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화롯가 이야기들

빈처(貧處)

행복나무 Glücksbaum 2009. 7. 28. 10:58

"가난한 것이 비극이 아니라 가난한 것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비극이다.
 옛사람들 가운데는 ‘청빈’이라 하여 그 깨끗함을 자랑했다.
 그러나 나같이 속된 눈에는 가증스럽다.
 가난하면 貧이지, 무슨 가난에 淸 즉 깨끗함이 있으랴."
 
 

‘사흘 굶어 도둑질하지 않는 놈이 없다.’ 하는데 애당초에 가난할 바에야 깨끗하기라도 하고, 못 얻어먹을 바에야 끌끌하게 라도 해야 욕을 더하지 않고 자존심을 구제할 수 있다.
 
한적하고 자유로움 속에서 자기의 도(道)를 즐길 수 있어 ‘樂在其中’이라 했으니 이 얼마나 늘어진 팔자냐. 그러나 한적한 마을에 하는 일없이 누워 한 그릇의 밥이 입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켜 그것을 적빈(赤貧)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가족의 굶주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마음에 없는 짓이나 비루한 웃음이라도 웃어 가며 살아야할 것이니 개성이나 자존심만을 싸 가지고 지낼 수도 없다. 여기에는 최소한의 타협은 필요하리라. 그러나 죽을 밥으로 바꾸기 위하여, 누추한 셋방을 깨끗한 저택으로 올리기 위하여, 그리고 대단스럽지도 못한 남들과 어깨를 맞추기 위하여 내 신조와 고집을 꺾으며 한가로운 자유와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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