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e Welt/독일 이야기

유럽통합운동의 역사적 기원과 배경

행복나무 Glücksbaum 2004. 2. 2. 22:39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늘 너희들을 위해 기도한단다.  유럽통합의 역사적인 배경에 대해 상식적으로 알았으면 해서 몇자 적어보려고 한다.

 

 

1.1 유럽통합운동의 역사적 기원과 배경

 

일반적으로 우리가 유럽통합운동으로 알고 있는 운동은 2차 대전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단다. 유럽통합사상이 20세기 중반에 갑자기 발생한 것은 물론 아니란다. 이미 그것은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어. 18, 19세기의 많은 지식인들이 이미 유럽통합사상을 전개한 바 있었고, 본격적인 유럽통합운동은 2차 대전 이후부터 시작되었단다.

 

10세기 이전 유럽은 그리스-로마라고 하는 제국,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프랑크 왕국의 존재로 하나의 정치적 통일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10세기에 프랑크 왕국이 3분되면서 유럽의 정치적 통일은 깨지고, 이후 분할과 이질화가 심화되었단다.

 

지난 1,000년 동안 유럽역사는 전쟁의 시대였고, 전쟁이 유럽에 가지고 온 피해는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반대로 평화에 대한 열망을 더욱 고조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단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지. 그러나 유럽의 역사가 곧바로 세계의 역사로 인식되었던 시대에 서로의 이해가 상반되는 국가들로 구성된 유럽의 평화안이라는 것은 지배와 종속의 관계였거나 강대국들간 힘의 균형을 통한 평화유지라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적 대안이 고작이었어.

 

2차 대전 중에 나치에 대항한 저항투사들이 전쟁 때부터 그들의 통합운동을 바로 이러한 전통과 관점에서 시작하였다.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300여 년 간 유럽세계를 지배해 온 근대 민족국가 체제는 더 이상 유럽인의 안정과 번영을 책임질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파괴된 유럽을 재건하면서 저항운동가들은 통합된 유럽이라는 사상을 설파하였단다. 그러나 그들의 이상은 단번에 실현될 수 없었어. 그들이 꿈꾸었던 '유럽연합' 은 전쟁의 엄청난 피해로 야기된 경제난 극복이라는 현실적인 과제 앞에 수그러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은 엄청난 물적․인적 손실을 초래했으며, 따라서 경제재건이 유럽연합 건설 계획보다 우선권을 갖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로 보였어. 유권자들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던 기성정치인들이 다시 정권을 장악한 것도 그 한 요인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2차 대전 종전 후 저항운동가들에 의해 주도된 통합운동은 여러 가지 한계와 장벽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지. 그러나 사정은 전과는 달랐는데 통합론자들의 로비활동은 전처럼 적극적이지는 않았으나, 많은 정치인들이 여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단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좀더 기능적인 접근 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단다.

세계경제에서 축소된 유럽의 역할, 미국의 지배적인 경제력,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 독일 재건문제, 집단적 유럽협력에 대한 미국의 압력, 유럽 각국의 경제적 어려움 등이 중요 현안으로 제기되었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유럽인들은 새로운 형태의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모색하기 시작했어.

 

'유럽인들의 협조체제' 라 하여도 그것은 미국의 지원 없이는 사실상 추진하기란 힘들었다. 2차 대전 직후 유럽 각국은 전시경제체제의 평시체제로 전환과 전쟁피해 복구라는 두 가지 긴급한 과제 앞에서 새로운 적 소련과, 그리고 소련의 위성국가들과 또 다른 전쟁(이것을 우리는 냉전[Kald Krieg]라고 부른다)을 펼쳐야 했단다.

 

이 과정에서 유럽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유럽의 새로운 협조체제를 방해한다면, 그들의 새로운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었다. 미국의 지배적인 경제력을 경계하면서도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