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4월에 대만에 온 이후로 6개월간 최저기온 25도 내외, 최고기온 32도 내외로 기온 변화가 없더니 10월 말부터 최저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해서 요즘은 20도 아래로까지 떨어졌습니다. 아직도 낮 기온은 30도에 이르고 있지만, 최저기온이 떨어진 탓인지 무덥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양복에 넥타이를 매도 될 만큼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합니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타이난 지역도 원래는 7,8월 정도만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더운데, 금년은 이상하게 일찍부터 덥기 시작해서 더위가 오래 간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금 강하게 훈련하시려고 이런 해에 우리를 보내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옷 가게에도 털 달린 옷들이 나와 있고, 실제로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막 20도 아래로 내려갔을 뿐인데 호들갑이 심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몸으로 느끼는 추위나 더위는 단순히 객관적인 온도 수치로만은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인 듯합니다. 그래서 털 옷 입은 사람부터 반팔 티셔츠 입은 사람까지 다양한 복장이 지금 공존하고 있습니다.
날씨는 좋아졌지만, 대만 사회는 뜨겁게 달아올라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거액의 돈 세탁 혐의로 첸 쉐이삐엔(陳水扁) 전 총통이 구속된 사건을 놓고 이에 항의하는 사람들의 열기가 뜨겁고, 다른 한쪽에서는 마 잉�c우(馬英九) 현 총통이 중국과 굴욕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는 데 대해 항의하는 사람들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집시법 개정을 주장하며 수주째 항의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집권 이후 경제 침체로 인해 급속하게 인기를 잃고 있던 마 정부는 첸 전총통의 돈 세탁 사건을 터뜨려 연일 매스컴을 달구었고,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10월까지도 바닥을 치던 인기도가 최근 약간 상승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구체적인 혐의에 입각해서 사법적인 절차를 밟기 전에 장기간에 걸쳐 언론 플래이를 통해 많은 사람을 죄인으로 확정짓고 그들의 인권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해 이 사건은 순수성을 잃고 정치 보복이라는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 정부는 11월 12일 첸 전총통을 구속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첸 쉐이삐엔에 대한 지지를 외치고 있습니다.
첸 쉐이삐엔의 민진당 정부는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며 줄곧 중국과의 대화를 거부해 왔습니다. 그러나 국민당의 마 잉�c우 정부는 중국과의 대화를 주장하며 집권을 했고, 그 정책을 구체화해가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이 대만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양국 사이에 정부 차원의 공식 대화는 진행되지 않고 있고, 그 대신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海峽兩岸關係協會: 해협회)라는 비정부 기구와 대만의 재단법인 해협교류기금회(海峽交流基金會: 해기회)라는 비정부 기구를 채널로 해서 양국이 대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결실로 11월 초 중국 해협회 회장이 대만을 방문해서 해기회 측과 항공, 해운, 우편 분야의 교류를 확대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는데, 9월말 중국 저질분유 수입 사건이 터졌습니다. 중국에서 수입한 분유 종류와 관련 식품들에 식품에 들어 있어서는 안 되는 멜라민이 함유되어 있었다는 것인데, 대만 정부가 기준을 완화해서 멜라민이 든 중국산 분유가 수입될 수 있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마 정부에 대한 불만이 동시에 폭발하게 되었고, 이는 회의 사전 준비를 위해 대만에 온 해협회 부회장이 10월 21일 타이난의 공자 사당을 방문하다 시의원이 이끄는 군중에게 봉변을 당하는 사건을 낳았고, 민진당과 재야 세력들에게 10월 25일 “중국산 저질 식품 반대 및 대만 지키기” 집회를 개최할 구실을 주었습니다. 이 집회에 60만(주최측 집계) 내지 20만(경찰 집계) 명의 군중이 모였다고 하니, 국민의 60%가 중국과의 대화를 지지하고 있다는 마 정권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반대가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중국 해협회 회장은 11월 3일 대만에 와서 7일에 대만을 떠났는데, 도착하기 전부터 시작된 시위는 11월 7일에 있었던 마 총통과의 면담을 앞두고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이 대담에서 해협회 회장은 마 총통에게 ‘총통’이라는 호칭 대신 ‘대만의 위대한 지도자’라는 표현을 썼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일들이 ‘대만 주권 지키기’ 운동의 빌미가 되고 있는데, 특히 이번에는 많은 대학생들이 시위에 참여를 했습니다.
해협회 회장의 대만 방문 기간 동안 내내 타이뻬이에서는 많은 시위가 있었습니다. 정부는 부회장에 대한 거친 항의 사건도 있고 해서 그랬는지 이번에는 거의 국가 원수 경호 수준의 경호를 했고, 막강한 경찰력을 동원해서 시위를 철저하게 봉쇄했습니다. 그로 인해 시위가 더 격렬해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충돌과 희생이 발생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어떤 사람은 7,80년대의 민주화 운동 당시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하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시위가 격렬했고, 경찰과 시민 양측에서 많은 희생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해협회 회장이 돌아간 후 학생들은 집시법 철폐를 주장하며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농성을 학생들은 ‘들딸기 학생운동’(野草莓學運)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행정권을 남용한 마 총통과 행정원 원장의 사과, 책임 당국자의 사퇴, 위헌적인 집시법의 폐지와 인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자유광장에서 실시간 현장중계를 하며 지금까지 농성을 하고 있고, 전국 주요 도시에서 대학생들이 이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미국 달러 환률이 1,500원대를 넘어서고,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35원대이던 대만 달러 환률이 이제 45원대에 들어섰으니 한국 경제가 얼마나 추락해 있는지, 그로 인해 우리 국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어졌을지 짐작할 수 있지만, 이곳 대만의 현실도 여러 가지로 답답하기만 합니다. 중국의 방해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자기 나라 이름조차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타이완 차이나’(Taiwan, China)라는 이상한 이름을 사용해야 하는가 하면, 총통이 총통이라는 호칭조차 듣지 못하면서도 중국과 대화를 해야 하는 수모를 겪고 있는 나라, 정치적으로는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다, 우리는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외치지만, 문화를 소개할 때면 중국의 옛 문화를 슬그머니 자신들의 문화인 것처럼 끌어들여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문화가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은근히 자부심을 내비치는 나라, 분명히 일제 식민지 통치를 통해 많은 수모와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그 시절을 가장 좋았던 시절로 회고하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일본을 동경하고 있는 나라, 첨단의 컴퓨터 산업 덕분에 경제 성장을 했으면서도 수많은 우상들을 섬기고 있는 나라... 이렇게 한편으로는 이해하고 동정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들을 가지고 있는 나라, 자신들을 추격해 오고 있는 경쟁상대로 생각해서 경계심과 약간의 멸시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국인을 대하는 이 나라에서, 한국에서 온 선교사로서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하며 어떤 편에 서야 할지, 아직은 마음을 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급히 행동하려고 하기보다는 더 관찰하고 배우고 기도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지금은 다만 대만 사회가 평정을 되찾아서 사람들이 신앙적인 대화에 귀를 기울일 여유를 갖게 되고, 한국 경제가 회복되어서 조금은 더 당당한 모습으로 대만 사람들을 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난 9일부터 22일까지 큰 딸 남지가 모아두었던 휴가를 내서 대만에 왔습니다. 2년 반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우리가 캐나다로 갈 형편이 못되니 큰 딸이 대신 대만으로 우리를 찾아 온 것입니다. 오랜만에 큰 딸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그 동안 다소 우울했던 우리 내외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돌아가고 나니 허전함이 더 크게 밀려옵니다. 그래도 큰 숙제를 하나 해결한 듯해서 마음이 후련합니다. 작은 딸은 언제 만나볼 수 있을지 아직은 기약이 없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라 했던 시편 기자의 말대로, 가족이 가까이에서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불행히도 무수히 많은 가족들이 정치적 이유 때문에, 혹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떨어져 지내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세상 모든 가정들이 화목하기를,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함께 지낼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2008년 11월 25일,
대만에서 구창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