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성은 나하 항이 내려다보이는 120-130m의 구릉지대 위에 있어 전망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물이 풍부하여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지형을 갖고 있는 곳이다. 한 때는 해외무역의 거점이었다. 1879년 왕국이 멸망 후 오키나와 현 일본군 주둔지로서 사용되다가 1945년 여자공예학교, 오키나와현립공업학교, 수리제일초등학고 등 학교로서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 성은 류큐 왕국의 왕이 머물던 곳이다. 그러나 확실한 축성연내는 알 수 없다. 다만 1427년 이전에 왕궁으로서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수리성은 1945년 오키나와 지상전 때 일본 제32군 사령부가 미군의 집중목표가 되어 엄청난 폭격이 진행되어 성의 형태가 완전히 없어졌다. 전후 미국은 군정청을 두어 오키나와를 직접 통치하게 되었으며 1950년에 수리 성터에 류큐 대학을 설립하고 성 주변의 건물은 재건하였지만 수리성 본전의 정비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2년 대학이 새 캠퍼스로 이전함에 따라 수리성 복원이 구체화 되었다. 오키나와 의 본토 복귀 20주년에 해당하는 1992년, 47년 만에 오키나와 지상전에 의해 완전소실 되었던 수리성이 재건되었다. 이것이 오키나와 섬 주민의 슬픔이다.
오키나와 섬의 류큐 왕국은 이 섬에서 독립된 왕국으로 존재해 있었다. 일본의 메이지 정부 이전까지는 하나의 독립 왕국으로 조선, 중국, 일본과 중계 무역을 통한 해상외교관계를 확보했던 국가였다. 그러나 류큐 왕국의 영토였던 오키나와 섬은 제2차 세계대전 후 27년간 미 군정청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972년 이후 ‘오키나와 반환협정’에 의거 하여 일본 영토로 복속되는 치욕을 갖게 된 땅이다.
'지구촌 구석구석 살펴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키나와 한국인 위령탑 (0) | 2006.11.17 |
---|---|
오키나와에 세워져 있는 청구지탑의 뒷 이야기 (0) | 2006.11.16 |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신한촌 (0) | 2006.06.03 |
일본 동경, 핫도리 세이코 가정 (0) | 2005.10.26 |
일본, 하코네 고라조각공원 (0) | 2005.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