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e Welt/타이완 이야기

08-05-27

행복나무 Glücksbaum 2008. 5. 28. 14:05

예수 핑안(耶穌平安)!

 

 이곳에 처음 왔을 때 5월부터는 우기가 시작될 거라고 누군가로부터 들은 것 같은데, 5월이 다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비는 거의 내리지 않고,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맑은 날씨가 지겹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 덕분에 기온은 지난 4월에 도착한 이래로 변함없이 매일 33도까지 오르고 있습니다. 대만에서도 제가 있는 곳은 남쪽 지방이라 북쪽에 있는 타이뻬이보다 5도 정도 기온이 더 높습니다. 특히 제가 살고 있는 집은 단층 슬라브 집이라 더 덥습니다. 집안에 있는 에어컨 온도계는 늘 31도, 32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밤이 되어도 좀처럼 내려갈 줄을 모릅니다. 잠시 에어컨을 켤 때는 27도에 맞춰 놓는데, 한참을 켜도 27도까지 내려가지 않아서 결국 28도까지 내려간 것을 보고 에어컨을 끄게 됩니다. 아내가 무섭다며 옥상에 올라가 보려고 하지를 않고, 그래서 옥상에 올라가는 문이 늘 닫혀 있기 때문에 더운 공기가 빠져나가질 못해 집안이 더 덥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도마뱀이 싸놓은 똥(쌀알보다 조금 큰 정도의 크기)을 치우며 이를 갈고 있습니다. 다 몰아냈다 싶은데도 여전히 집안 곳곳에서 똥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바닥에 싸 놓는 건 그런대로 참을 만하지만, 커튼에 싸 놓는 건 정말 참기 어렵습니다. 아내는 걸어놓은 겨울옷들에다 똥을 쌀까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집에 없는 동안 화장실에서 삐후(도마뱀)를 발견하고는 앞집에 와서 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여자를 불러서 두둘겨 잡게 했다고 합니다. 아내는 자기 손으로는 바퀴벌레 하나도 절대로 잡지 않습니다. 거미, 바퀴벌레, 도마뱀 할 것 없이 발견하면 크게 소리를 지르고선 멀리 있어도 저를 부릅니다. 하긴 여기 바퀴벌레는 거의 물방개 수준으로 크기가 커서 웬만한 여성이면 잡을 엄두를 내기 어렵긴 합니다만. 아내 전공은 모기 잡기입니다. 유독 모기가 아내만 집중적으로 물기 때문에 아내는 과민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이 닿을 만한 곳에 늘 전기 모기채를 놓고선 수시로 열심히 잡습니다. 덕분에 이제 집안에서는 모기가 거의 퇴치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기향을 집안 곳곳에 피웠는데, 천정이 높아 공간이 큰 탓인지 모기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아 모기가 잘 죽지 않을뿐더러, 모기가 죽기 전에 사람이 향에 질식해서 죽게 생긴 데다가, 모기향 때문에 집안의 벽들이 변색이 되고 있어서 모기향 피우는 걸 중단했습니다. 전자 모기향도 공간이 커서 거의 효과가 없고, 결국 전기 모기채로 직접 잡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만에 와서 산 물건 중에 가장 잘 선택한 물건이라고 아내는 흐뭇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렵게 인터넷으로 주문한 텐트형 모기장은 받아보니 한국어 설명서가 그대로 붙어 있는 한국 제품이었습니다. 한국은 중국에서 수입하고, 그걸 대만에서 다시 수입하니 한국에서 살 때보다 2배 가격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집에는 옷장, 침대, 식탁, 소파, 텔레비전 등 먼저 살던 주인이 남겨 놓은 물건들이 있어서 큰 물건들은 한국에서 거의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이사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것이 있어서 이곳에 도착한 이후 구입을 했습니다. 냉장고, 세탁기, 선풍기, 전자레인지 등. 대만에서는 서울에서처럼 많이 벌여놓고 살지 말고 되도록 단촐한 생활을 하자고 아내와 약속을 했기 때문에 작고 간단하고 싼 것으로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냉장고와 세탁기는 LG 것으로, 선풍기는 일본회사 것으로, 전자레인지는 대만회사 것으로 구입을 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냉장고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 열흘쯤 지나서 갑자기 작동이 되지 않아서 냉동실에 넣어둔 음식이 녹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해서 사람이 와 살펴보았는데,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새 것으로 교체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수증을 보관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워낙 전산처리가 잘 되어 있어서 정식으로 구입한 물건이라면 시리즈 번호만 알려주면 언제 어디에서 구입한 것인지 서비스센터에서 다 확인을 할 수 있는데, 여기는 소비자가 구입 날짜와 장소를 확인받은 영수증을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목실에서 함께 일하는 목사님의 친구가 운영하는 전자제품 가게에서 물건을 산 것으로 영수증을 새로 끊고, 그것을 근거로 물건을 교체하기로 했습니다.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일단 하루를 넘겨보고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혹시 냉장고에 물건을 너무 많이 넣어서 그런게 아닌가 해서 물건을 다 빼고 몇 시간 놔두었다가 다시 켰더니 냉장고가 제대로 작동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것으로 교체할 필요 없다고 연락을 했는데, 몇 일 후에 또 작동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물건을 많이 넣지 않았는데도 고장이 났습니다. 다시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교목실 직원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LG가 한국에서는 좋은 제품인지 몰라도 대만에서는 그렇지 않다, 기후가 틀리니 대만에서는 대만 제품을 사라며 내 비위를 건드렸습니다. 아무튼 서비스센터 직원이 다시 와서 살펴보더니 드디어 문제점을 찾아냈다며 수리를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영수증이 없어서 구입한 날짜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원칙대로라면 유상 수리를 해야 하지만, 한국에서 오신 분이라니 이번은 무상으로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구입한 제품은 인도네시아에서 만든 것이어서 가격이 조금 저렴하고, 같은 LG 제품이라도 한국에서 만든 것은 가격이 더 비싸다고 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만든 제품이고 수리가 가능하다고 해서 구겨진 자존심을 조금은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을 자랑하기 위해 대만에 온 것은 아니지만, 한국이 무시를 당하는 데 대해서는 저도 모르게 어쩔 수 없이 방어적인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그건 아마도 대만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일본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한 반작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제품을 선전할 때 미국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으로 품질의 우수성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다,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제품이다 라는 것으로 품질의 우수성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만큼 일본을 우러러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반면에 한국은 여전히 자기들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더더욱 한국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냉장고 때문에 자랑은커녕 조금은 체면을 구기고 말았습니다.

 

이제 학교에서 마련해준 중국어 강좌는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강의라 감사하게 참석하기는 했지만, 중국어 실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체코에서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두 여학생에 맞추어 마련된 강좌라 아주 기초적인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혼자 공부하는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우리 부부는 외모가 대만인들과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언어문제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는 당연히 대만어나 중국어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를 대하기 때문입니다. 통역과에 와 있는 Ed라는 영국인 교수가 중국어 강좌에서 함께 공부를 했었는데 몇 주 듣더니 포기를 했습니다. 그 후에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온 Augustine이라는 철학과 교수가 합세를 했는데, 그는 대만에 온 지 5년이나 되었는데 이제 처음으로 중국어를 배운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외모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영어만 사용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고, 중국어 배우지 않는다고 탓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에게는 중국어로 말할 것을 기대하고 있고, 거기에 더해서 중국어보다 대만어를 배워야 한다고 대만어 공부 압력까지 가하는 대만어 수호를 주장하는 나이 든 목사님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꾀를 냈습니다.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먼저 영어로 말을 거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더듬거리는 중국어를 몇 마디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우리가 외국인이라 생각해서 신경을 써서 듣고 대답해 줍니다.

 

그렇게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황하게 우리에게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경우 상대가 외국인인줄 알면 그 사람에게 맞춰서 이야기하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별로 그러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외국인 같지 않아서일까? 특히 집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가 못 알아듣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대만어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다 아내가 단어 하나쯤 알아듣고 대꾸를 하면 더 신이 나셔서 길게 말씀을 하십니다. 중국어를 잘 못하는 시장의 아주머니들은 우리가 처음 시장에 갔을 때 우리가 대만어는 하지 못하면서 중국어 같은 걸 몇 마디 하는 것을 보고서 중국 본토에서 온 사람(노동자)이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한국 사람인 것이 다 소문이 났지만. 물론 선교사로 왔으니 당연히 언어를 배울 생각을 하고 있지만, 아무튼 중국어에 조금 자신이 붙을 때까지는 이렇게 생존하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요즘 한국 소식은 거의 끊고 지냅니다. 어쩌다 한 번씩 인터넷으로 살펴봅니다만, 정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쇠고기 파동으로 촛불시위가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실제 분위기가 어떤지는 감을 잡기 어렵습니다. 뉴스라는 게 한 번은 걸러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도 지난 20일에 새 정부가 출범을 했습니다. 한국과 비슷하게 보수 정당인 국민당으로 회귀를 했는데, 한국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두 나라 모두 건강하게 발전하고 성장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남북문제, 대만의 양안(兩岸)문제도 잘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제가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저를 기억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늘 충만하시길 기도드리며,

 

2008년 5월 27일,

 

대만  구 * * * * 가 보냅니다.

 

 

 

 

 

* 운동장에서 찍은 창롱대 사진입니다. 왼쪽이 제1,2 기숙사이고, 흰 건물이 지금 독립 건물로 짓고 있는 도서관입니다. 그 뒤에 제가 있는 제1 강의동 끝자락이 보입니다. 중앙에 있는 건물은 행정부서들이 들어설 건물로 지금 짓고 있는 중이고, 오른 쪽 창롱(長榮)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는 건물이 제2 강의동, 대학(大學)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는 건물이 제3 강의동입니다. 그 뒤로 가려서 보이지는 않지만 제3, 4 기숙사와 체육관이 있습니다. 제3 강의동 옆으로 보이는 낮은 건물은 학생회관이고, 그 옆으로 배수 등 건물관리 시설 건물이 있습니다. 야간학부를 포함해서 1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지만, 부속 시설이 부족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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