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르에서 남쪽으로 5-60km 내려가면 셀즈크가 나타난다. 현재의 셀주크는 에베소 유적을 보러 들르는 도시다. 에베소는 셀주크(Selcuk)라는 지역의 폐허 속에 감추어졌던 도시이다. 지금은 거대한 석상의 잔해로 남아 과거의 영화만을 보여주고 있다.
번성기였던 로마시대에 아시아를 향해 출발한 배는 에게 해를 가로질러 에베소 항에 첫발을 내디디게 된다. 대리석으로 포장된 폭이 21m나 되는 대리석 길에 압도 당한다. 길 양편에 화려한 고린도 식의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고, 밤에는 가로의 횃불이 휘황찬란하게 빛났다고 한다.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 550m에 이르는 이 길은 에베소의 야외 원형극장으로 이어진다. 3단 형태의 구조로 각 단은 22계단으로 되어 있으며, 2만 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하는 거대한 반원형 로마 식 엠피 야외극장이다.
이 극장의 오른 편에는 시장 구역인 아고라(Agora)가 있다. 동서와 남북의 길이가 각각 100m이상 되는 정방형 석조 구조물로 된 시장 지역이다. 국제적인 상업도시인 에베소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종합시장 터의 동북 편에는 유명한 에베소 도서관(Celsus)이 있다. 일찍이 에베소에서 활동했던 희랍인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학문 전통을 이어오는 곳으로, 로마 제국 내의 최대 도서관 중의 하나다. 화려하고 부유한 대 도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 이것이 로마시대 에베소의 모습이다.
에베소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기 도시에 대하여 큰 긍지를 느끼고 살았고,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찬탄의 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에베소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자랑거리는 무엇보다도 여신 아르테미스 신전이었다. 에베소 사람들은 희랍신화의 최고 신, 제우스의 딸 아르테미스(Artemis)여신을 수호신으로 섬겼다. 온 몸에 수많은 젖을 가지고 있는 여신으로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이 여신을 위하여 그들은 신전을 건축하였다. 그런데 한 정신병자에 의해 기원전 356년 이 신전이 불타 버렸다. 이 사건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방화범이 자기 신전을 불태우는데도 막지 못하는 무력한 신이란 말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한 현인은 이런 대답을 주었다고 한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그 때 출타 중이었는데 “바로 그 때에 알렉산더가 태어나는 것을 보러 갔다”는 것이다.
후일,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에베소를 방문하여 이 신전을 복구시켜 주겠다고 에베소 인들에게 말했지만 자존심이 강한 에베소 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수호신의 신전을 다른 사람의 손에 재건하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큰 문제는 세계를 제패한 알렉산더 대왕의 마음을 거스를 수 없어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 한 현인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대왕이시여! 당신은 인간이 아니라 신과 같은 분이 신데 어떻게 다른 신을 위해서 신전을 짓는다는 것은 합당치 않은 일입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후 에베소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다시 신전을 재건했다고 한다. 폭이 70m, 길이가 130m 에다 높이 20m나 되는 거대한 규모의 신전을 건축하였다.
그들의 목표한 것은 그리스의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 크고 웅장한 신전을 짓겠다는 생각으로 파르테논 신전의 4배나 되는 건물을 재건축한 것이다. 신전의 둘레에는 127개의 이오니아식 석주가 둘러서 있어 최고의 건축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신전은 세계 7대의 불가사이 중의 하나로 꼽힌다.
1) 성모 마리아 교회
서기 50년대 사도 바울은 기독교의 복음을 들고, 두 번에 걸쳐 아르테미스 여신의 도시, 에베소를 찾아갔다. 그리고 긴 시간을 할애하면서 에베소 전도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전도활동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아르테미스 신전을 이용해서 재물을 모아 드리는 여러 사람들의 방해로 곤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앙의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선교의 길은 환하게 열리고 더욱이 아들처럼 사랑하는 디모데가 힘을 합하여 선교에 정진한 결과 좋은 결실을 많이 맺었다. 많은 결신자들이 생겨 아르테미스 신전의 도시에 에베소 교회(묵 2:1-7)가 뿌리를 내렸다.
교회 역사에서 에베소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과 관련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신약성서 요한 19장에는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어머니인 마리아를 모실 것을 당부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초대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예수의 부탁을 받은 요한은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로 갔고, 마리아는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생애를 마쳤다고 전해진다.
이 기념교회의 역사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기념교회는 ‘에베소 종교회의’의 장소이기도 하다. 서기 431년 에베소에서 열린 ‘에베소 종교회의’는 이러한 전승을 교회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2) 성모 마리아의 집터
역사적으로 에베소와 관련된 큰 수수께끼는 마리아가 말년에 살았다는 곳이었다. 19세기 초엽 독일의 카타리네 에멘리히(Catherine Emmenrich)라는 여자는 특별한 계시를 통해 이 장소를 알게 됐다고 주장하였다. 에베소 옆에 있는 파나야 카풀루(Panaya Kapulu)라는 산 속에 폐허로 남아있는 비잔틴 시대에 지은 작은 교회가 마리아가 살던 집터라는 것이었다.
가톨릭교회는 그 후 이 교회를 복원하였고, 1961년 교황 요한 23세는 가톨릭의 성소로 공포하였다. 그 후 교황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도 이곳을 방문하여 ‘마리아의 집’은 오늘날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3) 사도 요한 기념교회
에베소의 또 하나의 기념교회는 서기 500년대 중엽에 요한의 무덤이라고 추정되는 장소에 요한 기념교회를 세웠다. 오늘날 발굴된 유적으로 보아 엄청난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4) 누가의 묘
5) 믿음의 아들 디모데
그는 루스드라에서 부친은 헬라인이었고 모친은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이었다.(행6:1) 그는 어머니 ‘유니게’와 할머니 ‘로이스’ 슬하에서 자랐다.(딤후1:5) 디모데는 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전도여행에 동행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디모데는 목회서신 중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의 수신인으로서, 신약성경 전체에서는 바울의 중요한 동역자로 나타난다. 그가 최초로 등장하는 곳은 행 16 : 1- 3절로서 바울의 2차 여행 중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이다. 이미 1차 여행 때 바울이 이곳을 들렀으므로(행14:6-8) 이때 이미 바울과 디모데 사이에 안면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비록 디모데는 연소했지만(딤전4:12) 그때 이미 주위의 모든 형제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있었다.(행16:1) 나중에 바울이 디모데를 가리켜 ‘아들’, 혹은 ‘믿음의 아들’로 불렀다.(고전4:17, 딤전1:2) 어쨌든 디모데는 연소함에도 불구하고 그 성실하고도 온유한 성품으로 인해 바울의 제자 자격으로 이때부터 선교여행에 따라 나서게 된다(행16:3) 특이한 사실은 이때 그가 그토록 육체적 할례를 반대했던 바울에 의하여 할례를 받고 떠났다는 사실이다. 누가는 그 이유를 당시에 극심했던 유대인들의 반대를 무마시키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디모데는 빌립보 지방에서의 투옥 사건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는데 (행16:11-40) 이는 그가 아직 연소하여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듯하다. 디모데는 이어서 계속된 데살로나가 지역 선교에서도 언급되지 않고(행17:1-9) 다만 바울이 곤궁에 몰려 떠나게 된 베뢰아에 실라와 함께 체류한 정도로만 취급된다. 그 후 바울과 디모데는 헤어졌다가 가능한 속히 오라는 바울의 전갈을 받고 디모데는 고린도에서 바울과 합류한다(행18:5). 그러나 실전 3: 1이하의 말씀에 의하면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과 합류한 장소는 고린도가 아니라 아덴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데살로나가 교우들을 염려한 나머지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냈으며, 기쁨의 소식을 안고 돌아온 디모데에게 데살로나가 전서를 주고 다시 그곳을 방문하도록 했다. 바울은 제3차 선교여행 중에도 고린도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자 디모데를 보내 문제를 해결토록 했다.(고전4:17) 뿐만 아니라 디모데는 그 후에도 바울이 에베소에 머무르는 동안 에라스도와 함께 마케도니아로 보내지기도 했다는데(행19:22) 이처럼 그가 바울의 선교 사역 고비 고비마다에서 바울의 대리자로서 보내어졌다는 사실은 그가 그만큼 바울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음을 보여 주며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는지를 암시해 준다.
'지구촌 구석구석 살펴보기 > 기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오디게아 (Laodicea) (0) | 2007.12.26 |
---|---|
아프로디시아스 (0) | 2007.12.26 |
빌라델피아 교회 (현재명, Alasehir) (0) | 2007.12.26 |
서머나 (현재명, Izmir) (0) | 2007.12.26 |
두아디라 (현재명, Akhisar) (0) | 2007.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