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강 건너 산비탈 마을
기차가 지나갈 때
손 흔들었지
창밖으로 모자를 흔들던 이가
바람에 모자를 놓쳤을 때
보기 좋았지
어른이 되어 기차를 타면
창밖으로 모자를 흔들고 싶었지
강 건너 앵두꽃 핀 마을
아이들이 손을 흔들면
창밖으로 하얀 모자를 흔들다
명주바라에 놓아주고 싶었지
모자를 열 개쯤 준비해
강마을의 아이가 손을 흔들 때
하나씩 바람에 날리는 거야
KTX는 시속 삼백 킬로미터로 달리지
손을 흔드는 아이도 없지
기차는 좀 느리게 달려야 해
사람은 좀 느리게 살아야 해
사람이 기차고
기차가 사람이야
미친 듯 허겁지겁 사는 거 부끄러워
시속 삼십 킬로미터면 강마을
아이들과 손 흔들 수 있어
시속 이십 킬로미터 구간에선
초원의 꽃들과 인사 나눌 수 있지
시속 십 킬로미터면 초원의 소들에게
안녕, 무슨 풀을 좋아해? 물을 수 있어
목포에서 신의주
6박 7일에 달리는 거야
우리나라 강마을 아이들 모두 모여
하얗게 손 흔들다
모자를 찾으러 강물 속 풍덩 뛰어들 수 있게
시. 곽재구
[28.Mai.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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