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화롯가 이야기들

유디트(Judith)

행복나무 Glücksbaum 2009. 8. 23. 21:13

 

 

아시리아의 왕 느부갓네살이 파견한 홀로페르네스의 군대가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관문인 베툴리아란 조그만 유대인 마을을 덮쳤을 때 유디트란 여인이 단신으로 적진에 들어가 적장의 마음을 빼앗은 뒤 술 취한 적장의 머리를 자르고 이 마을을 해방시킨다. 구약성서의 외경 중 네 번째 이야기이다.

 

이 유디트 전설은 문학에서뿐만 아니라 오페라나 회화에서까지 즐겨 다루는 소재로 애용되고 있다. 루터는 유디트 전설을 아주 훌륭하고 진지한 비극의 소재로서 거론하고 있다.

성스런 유디트와 폭군의 모습을 띤 홀로페르네스의 이야기는 16 세기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19세기에 이르면 유디트의 성스런 종교적 색채는 점차 퇴색하고 그 대신 두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이 비극의 주요인으로 자리 잡게 된다.

슈미트(A.Schmitz, 1876)의 드라마에서는 유디트가 홀로테르네스를 사랑하게 되는데 원로로부터 적장을 죽이도록 강요를 받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유디트는 자기 연인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장. 지로다(J.Giraudoux)의 작품에서의 유디트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살인까지 행하는 믿음이 깊은 여인으로 분하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연인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홀로테르네스를 죽이게 된다.

때로는 적장으로부터 처녀성을 잃은 유디트가 자신의 끓는 젊은 피에 대한 수치심이 일어나 적장을 죽이는 작품도 있다. 이런 다양한 소재의 변형은 1840년 헵벨(F.Hebbel, 1813- 1863)이 발표한 <유디트>에서 잘 조화되어 나타난다.

 

뮨헨의 미술관을 배회하던 헵벨은 유디트를 소재로 한 그림을 보고 자극을 받는다. 쉴러의 <오를레안의 성처녀>와 비교될 만한 작품을 쓰고자 마음먹었던 참이기도 했다.

헵벨의 비극에서 유디트는 결혼을 했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남편이 성불구가 되어주는 바람에 여자의 순결을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 과부다. 나라를 사랑하며 정결하게 생활하는 미모가 뛰어난 이 여인은 홀로테르네스 군대가 베툴리엔 마을을 포위하자 홀연 하녀만 데리고 단신으로 적진으로 들어간다. 유디트는 술 취한 채 잠들어 있는 적장의 목을 내리친다. 유디트의 영웅적 행동은 베툴리아 사람들의 칭송을 받지만 자기의 순결을 빼앗은 데 대한 복수심으로 적장을 죽인 유디트는 오히려 원로들에게 자기목숨을 거두어줄 것을 요청한다.

 

이 작품에서는 유디트의 성스러움과 여인으로서의 젊은, 즉 여성을 억누르고 있는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여성해방, 그리고 수동적인 입장에서 겪는 여자의 심리적 갈등 등, 잘 조화되어 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직접 이런 요소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유디트>는 5막으로 된 비극이다. 1막은 베툴리엔이란 유대 마을의 부근에 진을 치고 있는 홀로테르네스의 진영이다.

“제물을 바쳐라!”

어떤 신에게 바칠까요? 어제는 어떤 신에게 바쳤느냐? 장군께서 명령하신 대로 제비를 뽑았는데 바알 신에게 떨어졌습니다.

바알 신은 오늘은 배가 고프지 않겠구나. 그럼 너희들이 모두 잘 알고, 그리고 또 잘 알지 못하는 그런 신에게 제물을 바치도록 해라!

 

모두들 알고 또 모두들 모르는 신은 바로 홀로페르네스 자신이다. 느부갓네살 왕까지 무시하고 신의 자리까지 넘보는 홀로페르네스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다. 부하들의 목숨도 파리 목숨처럼 다루는 장군의 잔인함과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감히 홀로테르네스 앞에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의 무서움과 위엄이 전체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홀로페르네스는 눈에 보이는 마을은 무조건 불태워 버리고 조금만 저항을 해도 살육으로 앙갚음하기 때문에 미리 겁을 먹은 많은 나라들, 리비아 사람과 메소포타미아 사람과 같은 나라의 사신들이 이곳까지 찾아와 항복을 받아줄 것을 간청한다.

“나는 맹세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내 앞에 무릎을 끊는 백성들은 씨를 말려 버리겠다고. 이 맹세를 난 꼭 지키겠다.

우리가 마지막이 아닙니다. 중간에도 오다가 들으니 히브리 사람들이 장군께 저항을 하며 진을 치고 도사리고 있다고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이라니, 어떤 백성인가?

미친 백성들입니다. 장군님께 저항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지요. 그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고 듣지도 못하는 신을 섬깁니다. 산 속에 살며 외부와도 접촉을 꺼리는 백성입니다.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듯 우리도 그 사람들에게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내게 감히 저항하는 백성이 이들이 있다면 나는 그런 백성들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난 높이 평가하는 것은 모조리 파멸시켜야 하니 그게 좀 아쉽구나.”

신통한 대답을 듣지 못한 홀로페르네스는 수하에 있는 모압과 암몬 출신의 사령관들을 부른다. 이들 중에 아히오르(Achior)가 나서서 상세한 보고를 올린다.

“그 백성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무기를 손에 들고 저항한다 해도 별로 대수롭지 않은 백성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섬기는 신이, 싸우며 피 흘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무기를 모두 못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백성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에 재를 뿌리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자기들 신 앞에 복종을 맹세하게 되면 끔찍하게 무서운 백성이 됩니다. 그럴 때는 이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고 맙니다. 자연의 법칙이 무시되고 불가능이 현실로 나타나서, 바다가 둘로 가라져 길을 열고 하늘에서 빵이 떨어지는가 하면 사막에서 시원한 샘물이 솟아오릅니다. 저기 보이는 산 속에서 자리하고 있는 마을은 베툴리엔이라고 합니다만, 이들 백성들의 중심의 도시는 예루살렘입니다. 넘볼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홀로테르네스는 베툴리엔으로 진격을 명령한다.

 

유디트는 몰래 물레에 앉아 하녀 미르짜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구 걸었어. 가는 줄도 모르고. 가끔 씩 발을 멈추고 깊은 생각에 잠겼지. 내가 무슨 큰 죄를 짓는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 계속해서 걸었어. 갑자기 어느 높은 산에 이르게 되었어. 어지러웠지. 그 다음 가슴이 뿌듯해오더군. 해가 내 머리맡에 떠 있는 것 같고 나는 점점 더 해를 올려다보게 되었어. 갑자기 내 앞에 심연이 깔려 있는 거야 . 몇 발자국 앞에. 어둡고 연기가 자욱해서 보이지도 않았어. 나는 물러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멈춰 설 수도 없었어.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갔지 무서워서 하느님을 부르면서, 심연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여왔어. 부드럽고 아주 상냥한 목소리였지. 내가 심연으로 뛰어내리자 부드러운 손이 나를 잡아주더군. 누군가가 내 가슴을 잡아 준거야 그 사람이 보이지 않고.

정말 몸이 나긋하고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았어, 헌데 내 몸이 너무 무거운지 그분이 나를 계속 잡아주지를 못해 나는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하는 거야. 그분이 우는소리가 들렸어, 그분이 뜨거운 눈물이 내 뺨에 떨어지고…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 사람은 죽기 직전에 되면 무슨 꿈을 꾸게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이 글을 통해 헵벨은 끓는 피가 흐르는 여인으로서의 유디트의 간절함을 묘사하고, 어쩌면 닥칠지 모르는 비극적인 유디트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완전히 포위된 채 마실 물까지 차단당한 이 마을 사람들은 차라리 성문을 열고 항복하자고 아우성이다. 홀로페르네스에게 유대백성의 무서움을 경고한 죄로 아히오르는 죽음을 면하긴 했지만, 유대백성이 자기 칼에 쓰러질 때 그 증인이 되며 함께 죽으라고 홀로페르네스는 이 사람을 베툴리엔 마을로 쫓아냈다. 이곳에 온 아히오르는 홀로페르네스의 잔인무도함을 경고한다.

“성문을 열려면 여시오. 아시겠지만 홀로페르네스의 자비 같은 것은 아예 기대하지 들로 마시오. 그 사람은 맹세를 했다 오. 가장 마지막에 자기 발밑에 굴복하는 백성은 씨도 안 말리고 이 지상에서 사라지게 하겠다고. 여러분들이 바로 그 마지막 백성이고.

그 사람이 그렇게 맹세 했나요?

나는 그 자리에 있었소.

유디트는 마을사람들에게 싸울 것을 종용하나 아무도 듣지 않는다.

“우리는 왜 저 여인의 말을 듣지 않는가? 이 마을에서 가장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저 여인이오. 우리가 평안하게 잘 지낼 때는 저 여인은 조용히 자기 골방에 앉아 나오지 않았소. 여러분 중에 누가 길거리에서 저 여인을 본 적이 있단 말이오, 기도하거나 제물을 바치러 갈 때 말고? 허지만 지금 우리가 절망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일 때 저 여인은 집을 박차고 나와 우리에게 위안과 용기의 말을 전하며 우리와 함께 있지 않소!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면 그것은 바로 저 여인 때문일 거요!”

 

아히오르에게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가 어떤 사람인지 상세히 묻는다.

“그 사람은 계집을 좋아하는가요?

물론이지요, 하지만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듯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시오? 우리 마음을 그 사람이 덮쳐 짓밟았을 때 마을을 한 여인이 몰래 칼을 빼들고 그 사함의 침실로 들어갔었습니다. 침대에 누어 있던 그 사람을 칼로 찌르려 했지요.

그 사람이 그래 어떻게 했나요?

그 사람은 그저 크게 웃었습니다. 계속 웃기만 하자, 기가 죽어 결국 그 여자는 스스로 그 자 앞에서 자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죽은 사람들을 위해 복수할 것이며 살아 있는 사람들을 지키겠습니다. 홀로페르테스에게 가서 무슨 일이든 꾸며 보겠습니다. 내가 나간다면 성문을 열어 주시겠습니까?

어떻게 하시려고?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 하느님 말고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길 ! 성문을 열어주어라.

유디트, 유디트! 그런 엄청난 일을 어떻게!

 

유디트는 마르찌에게 “나와 동행할 용기가 있니?”

마님을 혼자 가시게 한다면 그때 오히려 더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그럼 내가 시키는 데로 그대로 하겠지?

포도주와 빵이 여기 있습니다. 적어서 탈이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겠어.

여러분,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듯 나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어린아이들에게 나의 이름을 잊지 않도록 일어주시고 그 아이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하게 하십시오!“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진영에 이른다. 유디트의 미모에 놀란 병사는 장군에게 즉시 인도한다.

“저런 여인을 둔 마을을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구만. 저런 여인 때문이라면 마을을 빼앗기 위해 전쟁도 할 만하지.”

유디트는 닷새간의 기도와 참회의 시간을 요구한다. 어떤 여인에게도 마을을 빼앗긴 적이 없고, 심지어 자기어머니가 누군지 도 모르고 어머니의 모습도 본적이 없는, 그래서 사자의 젖을 먹고 자란 홀로페르네스는 유디트의 미모와 말솜씨에 반해 이를 승낙한다.

닷새 후에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 앞에 나타난다.

“내가 군대를 이끌고 너희 마을에 위협을 가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너에게 무슨 생각이 떠오르던가?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홀로페르네스란 이름을 듣게 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법인데,

나는 우리 조상 대대로 섬겨온 하느님 이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나를 저주하고 있지 않는가?

아닙니다. 우리 하느님이 제 대신 이루어주시리라 믿습니다.

나에게 입을 맞춰다오. 유디트! 너의 입술의 피 거머리처럼 파고드는 구나. 하지만 너무나 차구나. 나는 너의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 볼 수가 있다. 너는 나를 증오하고 있어. 너의 그러한 증오를 말해다오.

그래요, 나는 당신을 증오해요, 당신을 저주해요, 당신은 알아야 해요, 당신을 내가 증오한다는 것을, 당신을 저주하는 것을, 자 이제 나를 죽여요!

죽여 달라고? 내일이면 몰라도, 오늘은 침대로 가야겠다.”

 

미르짜는 혼자 남아 유디트를 기다린다.

“조용하구나, 너무 조용해. 저기 누군가가 죽임을 당하고 있다. 홀로페르네스 일까, 아니면 유디트 일까! 물에 빠진 사람을 한 번 보 적이 있었지. 너무 무서워서 나는 뛰어들지도 못하고 쇠를 질렀어. 그때 그 사람의 고함소리를 듣는 게 두려워 나는 그 사람보다 더 크게 고함을 쳐댔어. 그래서 지금 나는 이렇게 중얼대고 있는 것일까?!

계집은 사내를 낳게 되어 있지 사내를 죽이라고 태어난 것은 아닌데.”

유디트가 이때 침실에서 뛰어나온다. 휘장 사이로 홀로페르네스가 잠들어 있는 것이 보이고 침대 가에는 커다란 칼이 걸려 있다.

“여기는 너무 환해, 너무 환해! 불을 꺼줘, 미르짜, 이 환한 불빛은 너무 뻔뻔스러워!

살아있었구나, 저 남자도! 유디트, 왜 그래요. 두 뺨이 온통 불에 이글거리듯 타오르고 마님의 두 눈은 부끄러움으로 가득하군요!

나를 쳐다보지 말아! 나를 쳐다보지 말라니까!

어서 이곳에서 도망쳐요!

이곳에서 도망치자고?

나의 영혼을 짓밟은 이곳에서 떠나자고?

마르짜, 나는 계집이야. 내 말을 잘 들어, 그리고 나의 부탁대로 해줘. 내가 힘이 다 떨어져 기절해 쓰러지게 되면 내게 물을 끼얹지 말어. 소용없을 테니까. 그 대신 내 귀에 소리를 쳐라. 너는 창녀야 이렇게. 그럼 나는 벌떡 일어나 너를 움켜잡고 목을 졸라 죽이려 들 거야. 그럼 또 이렇게 말해 줘. 홀로페르네스가 당신을 창녀로 만들었는데 아직 그 사람은 살아 있잖아, 이렇게!

오 미르짜, 그러면 나는 영웅이 될지 몰라, 홀로페르네스 같은 영웅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군. 그렇지만 내 말을 꼭 이해해야 돼,

미르짜, 너는 아직 처녀야, 처녀란 정말 어리석은 계집이지, 묘한 꿈을 꾸기만 해도 몸서리를 치지, 그런 꿈이 혹은 자기를 죽음으로까지 욕 뵈는 게 아닌가 하고, 그렇지만 또 희망에 부풀며 살지, 언제 나는 처녀의 몸에서 벗어나리라고, 처녀에게는 더 중요한 순간은 없는 거야, 처녀의 순결을 잃을 때처럼.”

 

유디트는 침실로 뛰어 들어가 큰칼을 내린다. “잘도 자고 있구나, 아무 것도 모른 채. 자기 자신의 칼이 내리쳐 죽음을 불러오리란 것을. 조용히 자고 있구나,

하! 겁쟁이 같은 계집, 분노 대신에 동정심 같은 게 일어 난다 구? 마음대로 즐기고 나더니 이리 평안히 자다니, 이런 뻔뻔스런 사람이 있을까? 그럼 나는 벌레란 말인가, 마음대로 발로 짓밟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잠들다니. 나는 벌레가 아니 야.

미소를 띠는 군, 나를 끌어당길 때도 이렇게 싱긋이 웃었지. 빨리 죽여라, 유디트 이 사람은 꿈속에서 두 번째로 너를 욕보이고 있다. 아직도 망설이는가, 그러면 저 사람의 몸 속에 숨어 있는 굶주린 욕정이 다시 꿈틀거려 또 다시 너를 덮칠 텐 데도… ”

유디트는 홀로테르네스의 목을 내리친다.

“사람들은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환호의 소리를 지를 거야, 그런 소리는 오히려 나의 몸을 산산이 부숴 버릴텐데, 하기야 그게 내가 받을 보상이겠지만.”

 

홀로페르네스의 잘려진 목을 보고 베툴리엔 사람들은 해방과 환희의 소리를 지르며 하느님을 찬미하고 유디트의 영웅적인 행위에 만세를 부른다. 유디트의 행위에 높은 보상이 약속된다.

“좋아요, 보상을 요구하겠어요, 그렇지만 우선 나의 요구를 절대 거절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세요.

맹세하겠소, 전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그럼 나를 죽여주세요, 그것을 요구합니다. 당신들은 맹세를 했어요.”

모두들 놀란다.

 

마르짜가 유디트를 이끌고 나간다.

“홀로페르네스의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하느님께 기도해 줘, 이 몸둥이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게 해달라구, 그분은 내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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