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핑안(耶蘇平安)! 구창완입니다. 대만에서 두 번째 소식을 전합니다.
이제 말을 배우는 걸 빼고는 이곳 생활을 위한 거의 모든 준비가 갖춰진 듯합니다. 배로 부친 짐도 받아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다 갖추어 집 정리도 마쳤고, 한 마리 남아 있던 도마뱀(지난 번에 소개해드렸던 '삐후')도 밖으로 잘 몰아내서 이제는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까 조바심 내지 않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마뱀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집을 빼앗긴 것이 억울한지 이따금씩 방충망 너머로 집안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외국인 거류증도 나왔고, 휴대전화도 하나 개통했고, 은행계좌 개설도 신청을 했습니다. 남은 일은 더위에 적응하는 일과 모기와의 전쟁을 치르는 일입니다. 모기가 많다고 교인들에게 말했더니, 자기들은 별로 물지 않는다며, 외국인이라 특별히 모기가 달려드는 것 같다고 농담들을 했습니다. 스프레이 모기약, 일반 모기향, 전자 모기향에 테니스 라켓처럼 생긴 전기 모기 채 그리고 모기장까지, 모기와 관련된 온갖 것을 갖추고 모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한동안 씨름을 했더니 이제는 거의 승기를 잡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먹 거리에 신경을 많이 쓰던 아내는 이곳에서도 재료가 좋은 것인지(특히 유전자 변형 콩을 사용한 것은 아닌지), 단백질과 지방의 비율은 어떤지, 칼로리는 어떻게 되는지 한참을 따져가며 매일 슈퍼에서 까다롭게 장을 보아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만에서는 대만식으로 먹고 살자고 말하더니 막상 와서 보니 그렇게 해도 좋을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싸고 좋은 것을 찾느라 아침에만 문을 여는 자그마한 재래시장에 들러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도 합니다. 이곳 대만 남쪽 지방에서는 일상생활에서 거의 대만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시장 같은 데를 가면 배우고 있는 중국어(이곳 사람들은 ‘궈위’ 곧 ‘국어’라 부릅니다. 장개석 정권이 대만을 점령한 후 강제로 공용어로 만든 것이죠. 그래서 나이든 사람들 가운데는 중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데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가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영어는 더더욱 통하지 않구요. 그래도 아내는 특유의 대담함과 큰 목소리로 의사소통을 시도해서 목적을 달성하곤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언어 문제가 속을 썩일 것 같습니다. 대만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배우기에는 너무 머리가 굳은 나이가 아닌가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넘어서야 할 관문이니 어쩌겠습니까. 주님의 도우심을 바랄 뿐입니다.
중국어를 배우는 일 외에 한 가지 고정적인 과제가 생겼습니다. 월요일 저녁에 있는 기독교 동아리 모임에 참석하는 일입니다. English Fellowship이라 부르는 이 동아리 모임은 영어로 진행하는 기독학생 모임입니다. 전부 영어로 하는 것은 아니고, 전체적인 진행은 중국어로 하고, 찬양과 메시지만 영어로 하는데 그때는 중국어 통역을 해 줍니다. 30여명의 학생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데, 영어로 진행하는 모임이라 그런지 통역과 학생들이 많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CCM 노래들을 부르고 메시지를 전하고 다과를 나누며 친교를 하는 형식으로 2시간 여 동안 진행됩니다. 교목실에서 관리를 하기는 하지만, 18년 전에 미국에서 선교사로 왔다가 지금은 창롱대학 통역과에 교수로 있는 폴라(Paula)라는 여성과 하와이에서 공부를 한 일본인 청년 교수 요시, 그리고 중국어 통역을 하는 통역과의 여자 강사, 이 세 사람이 주로 책임을 지고 모임을 인도하는 듯했습니다. 나는 아직은 현지 상황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개성과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이 모임에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까지 관여를 해야 좋을지 몰라 아직은 관망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성급하게 나섰다가는 그들을 돕는 선교사가 되는 게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고 상처를 주는 협력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오래 겸손히 배우고, 정말 대만의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일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출석하고 있는 쫑쪼우(中洲)교회에서도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그 교회의 선교에 도움이 될지 기도하며 답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한국으로 치면 면 단위 정도밖에 안 되는 시골이어서 대중교통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대만은 시골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도시에도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있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어딜 가나 오토바이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매니어들이 멋을 내며 타는 거창한 오토바이는 아니고, 배기량 100cc정도에 시속 60km정도 내면 적당할, 스쿠터 수준을 조금 넘는 정도의 오토바이들입니다. 그런데 이 시골에도 어찌나 오토바이가 많은지 거리로 나가면 다니기가 불편합니다. 학교에도 곳곳에 큰 오토바이 주차장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걷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이해가 갔습니다. 워낙 덥기 때문이죠. 걸어서 기차역이나 교회를 오가는 사람은 우리 내외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걷는 걸 좋아한다고 대답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다들 걸을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를 놀라워하면서 오토바이를 장만하라고 말합니다. 학교에 갈 때도 걸어서 학교에 들어가는 사람은 저밖에는 없습니다. 모두 자동차를 타고 오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옵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타이뻬이는 조금 덜하지만, 오래된 도시여서 길이 넓지 않은 타이난 시는 오토바이 때문에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두어 번 타이난 시내를 갔다 온 우리 내외는 도무지 살고 싶은 곳이 아니라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나중에 보니 타이난 시내에도 비교적 쾌적한 곳도 있더군요. 그러니 무슨 일이든 일부만 보고 성급하게 판단 내릴 일이 아닙니다.) 이곳에 없는 물건을 구입한다든지, 약속이 있다든지, 그런 경우 불편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오토바이를 사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대중교통을 최대한 이용하며 살아보려고 합니다. 내게 부여된 사명이 오지나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찾아가 봉사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일이 아니어서 자동차가 필수요소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생활을 위해서라면 자동차 소유는 최대한 자제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그럴 형편이 되질 않구요.
그러나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타이난 시내와 연결되는 시외버스는 하루에 다섯 차례 정도밖에 없고, 그래도 비교적 자주 있는 기차(제가 사는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역이 쫑쪼우 역인데, 이 역에는 우리나라 통일호 내지는 그 이하 수준의 기차만 섭니다. 따로 고속철도가 있지만 당연히 비쌀 뿐 아니라, 타이난 시내와는 상관이 없고, 또 고속철도 역까지 걸어서 40분 걸리니 이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를 이용하려 해도 역까지 스쿨버스를 타지 않으면 40분을 걸어야 합니다. 그나마 토요일과 주일에는 수업이 없어서 스쿨버스가 거의 운행되지 않습니다. 쫑쪼우에 있는 교회에도 갈 때 올 때 교회차가 운행되는 시간에 맞춰야 하니 행동에 제약이 많습니다. 좌우지간 생활에 불편이 많기는 하지만 다른 도리가 없으니, 타이난이나 까오숑 같은 인근의 큰 도시까지 가는 대중교통편 정보를 수집해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결해서 이용할지 머리를 짜내고 있습니다.
제 연락처가 확정되었기에 알려드립니다.
<집>
* 한문주소: 中華民國 71150 台南縣歸仁鄕大潭村大潭1街51巷26號 丘昌完 先生先
* 영문주소: Ku, Chang-Wan / No. 26, Lane 51, Datan 1st St., Datan Village, Gueiren Township, Tainan County, 71150, Taiwan(R.O.C)
* 휴대전화: 0928-793-565 (국가번호 886) - 아내가 사용합니다.
<학교>
* 한문주소: 中華民國 71101 台南縣歸仁鄉長榮路一段396號 長榮大學 校牧室 丘昌完 牧師先
* 영문주소: Rev. Ku, Chang-Wan / Office of the Chapel, Chang Jung Christian University, 396 Chang Jung Rd., Sec. 1, Kway Jen, Tainan, 71101, Taiwan(R.O.C)
* 전화: 06) 278-5123 (내선번호 1038)
* 이메일: revcwku@chol.com 또는 kumogsa@mail.cjcu.edu.tw
어린이 날이네요. 여긴 아무 절기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소식을 전합니다.
2008년 5월 5일, 창롱대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