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구석구석 살펴보기/기행 이야기

이스탄불(Istanbul), 터키

행복나무 Glücksbaum 2007. 7. 22. 15:29

  

 
 
 

이스탄불은 지리적으로 흥미 있는 곳이다. 이 도시를 둘로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기준으로 동쪽은 아시아에, 서쪽은 유럽에 속한다. 이 두 대륙을 지난 1973년 완공된 보스포루스 대교가 이어주고 있다.
이스탄불은 세계 1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약 1,600년 동안 세계를 제패했던 3개 제국(로마, 비잔틴, 오스만 터키)의 중심 수도로서 무려 120여명의 황제들이 이곳에서 세계를 향해 호령했던 황제의 도시이다. 도시 이름도 제국의 변천에 따라 본래의 비잔티움에서 콘스탄티노플로, 그리고 이스탄불로 바뀌었다. 교회사적으로는 서기 500년 경 동방 정교회의 수장인 콘스탄티노플 대주교가 있던 곳이다. 동방 정교회(Ostern Orthodox Kirche)는 가톨릭, 개신교와 함께 기독교 3대 줄기 중의 하나이다.
보스포루스 해협 옆에 있던 무명의 도시 비잔티움을 세계 역사무대로 올려놓은 사람은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였다. 황제와 동시대 인물로서 교회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유세비우스는 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서기 312년 10월, 로마 제국의 황제의 자리를 두고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 사이에 역사적인 대결이 벌어졌다. 운명의 결전이 있기 바로 전날 정오, 콘스탄티누스는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았다. 십자가였다. 광채가 나는 십자가에는 ‘이것으로 승리하리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다음날 벌어진 전투에서 콘스탄티누스는 크게 승리하였다. 그는 꿈에 본 십자가의 환상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서기 320년대,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제국 황제에 올라 절대적인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락했다. 핍박과 순교로 점철되었던 기독교의 수난의 역사가 끝나고 새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는 제국을 동방으로 넓혀 나갔다.

 
 1) 영화의 국제 도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황제는 광대한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지리적 중심지에 새로운 수도를 세우기로 하고 이곳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결정했다. 그는 6년간에 걸쳐 이곳을 제국의 수도로서 손색이 없는 신도시로 만들었다. 주후 330년경 장엄한 의식과 함께 천도가 이루어 졌다.
새 수도의 이름을 신 로마(Nea Roma)라고 공식적으로 명명했으나 사람들은 황제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고 불렀다. 이로부터 이 도시는 15세기 중엽 오스만 터키 군에 함락될 때까지 약 1,100년간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의 수도이자 동방 정교회의 중심지가 되었다.

 
 2) 소피아 대성당(Sophia Dom)

이곳에 남아있는 비잔틴 제국의 수많은 유적들 가운데 으뜸이 되는 것이 소피아 대성당(Aya Sophia Museum)이다. 비잔틴 시대 건축예술 중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평가되는 소피아 대성당은 서기 6세기 중엽 유스티니우스 황제의 명으로 건축되었다. 건축 왕이었던 이 황제는 성지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예수 탄생교회를, 시내 산기슭에는 성 카타린 수도원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보다 더 아름다운 딸’이라는 목표로, 콘스탄티노플을 로마보다 더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소피아 대성당이 건축된 것이다. 높이 56m에 달하는 대성당이 완성되었을 때 그 황홀한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황제는 탄성을 질렀다. 대성당은 천장 둥근 돔으로 만들어 교회 건축 양식에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특히 대성당 안의 모든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 성화는 세계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1,453년 동로마 제국의 수도는 1,000년의 영화를 누렸던 권세가 단 53일 만에 오스만 터키의 공격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오스만 터키 제국의 메메트(Mehmet) 황제는 제일 먼저 소피아 대성당으로 달려갔다, 황제는 대성당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말을 잊었다고 한다. 웅장한 아름다움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이슬람 교도였으나 이 건물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 뒤 이 대성당은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게 되었고 대성당의 첨탑 십자가는 이슬람교의 초생달 표지로 바뀌었다. 대성당 안에는 이제 메카를 향하여 기도하는 기도처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모자이크로 된 기독교 성화는 회칠을 해서 지워버리기는 했을망정 성화들을 부수지 않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회칠을 기술적으로 제거하면 모자이크 성화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여전히 이슬람의 모스크(Mosque)로 남아있는 대성당 안에는 1931년 이래 지금까지 성화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복원작업은 정밀한 기술과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1933년 이래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3) 블루 모스크(Sultanahmet Camii)

6개의 첨탑을 가지고 있는 이 모스크는 1609년에 시작하여 8년 간 건축을 했다고 한다. 99가지 푸른색 타일만을 사용해 블루 모스크라 불린다. 뒤편에는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마장이 있고, 옆 광장에는 이집트에 있는 카르나크 신전에서 운반해 왔다는 오벨레스크가 세워져 있다.
모스크 안에는 긴 바지를 입어야 하며 여자들은 짧은치마로 다니면 남자들의 눈요기가 된다. 터키의 여인들을 사진 찍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을 수도 있다.

 
 4) 톱카프 궁전(Topkapi Schloß)

이스탄불의 명소 중 하나는 오스만 터키 제국의 황제들이 살았던 ‘톱카프 궁전’이다. 오스만제국이 몰락하고 터키에 공화정이 수립된 후(1923년) 토카프 궁전은 고스란히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석과 보물이 소장되어 있어 오스만 황제들의 영화와 사치를 잘 보여준다. 이 궁전의 좌측에는 궁녀들의 방이 있는 하렘(Harem)이 있는데 궁전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이곳에는 400개의 홀과 테라스 아름다운 방들이 있고 그 중에 시계의 방은 볼만하다.

 
 5) 돌마베체 궁전

19세기 중엽, 오스만 터키 황제들은 토카프 궁전만으로는 만족치 못해 그들은 사람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화려한 궁전을 또 다시 지었다. 돌마베체 궁전이다. 세계의 궁전 중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사치의 극을 이루어 지은 상상을 초월한 궁전이다. 그러나 이 궁전을 지은 지 60년 후, 오스만 터키 제국은 멸망했다.
돌마베체 궁전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는 것은 ‘절제할 줄 모르는 사치와 허영은 몰락으로 가는 지름길’ 이라고 하는 역사의 교훈이다.

 
 6) 그랑 바자(Grand Bazzar)

한국의 롯데 1번 가 같은 곳으로 세계의 모든 물건을 살 수 있으며 터키의 다양한 카펫과 금은 세공품들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서울의 남대문 시장이나 청계천 지역의 개미시장을 다니는 기분으로 둘러보며 물건을 흥정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가격 흥정할 때 터키 식 차나 사과 차를 내놓기도 한다.
 

 7) 보스포러스 해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