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도 서머나(이즈미르)를 찾아가는 길은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채 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에게 해안의 항구도시 이즈미르(Izmir)는 육로로 간다면 600km이상 되는 거리이다. 인구 200만이 넘는 이즈미르(Izmir)! 이스탄불과 앙카라에 이어서 터키의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세계 1차 대전으로 오스만 터키가 몰락하고 공화정이 들어서면서 서머나(Smyma)에서 이즈미르로 바뀐 것이다.
이 도시의 첫 인상은 터키의 어느 도시보다 더 서구적인 풍취가 물씬 느껴지는 곳이다.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는 대로(Straße)가 사방으로 뻗어있고, 길가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카페들이 즐비하다. 유럽 대 도시다운 풍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모습은 600여 년 간 터키를 지배해 오던 오스만 터키제국시대, 이 도시가 유럽 국가들과의 교역이 왕성했던 국제 무역항이었기 때문이다.
서머나는 주전 300년쯤부터 에게 해안의 항구도시로 자리 매김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스 최대 서사시 호모(Homer)의 고향이라고도 전해지는, 이곳은 알렉산더 대왕 때 큰 전기를 맞게 되었다. 주
전 330년 소아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는 서머나에 주둔한 일이 있었다.
근처 파거스 산에서 사냥을 다녀와 낮잠을 자던 알렉산더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네메시스 여신으로부터 서머나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라는 지시였다. 꿈에 깨어난 그는 곧 실행에 옮겼다. 파거스 산에 거대한 성채를 짓고, 산밑 해안지역에는 새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리스 식 대 도시 ‘서머나’가 탄생된 것이다.
주전 20년경, 이 도시의 주인이 로마 제국으로 바뀌면서 서머나는 더욱 발전하였다. 대형 시장 건물인 아고라(Agora), 2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야외 원형극장, 운동경기장, 체육관, 로마 식 공중목욕탕 등을 두루 갖추었다. 당시 로마 제국내의 어느 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서머나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주후 170년 이 지역에 휩쓴 대지진으로 서머나는 크게 파손되었다. 이때 서머나의 웅변가 아리스티데스는 당시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도시 재건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철학자로서 유명했던 황제는 그 글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서머나는 복구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난 여러 번의 지진으로 서머나의 영광은 대부분 파괴되거나 땅속에 묻히게 되었다.
1930년 대 이후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활발한 발굴 작업을 벌여왔다. 오늘날 발굴된 로마시대의 유적으로 대표적인 것이 ‘아고라’이다. 그리스나 로마는 대 도시를 건설할 때 언제나 대형 시장 터를 마련하였다. 고고학자들은 발굴된 이 아고라의 규모로서 그 도시의 크기와 경제력을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서머나에서 발굴된 아고라는 고린도 양식의 석주가 늘어서 있는 120m, 80m크기의 대규모이다. 특이한 것은 물건을 저장하는 지하층부분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이 도시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융성했던 도시였던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1) 서머나 성채의 저수시설
파거스 산(현재, 카디페칼레 산) 위에는 알렉산더 대왕 때 쌓았던 성채의 일부분과 병사의 식수를 저장했던 저수시설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2) 서머나 교회와 순교자 ‘폴리캅’
서머나에는 일찍부터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었고 초대교회가 세워졌다. 서머나 밧모 섬에 유배되었던 요한은 하늘이 열리 것을 보면서 당시 핍박받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낼 편지를 기술했다. 이 일곱 교회는 오늘의 터키 지방 서쪽에 모여 있다. 그 일곱 교회 가운데 하나의 교회가 서마나에 있는 교회였다.
서머나 교회(묵2:8-11)가 배출한 빛나는 인물은 순교자 폴리캅(Polycarp)이다. 서기 2세기 전반, 교회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폴리캅은 오랫동안 서머나 교회의 감독을 지냈다.
폴리캅은 교회가 환난을 당할 때 체포되어 그곳 로마 총독 앞으로 끌려갔다. 그의 나이는 이미 86세였다. 총독은 그의 나이를 고려하여 죽음을 면하게 해주려고 “내 앞에서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주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폴리캅은 “지난 86년 동안 나는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나를 버린 일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를 모른다고 하여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욕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 그는 이 유명한 말을 남기고 화형을 받고 순교 당하였다고 한다.
3) 순교자 폴리캅 기념교회
오늘날 서머나에 순교자 폴리캅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번잡한 시내 한복판에는 순교자 폴리캅이 기념 교회 주위는 의외로 조용하여 정숙한 분위기로 기도를 드리며 순교자의 삶과 신앙의 길을 다시 한 번 명상할 수 있게 한다.
역사적인 기념교회는 17세기 때 화제로 소실되고, 현재 교회는 1690년에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교회 구내에 수도원도 함께 있는 가톨릭 교단에 소속된 교회이다. 교회 내부에는 성경의 주제뿐만 아니라 폴리캅의 생애와 관련된 성화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이 성화들은 19세기말 이 교회를 수리할 때 프랑스 화가 ‘레이몽 페레’가 그린 것이라고 한다.
많은 성화 중에 폴리캅이 순교 장면이 특별히 눈길을 끈다. 불길에 휩싸인 폴리캅을 향해 칼을 든 사나이가 달려든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평화스러우며, 눈길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폴리캅 왼편에는 손이 묶인 또 한 사람의 순교자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바로 화가 자신인 페레이다. 그림을 그린 화가는 자신을 폴리캅의 뒤를 잇는 순교자로 묘사하고 있다.
이 성화는 현대를 평안하게 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의 고난을 달게 받고 살아가야 할 진정한 구도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위한 순교가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허둥대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신앙으로 살아야 할 과제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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