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

고 송재회 목사를 추모하며

행복나무 Glücksbaum 2022. 11. 7. 03:12

그는 내 동기였다. 처음 목회 사작하면서 내 가까이에 있는 교회의 전도사로 와선 많은 도움을 요청해왔다.
난 그의 요청을 받고 기꺼이 청년을 위한 헌신예배 설교나 중고등 학생 계절별로 성서 특강을 다녀 온 것 같다.
그 교회 담임목사와는 목사안수 동기이다.
늘 만날 때마다 고맙다고 한다.
그가 거향교회 내려가고 난 네번째 교회로 자리를 옮겼고 교회 목회 전념했다. 두어번 설교차 교회를 방문하여 밤을 지새우며 정담을 나누었다. 순천에 있는 교회로 옮기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마지막인 것 같다. 그때쯤 주위 목사들이 송목사 내외가 지주 금식가도를 한다는 전언을 보내왔다. 그리곤 태백산 기도원에 들어가 40일 단식기도를 하다가 피를 토하고 의식을 잃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총회 선교국으로 암자를 옮겨 국외출장으로
그외 마지막 송별을 하지 못했다.

그의 아들을 원주영강교회에서 우연하 만나게 되었고 그간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이모집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고 송재회 목사의 ‘기도문’이다.

“오 주여,
자기 몫을 주장하는 목소리 커질때면
나는 항상 그늘진 오동나무 밑에 호올로
외로운 가난도,
아픔도,
서러움도
밖으로 소리내지 않고
옷깃으로 감춰 그냥
착하게만 살고 싶은
시골 소년이었습니다.

운동장의 아이들 공차기하다
다투고 땅 뺏기하다 싸우듯 우리사는 세상동네
얼굴 붉히는일, 마음 아픈일 너무많아,
그래도 나는 논둑길이 좋아 메뚜기 잡고
오솔길이 좋아 송이버섯을 따는
그냥 철없는 듯 살고 싶은
전라도 머슴아었습니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교실 유리창 너머
공차기하는 아이들 너머
땅뺏기하는 아이들 너머
오동나무 밑 작은 나를 관심해 주셨듯이
주님, 논둑길 걷는 나 오솔길 걷는 나를
눈여겨 보시고
아, 그렇게 변두리에 있는 나를
아, 이렇게 작은 나를
사랑의 걸음으로 만나 주셨습니다.

사랑은 가슴있는 자의 몫이기에
귀를 잃어 음성듣지 못하여도
눈을잃어 모습 보지 못하여도
가슴만은 잃지않아,
우리 어머니 화로에 불씨담듯,
주님의 사랑불씨 내 가슴에 가득담아
다둑거리고
또 다둑거리게 하옵소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던
베드로 안드레 형제를 제자로 불러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기도문, 27. 5.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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