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여린 싹으로 터져 땅 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 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본만 푸른 잎을 낼 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더욱 아래로 막힌 어둠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바늘 끝 같은 틈을 찾아야 했다.
어느 날 네가 사나운 비바람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할 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일 뿐
이었으나, 나는 믿었다.
내가 이 어둠을 온몸으로 부둥켜 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 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잎 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시. 이현주
담양, 대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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