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i-Di/말과 말들...

브란덴부르거 앞에서

행복나무 Glücksbaum 2022. 11. 22. 16:02

1789~1793년에 지어진 이 문은 베를린에 있던 18개 성문 중 남아있는 유일한 것이다.

개선문으로 알려진 이 문 안으로 수많은 군대가 지나갔다. 1806년 10월 27일 베를린에 입성한 나폴레옹 군대가 이 문을 지났다. 나폴레옹은 전리품으로 브란덴부르크 문의 상징인 4두마차(Quadriga)를 떼어 프랑스로 싣고 갔다. 루브르에 보관중이던 이 전리품은 프로이센군이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1814년 3월 31일 파리에 서 베를린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하고 돌아온 프로이센 군대의 개선행진이 1814년 8월 7일 이 문을 지났다. 또한 1933년 1월 "초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독일국가사회주의의 나치 당원들의 횃불행진이 이 아래로 지나갔는가 하면 1945년 5월 베를린에 진격한 소련의 붉은 군대행렬도 이곳을 지나쳐 갔다.
1961년 8월 동독정권에 의해 베를린장벽이 설치 되었을 때도 브란덴부르크문 앞을 가로 지르며 냉전시대의 상징인 독일 동서분단의 현장이 되기도 하였다.

베를린 시장을 역임하였고, 훗날 독일대통령이 되었던 바이체커(Richard von Weizsäcker, 1920-2015)는 이렇게 말했다.
"브란덴부르크문이 닫혀있는 한 독일통일 문제는 여전히 열려있는 (독일 사람들이 꼭 해결해야 할) 문제다."

1989년 12월 22일, 수십만의 동베를린시민들이 이 문으로 몰려들었다.
장벽은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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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고
드디어 바다에 이르렀다."
"작은 행동들은 커다란 파고를 만들어냈고 ,
또한 눈 한송이 한송이가 모여 아람드리 전나무가지를 부러뜨렸다."

이 문을 통해 동독사람들이 서독으로 밀려들었다!
1989년 여름,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체코 프라하의 서독대사관으로 몰려들었던 동독민중들의 물결은 거대한 해일이 되어 브란덴부르크문을 덮쳤다.

동서독분단의 상징이 되었던 장벽은 이렇게 해서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해체되었다.
이는 1961년 8월 13일 베를린장벽이 건설된지 28년만의 일이다.
1945년 독일이 동•서로 나누어진지
44년만의 일이었다.

그들은 '자유' 란 이름으로
이념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평화' 란 이름으로 분단을 무너뜨렸고
그리고 "한덩어리 독일 사람"이 되었다.


[1.Okt.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