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녠 콰일러(新年快樂)!
개인적으로나 한국과 대만의 사회적으로나, 또 전 세계적으로나 힘든 한 해였던 2008년이 지나갔습니다.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모든 사람들 사이에 기쁨과 평화가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늘 그렇게 해 왔는지 모르지만, 2008년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혼란스럽고 어려운 한 해였기 때문인지, 대만에서 처음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이 보기에 상당히 요란스럽게 새해를 맞이하는 듯했습니다. 타이베이, 타이중, 타이난 같은 대도시에서는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대규모 불꽃 쇼를 보며 새해를 맞았습니다. 유별나게 불꽃놀이나 폭죽놀이를 좋아하는 중국 문화의 영향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타이베이의 101층 빌딩이 건물 전체를 이용해서 3분 넘게 보여주는 새해맞이 불꽃 쇼는 TV를 통해 보아도 장관이었습니다. 아마도 현장에서 보았더라면 더 대단하게 느껴졌을 게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요란하게 새해를 맞는 데에는 2008년의 무거운 기억들을 멀리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들이 담겨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반면에 성탄절은 너무 쓸쓸하게 지나갔습니다. 성탄절이 공휴일이 아닌 탓에 교회의 성탄절 예배도 21일 주일에 드렸습니다. 전날인 20일 밤에는 교회 청년들을 중심으로 지역 주요 지점들과 교회가 있는 동네를 돌며 성탄 노래를 부르고 성탄을 알리는 구호도 외치고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탄절의 의미를 모르는 탓에 반응이 별로 없어서 흥이 나질 않았습니다.
아내가 이따금씩 들러서 야채를 사는 집 근처의 가게에 크리스마스 등 장식이 되어 있어서 아내는 가게 주인이 기독교인이었나 보다 하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으로 주인이 기독교인이냐고 물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점원은 아내가 하는 '기독교인'이라는 말도 금방 알아듣지 못하더니, 주인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러면 왜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보기 좋아서 했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이냐는 질문에 산타 할아버지 생일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 대답을 하는 사람은 한국에도 있습니다만...
학교에서는 성탄 축하 행사로 19일에 복음송 가수를 초청해 음악회를 가졌고, 22일 저녁에 교목실이 관리하는 동아리 모임 학생들을 중심으로 학교 근처를 돌며 성탄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23일 저녁에 성탄 축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야간 수업도 그대로 진행되는데다 학생이나 직원들이 성탄절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서 참석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성탄 축하 예배는 여러 나라 언어로 부르는 성탄 축하 노래들과 성경 봉독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금년에는 한국에서 선교사가 왔으니 한국어로 부르는 성탄 노래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러마고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지도하는 한국어 과목 학생들을 믿고 대답을 하고서 학생들에게 참여를 부탁했는데, 30여 명의 수강생들 가운데 겨우 두 명만 참가를 했습니다. 아직 한국어도 잘 못하는 데다 노래에도 자신이 없고, 기독교인도 아니고, 그 시간에 수업이 있는 학생도 있고,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로 참가를 기피했습니다. 다행히 한국에서 2년 정도 사역을 해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기독교학과 학생 둘이 있어서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아내와 저, 한국어 수강생 둘, 기독교 학생 둘, 이렇게 모두 여섯 명이 캐롤 두 곡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막상 성탄절 이브와 성탄절은 아무 행사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에게 성탄절은 정상근무를 하는 날이니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해도 성탄절 이브에 행사를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다음 날이 정상근무를 하는 날이라 사람들이 참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렵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 처음 겪는 쓸쓸한 성탄절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현실이 제가 대만에 있어야 하는 이유이리라 생각합니다.
1월 중순이면 1학기가 끝이 납니다. 그리고 ��졔(春節. 설) 연휴를 포함해서 짧은 겨울방학이 지나고 나면 2월 중순부터 2학기가 시작됩니다. 새 학기에는 인생철학 강좌를 하나 더 맡게 되었고, 영어성경독해 과목을 신설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5강좌에 10시간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 학기에는 조금 더 분주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르칠 수 있게 되어서 기쁘고 기대가 됩니다. 신청한 학생은 아직 열 명도 되지 않습니다만, 숫자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신청한 학생들이 기독교인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더 의미가 있고 보람되리라 생각합니다.
사는 이야기를 조금 전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대만에서 운전을 하면서 발견한 사실들입니다. 대만도 한국처럼 운전석이 왼쪽에 있어서 운전을 하는 데 큰 혼란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신호등입니다. 대만의 대부분의 신호등은 녹색, 황색, 적색의 세 개뿐입니다. 대만에는 좌회전 신호등이 따로 있는 경우가 대도시 일부 지역을 빼고는 거의 없습니다. 좌회전은 녹색 신호 때 같이 합니다. 녹색불이 켜지기 전에 좌회전할 차들이 중앙선 조금 너머까지 고개를 내밀고 좌회전 준비를 합니다. 그러다 녹색불이 들어오면 반대쪽 직진 차들이 움직이기 전에 재빨리 좌회전을 하거나 아니면 직진 차선들이 다 지나가기까지 기다렸다가 녹색 신호의 남은 시간에 좌회전을 합니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녹색 신호가 떨어졌으니 내 신호다 하고 마음 놓고 직진을 하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직진, 좌회전 동시 신호를 양쪽 모두에게 주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직진, 좌회전, 우회전 동시 신호를 마주 선 차량들 모두에게 주는 곳도 있습니다. 신호등대로 한다면 네거리 한 가운데서 차들이 충돌하도록 신호를 주고 있는 셈입니다.
대만에서는 직진보다 좌회전이 더 자유롭다고 보는 편이 낫습니다. 직진 차들은 신호를 기다리지만, 좌회전 차들은 어차피 따로 신호가 없기 때문에 틈만 나면 수시로 좌회전 내지 유턴을 하기 때문입니다. 중앙 분리대가 끊어져 있는 곳에는 거의 어김없이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비스듬한 화살표 표시가 있는데, 모두 좌회전할 수 있다는 표시입니다. 작은 골목이라도 있는 곳이면 대부분 이렇게 중앙 분리대가 끊어져 있어서 왼 편에 골목이 있는 곳이면 대부분 좌회전을 할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여기처럼 일,이 십 미터마다 연속으로 좌회전 가능 표시가 있습니다. 그러니 직진 신호가 떨어졌다고 마음 놓고 달릴 수 없고, 내 신호만 보고 달릴 수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와 달리 우회전은 매우 조심을 해야 합니다. 우측에 오토바이들이 달리는 길이 있어서 직진 신호가 떨어지면 오토바이들이 직진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직진 신호가 아니더라도 우측에는 늘 많은 오토바이들이 있으므로 우회전을 하려면 늘 신경을 써야 합니다. 오토바이는 자동차 왼쪽으로 치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좌회전 할 때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언제 어느 때나 자동차는 늘 오토바이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교통 체계가 너무 주먹구구식이라 생각했는데,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로가 좁아서 좌회전 차량을 위해 따로 차선을 마련해 놓기 어려운 경우, 그리고 차량들이 그리 많지 않는 경우, 신호등 체계를 너무 자세하고 복잡하게 해 놓으면 도로 공간 낭비, 기다리는 시간 낭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신호등 체계를 간단히 해 놓고, 적당히 알아서 다니도록 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저도 이제는 이런 신호체계를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방어 운전에 더 신경을 써야 하겠지요. 아무튼 대만의 신호등은 의무사항이라기보다 참고사항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대만의 교통사고율이 한국의 교통사고율보다는 낮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대체로 운전자들이 과속을 하지 않는데다, 좌회전 차량이 차선을 반쯤 막고서 기다리고 있어도 경적 울리지 않고 알아서 적당히 피해가 주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아내 표현에 따르면 대만은 좌회전 천국, 오토바이 천국, 개 천국입니다. 거리 곳곳에 풀어놓고 기르는 개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는데다가, 개들도 만만디여서 차가 다가와도 서둘러 피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만에서는 대만의 생활 습관과 속도를 따르는 게 정석이라 생각합니다.
새해 벽두부터 중동 지역에서 분쟁 소식이 들려와서 2009년도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불길할 예감을 갖게 합니다. 지난 해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경제적 어려움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국제 정치까지 술렁이니 걱정이 더 커집니다. 더불어 함께 산다는 게 너무도 어려운 일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인류를 휘두르고 있는 어둠의 세력을 이겨내기가 인류 자신에게는 너무도 힘겨운 일 같아 보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좀처럼 겸손해지지 않습니다. 분명히 세상은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모자라서 혼란스럽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주 예수께서 주시는 참 평화는 언제나 여러분의 심령과 삶 가운데 충만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그 평화가 넘쳐흘러서 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2009년 1월 6일,
대만에서 구창완 올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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