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제11회 세계올림픽이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되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지 3년이 되는 해였다. 이 해 1월 8일 전 일본 남자 농구선수권 대회에서 연희전문학교 팀이 우승하여 장이진, 이성구, 염은현 등의 한국 선수들이 베를린 올림픽에 선발되었다. 그리고 육상의 마라톤 부문에서는 손기정과 남승룡 선수(일본 대표로)가 출전하였다. 이처럼 한국이 세계무대에 진출하는 것을 계기로 당시 유럽에서 활동하던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한 것도 이 해 6월이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하늘 아래서 한국의 건아가 세계를 제패한 것은 그해 8월 9일의 사건이었다. 손기정 선수가 세계 신기록 2시간 29분 19초 2로 당당하게 1등을 하였고, 남승룡 선수가 2시간 31분 42초로 3등을 하였다. 이것은 그야말로 세계만방에 '마라톤 한국' 을 과시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러나 세계가 알다시피 그 당시는 한국이 주권을 일본에게 탈취 당했던 때라 베를린의 하늘에 올라간 것은 태극기가 아니라 일장기였다. 이 일은 한민족의 가슴을 또 한번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동아일보에서는 도저히 손 선수의 가슴에 단 일장기를 그대로 신문에 내보낼 수 없어 그것을 지우고 신문에 사진을 게재하였다가, 이것이 문제가 되어 동아일보는 8월 27일 무기정간 처분을 당하고, 주필 김준연을 비롯한 간부들이 해고당했다. 어쨌든 베를린은 한국인에게 깊은 감회를 안겨다 주었다.
그후 세월이 지났어도 한국인들은 마라톤이라면 베를린의 손기정 선수를 생각하며 자부심을 갖게 된다. 오랜 세월 흐른 지난 1980년, 다시 동아일보에 흥미 있는 기사가 실렸다. 그것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그리스 정부가 특별한 배려로 마라톤 우승자에게 고대 희랍의 투구를 선사한다고 독일 올림픽 위원회에 기증했다는 이 투구의 행방에 대한 기사였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된 영문인지 우승자 손기정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아 모르고 지냈다는 것이다.
수년 전,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손기정 선수가 그 투구의 행방을 알아보니 베를린 샤로텐부르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교포를 통해서 그 반환을 요구한바 있었으나 반환 받지 못하다가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이 투구를 돌려 받게 되었다.
또 하나, 우스운 이야기라고 할까 가슴 아픈 이야기라고 할까 1983년인가 독일을 방문한 한국의 한 국회의원이 베를린 경기장에 몰래 들어가 경기장 벽면에 일본대표로 기록되어 있는 수상자 기록에서 '일본' 이란 글자를 돌로 뭉개버린 일이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에서 받은 상장은 현재 그의 모교 양정고등학교에 남아 있으며, 그가 상으로 화분에 담아온 월계수도 모교인 학교 교정에서 자라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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