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겨울 추운 밤은 고요히 깊어 간다. 나는 자다가 꿈결같이 ‘으으으으’ 하는 소리를 들었다 행랑에 있는 아범 우는 소리다. 아범은 금년 구월에 그 아내와 어린 계집애를 둘을 데리고 우리 집 행랑방에 들었다. 그들에게는 지금 입고 있는 단 벌 홑옷과 조그만 냄비 하나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보기 싫게 생긴 딸 둘과 작은 애를 업은 홑 누더기와 띠, 아범이 벌이하는 지게 하나뿐이었다. 그 이튿날 아침 나는 그 아범의 울음 내력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어멈이 쌀가게 마누라를 알지요. 한번은 큰애를 누구를 주면 어떠냐고 그래요. 저는 줄 생각도 아니었어요. 그래도 마누라는 여러 말로 권하셔요. 그래 아범 어제 아침에야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임자 마음대로 하게 그려' 하지 않아요. 차마 발길이 안 나가는 것을 오정 때가 되어 데리고 갖지요 아이더러 그럼 저 마님 따라가 살려했더니 그래 걱정 말고 가요 하겠지요. 아범에게 한번 보이고 보내려 했는데 없어서 할 수 없이 도루 갔더니 계집애와 마누라도 벌써 떠나고 가버렸겠지요 밤에 그 얘기를 했더니 그렇게 아범이 그렇게 통곡을 했답니다."
그런 며칠 지난 어느 날 아침이다. 회수분은 길 떠날 행장을 차리고 "제형이 일하다가 도끼로 발을 다쳐서 일을 못하고 누었다니까 가보아야겠습니다.“ 하고 떠난 화수분은 일주일이 되고 보름이 지나도 아니 왔다. 정말 추운 겨울날이 되었다
어멈이 편지를 써달라고 하길 래 써서 부쳐까지 주었으나 회수분은 소식은 없다. 어멈은 어느 날 남편을 찾아 시골로 떠나기로 작정하였다. 어떤 날 추위가 풀려서 동생 S가 놀러 왔다. S에게 비로소 화수분의 소식을 들었다. 화수분은 시골 간 후 몸살이 나서 넘어졌다. 열이 몹시 나며 정신 없지 않았다. 그럴 때 어멈의 편지가 왔다. 그는 집안사람들이 말리는 것을 뿌리치고 서울을 향해 떠났다. 회수분은 백 리를 거의 와서 높은 고개에 올라섰을 때 소나무 밑에서 옥분과의 에미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이튿날 아침 나무 장사가 젊은 남녀의 시체와 그 가운데 막 깨어난 어린애를 발견하여 어린 것만 싣고 갔다.
자연주의 수법으로 다룬 전영택의 대표작이다. 화수분이라는 행랑 아범 가족의 비극을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필치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작품이다. 두 아이의 부모인 30대 젊은 부부는 순박하고도 둔한사람이다. 써도 써도 없어지지 않고 자꾸 불어나는 그릇 화수분이란 이름에도 불구하고 그들 부부는 가난을 못 이겨 서로 찾아 헤매다가 길가 소나무 밑에서 서로 껴안고 죽는다. 소설 끝 부분의 처참한 장면 묘사는 곧 자연주의 수법이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경향은 물론 자연주의이지만 마지막 부분은 인도주의적 분위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작가
전영택(1894-1968) 19191년 창조지의 동인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자연주의적인 경향과 인도주의적인 경향을 다룬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그의 자연주의는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철두철미 관찰하고 해부하는 서구의 자연주의 그 자체는 아니다. 그의 작품 소재는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취해졌으며 기독교적이다. 그리고 작중 인물들의 훈훈한 인정미로 주제와 수법이 소박했다. 어떤 작품도 화려하거나 장식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그의 작중 인물들은 결렬한 일상적 감정 폭발이 없는 일상인들이다. 대표 작품으로는 ‘생명의 봄’, 화수분, ‘바람 부는 날 저녁’, ‘소’,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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