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말과 말들...

‘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모방 행위자들의 생장 현상이다. ’

행복나무 Glücksbaum 2025. 2. 2. 16:51


평생 언어를 다루는 문학 선생을 했지만, 요즘처럼 언어에 절망한 적은 없다.
도대체 어떤 말로도 이 불가사의한 인간을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을 보며 언어의 한계를 절감한다.
이리도 비겁하고 비열하고 비루한 인간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극렬 지지자를 선동하고,
휘하의 부하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어기고,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일삼고,
온갖 핑계로 법 집행을 피해 다니는
이 괴물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3비(비겁-비열-비루)형 인간’이 벌이는 행태가 참으로 점입가경이다.
최근엔 극우 시위대를 선동해 법원을 공격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초래했다.
군대를 동원해 입법부를 침탈한 것도 모자라, 이제 지지자를 선동해 사법부를 습격한 것이다.

개과천선이 불가능한 이런 인간은 법정 최고형으로 다스리는 것 이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헌정 질서를 파괴한 내란범을 이번에도 준엄하게 단죄하지 못한다면,
거듭된 친위쿠데타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없다.

그러나 윤석열 내란 사태는 그에 대한 탄핵과 엄단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윤석열을 만들고, 기르고, 권좌에 앉힌 우리 사회의 오래된 구조를 개혁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윤석열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윤석열로 상징되는
우리의 낡은 관행과 의식, 규범과 제도가 문제다.
이것은 윤석열이 사라진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계속 살아남아 우리 사회를 좀먹고, 흔들고, 결국 무너뜨릴 악습들이다.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내란 수괴를 비호하는 정당이 여론조사에서 제1당에 오르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한국적 민주주의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1970년대에 독재자 박정희가 만들어낸 지역주의가 핵심 문제다.
정치적 이성보다 지역적 감성에 좌우되는 정치 행태가 내란 동조 정당을 제1당으로 등극시키는 기괴한 현상을 낳은 것이다.
지역주의 정치 지형을 극복할 선거법 개정 등 근본적인 처방이 없는 한,
우리는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문제는 윤석열 개인이 아니다.
윤석열은 한국 사회에서 예외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 현상에 가깝다.
특히 한국 사회의 지배 엘리트는 대다수가 ‘또 다른 윤석열’이다.

윤석열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그들이 보인 행태를 보라. ;
법치주의를 뒤흔드는 법 기술자들,
민주주의를 조롱하는 정치인들,
곡학아세를 일삼는 어용학자들,
이들의 언행은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이처럼 미성숙한 지배 엘리트들의 존재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인간 윤석열 하나만이 아니다.
빙산의 일각, 구조적인 문제란 말이다.

요컨대, 윤석열은 이 나라의 모든 부정적 특성의 앙상블이다.
그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폐단인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능을 극단까지 행사했고,
한국 경제의 치명적인 병폐인 신자유주의적 착취 구조를 더욱 악화시켰으며,
한국 사회 불행의 근원인 사회적 양극화를 가속화했고,
시나브로 사라져 가던 권위주의 문화를 재생시켰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에서 ‘윤석열’을 만들고,
정당화하고,
유지시켜준 잘못된 구질서,
이 앙시앵레짐을 청산하지 않는 한,
윤석열은 또 다른 이름으로 부활할 것이다.

윤석열 내란 사태가 보여준 것은 또한,
우리 사회에 수치심의 한계선이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윤석열은 말할 것도 없고,
국무총리와 장관,
정치인과 법조인들의 궤변과 곡학아세의 언설을 매일같이 듣는 일이 너무나 괴롭다.
이 나라가 언제부터 최소한의 수치심도 없는
파렴치한 인간들이 지배하는 곳이 되었단 말인가?

근원으로 거슬러가면, 윤석열을 키운 것은 극단적인 능력주의 경쟁교육이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교실’이 괴물 윤석열을 잉태한 모태다.
한국의 교실, 이 ‘사활을 건 전쟁터’에서 승자는 자신이 누리는 모든 부와 권력을 자신이 쟁취한 ‘전리품’이라고 여긴다.
그러기에 여기서 이리도 미성숙하고, 오만한 엘리트들이 자라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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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내란 사태를 보며 우리 교육의 미래를 걱정한다.
거짓말과 약속 파기를 밥 먹듯이 하는 대통령,
궤변과 허언을 일삼는 정치인들,
기회주의적이고 무책임한 장관들
– 이런 파렴치한 엘리트들을 보며 우리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전교 1등을 하면,
저런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칠 것인가.
윤석열 사태는 한국 교육의 환부를 쓰라리게 드러내면서,
교육혁명의 절박성을 일깨우고 있다.


글, 김누리


[21. Januar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