람들을 뽑기로 했는데, 지원자는 수백명에 이르렀으나 Captain Ionel Boeru, Sergeant-Major Georghin Octavian, Dorin-Marian Cîrlan 이 세명의 군인에 의해 사형이 집행된다.
이 3명의 군인들은 총 6정 총알 180발을 준비해서 '우리 그 인간 후려 갈겨버리자며'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군인들 소속 부대들도 총 6정 180발을 준비하는 걸 막거나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차우셰스쿠 부부에게 사형을 선고하자 둘은 눈물을 흘리더니 벽을 보고 "반역자들에게 죽음을!"이라 외치더니 사형 집행이 시작되자 공산 세력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인 "인터내셔널"을 부르기 시작하지만, 일 절이 채 끝나지도 않아 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고 총탄 각각 160여 발을 맞고 처참하게 죽었다.
차우셰스쿠가 처형되는 장면은 공개로 이루어졌고 생중계로 진행되었다.
총살형을 집행한 뒤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차우셰스쿠와 엘레나는 특별 군사재판에서 6만 명 이상의 대학살과 국가전복 기도, 경제파괴, 공공재산 착복, 도주 기도 등 6가지 죄목으로 사형이 선고돼 즉각 형이 집행됐으며 차우셰스쿠 부부의 재산은 몰수했다고 밝혔다.(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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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12월25일 루마니아 국민이 국가헌법을 따라 어떻게 행했는가?
참조해보자.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부부 총살형 :
https://youtu.be/AwzzFGYSc9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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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천심이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와 그의 처는 하늘의 뜻이 땅위에 강림했다는 크리스마스 날에 TV카메라가 비치는 공개 형장에서 처형됐다.
1989년 12월 22일에 자신의 정권이 무너지자 도주를 시도하다가 민중들과 군인에게 잡혀 처형되었다.
아무리 우국충정을 강변하고 또 국리민복을 들먹거릴지라도 그것이 민의에 어긋날 때, 그 종말은 이처럼 비참하고 무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1989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순간이다.
이하 wikipedia에서 인용 : -
"차우셰스쿠는 "어버이 수령"이나 "민족의 태양"으로 인식하게 해 일견, 북한 주민들에게 존경받았다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의 방식을 모방해 "지도자"(Conducător 콘두커토르라고 자처하면서 자신을 개인 숭배 대상으로 전개시켰다.
실제로 차우셰스쿠는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은 사이이기도 했다.
차우셰스쿠가 김일성의 독재 방식을 루마니아 국민에게 적용한 것은 중대한 실수로 여겨진다.
자신을 "어버이 수령"으로 인식하게 해 권력을 유지한 김일성의 왕조스러운 독재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는 유교 사상에 익숙하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들에게는 일부 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부 제한스러우나마 민주주의 경험이 있었고 공동체를 향한 헌신보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중시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문화가 비교적 강한 루마니아인들에게 이와 같은 독재 방법은 큰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것이었다.
또한 김일성은 일제강점기 때 보천보전투 등에서 독립투쟁의 공로를 세운 전설적인 영웅으로 선전되고 알려져, 당시 조선인들 상당수에게 존경의 대상으로 여겨지며 이것은 반일 감정 등을 바탕으로 하여 성공적인 숭배로 어겨졌지만, 차우셰스쿠는 김일성과 같은 가공된 전설이란 없었다.
차우셰스쿠의 정치는 심각한 공포 정치로 여겨졌다. 특히 도청을 통한 불만세력 색출을 통해 국민들을 행동과 말 모두 통제했다. 당시 루마니아에는 인구 2,000만명이었는데 각 도시 및 마을에 300만 개의 도청기와 1,000여 개의 도청 센터가 설치될 정도로 빈틈없는 감시 때문에 차우셰스쿠 치하의 루마니아 국민들은 집안에서 조차 자유롭게 말하지 못했다. 심지어 어린이들의 동심(童心)을 국민 감시에 악용하기까지 했는데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학부모가 한 이야기를 토론 수업을 빙자해서 수집하기까지도 하였다. 물론 그가 수집된 이야기 중에서 차우셰스쿠 정권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담긴 내용은 상부에 보고되었으니 상당히 교묘한 감시 방법이었다.
친위조직 : -
또한 그는 세쿠리타테라고 불리는 친위조직을 두고 있었다. 세쿠리타테는 차우셰스쿠의 충복(忠僕)인데, 차우셰스쿠는 고아 출신인 세쿠리타테 요원들을 어려서부터 훈련시켜 자신의 친위조직으로 만들었다. 세쿠리타테 요원들은 암살, 정보 수집 등의 임무를 맡고 있어서 차우셰스쿠의 독재정권이 유지되게 한 밑바탕 중 하나였으며 정규군 장군들 못지않은 권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쿠리타테는 크게 비밀경찰과 보안군으로 구분되었으며 이들 중 비밀경찰은 정보수집과 암살을 담당했다.
다른 국가에서는 정규군이 우세했지만, 루마니아의 경우는 세쿠리타테가 우세했다. 가장 큰 이유는, 차우셰스쿠가 정규군에 대해 거의 제대로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 그는 루마니아 정규군은 전혀 신뢰하지 않고, 차우셰스쿠의 충복들 중 자신의 지지자만 뽑아다가 자신에게 충성하는 비밀경찰과 보안군을 조직했다. 친위군 역할을 맡던 보안군들에게는 정규군에게는 주어지지 않던, 최신 장비와 높은 보수가 주어졌다.
이러한 원인은 훗날 반정부 시위에서 그대로 드러났고, 시위를 진압하고자 하는 보안군과 이에 맞서는 정규군과의 대립이 드러나 내전의 위기로 번졌다.
민주화 이후에도 보안군의 영향력은 남아 있었고, 이들을 뿌리뽑고자 하는 데 엄청난 피해를 끼쳤다"
(wikipedia)
먼저 차우셰스쿠 부부가 처형되기 직전의 모습은 장갑차로 호송돼 사형 집행장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장갑차 아래 문을 통해 끌려나오는 있는 이 장면은 바로 독재정치를 휘둘렀던 독재자의 최후를 보여주고 있다.
두툼한 모피외투를 벗고 혈압체크 등 건강 검진을 받을 때 까지만 해도 차우셰스쿠는 비교적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며 웃음까지 띠었고 회색 외투에 머플러까지 두른 부인 엘레나가 무척 초조해하는 표정을 보이자 손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건강 검진이 끝난 뒤 처형 대기실로 옮겨진 차우셰스쿠는 최후의 순간을 직감했는지 모자를 계속 만지작거리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고 부인 엘레나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손톱을 깨물며 처형 순간만을 기다렸다.
이에 차우셰스쿠는 잠시 동안만 밖에 나가도록 요청했으나 경비병이 총으로 가로막자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모자를 내던지기도 했다.
차우셰스쿠 부부는 이후 곧바로 TV카메라가 비치는 형장에 세워졌다.
이하, 사형 처형 - (wikipedia 인용) : -
(1)혁명정부 측은 그 전부터 차우셰스쿠 부부를 상대로 한 재판을 논의하고 있었으나 "잘못되면 차우셰스쿠 지지자들이 역으로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2)차우세스쿠 부부는 12월 25일 구국전선의 군사 법정에서 인민재판으로써 반역과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3)차우셰스쿠의 변호사 카를로마저 검사로 돌변해 "당신 편을 들어줘야 하는 처지지만, 당신이 이 나라에 해 놓은 짓을 보시오. 편을 들어준다고 해결될 문제요? 당신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오. 상식으로 누가 봐도, 아무리 당신에게 유리하게 설명해도, 당신이 이 나라 루마니아를 멸망으로 몰고간 것을 부인할 수가 없소. 내가 변호사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담당했지만, 당신 같은 최악의 예는 처음이오. 나도 당신을 포기했소."라고 차우셰스쿠에게 말할 정도였는데도,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의 국민을 배려해 사력을 다했다고 우겨서 재판장에게도 크게 미움을 샀다.
한편 소총수들은 차우셰스쿠를 죽이고자 총을 준비했고 차우셰스쿠의 처형에 동참할 사람들을 뽑기로 했는데,
지원자는 수백명에 이르렀으나
Captain Ionel Boeru,
Sergeant-Major Georghin Octavian,
Dorin-Marian Cîrlan.
3명의 군인에 의해 사형이 집행된다.
이 3명의 군인들은 총 6정 총알 180발을 준비해서 '우리 그 인간 후려 갈겨버리자며'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군인들 소속 부대들도 총 6정 180발을 준비하는 걸 막거나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차우셰스쿠 부부에게 사형을 선고하자 둘은 벽을 보고 "반역자들에게 죽음을!"이라 외쳤다.
사형 집행이 시작되자 공산 세력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인 "인터내셔널"을 부르기 시작하지만, 1 절이 채 끝나지도 않아 그들의 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고 총탄 각각 160여 발을 맞고 처참하게 죽었다.
차우셰스쿠가 처형되는 장면은 공개로 이루어졌고 생중계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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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셰스쿠와 엘레나는 특별 군사재판에서 총살형을 선고형을 선고하였다.
선고 내용:
(1)국민 6만 명 이상의 대학살과
(2)국가전복 기도,
(3)경제파괴,
(4)공공재산 착복,
(5)도주 기도
(6) 권력 남용 등 6가지 죄목으로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즉각 총살운 즉각 집행되었다.
차우셰스쿠 부부의 전재산은 몰수했다고 밝혔다. (참조: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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