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älbs/말과 말들...

“굥정부의 폭정과 민주주의 위기”

행복나무 Glücksbaum 2023. 2. 25. 16:18

부승찬에 대한 정치보복과 민주주의의 위기,
나에게 전략적 인내의 시간이 끝나고 있다.

최근 역술인 천공 측의 해괴한 해명의 요지는 이러하다. 작년 3월에 천공이 한남동 육군 총장 관저 방문 의혹에 대해 “갔어도 갔다고 말할 수 없고, 안 갔어도 안 갔다고 말할 수 없으며, 갔는지 안 갔는지에 대해서는 입장이 없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일컬어 NCND(neither confirm nor deny)라고도 하고, 전략적 모호성이라고도 한다. 핵무기를 보유했느냐에 대해 이스라엘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데, 대부분은 핵 보유를 시인한 것으로 해석한다. 천공 측이 이를 흉내 내는 걸 나는 이해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딱한 처지라는 점도 이해한다. 밝히고 안 밝히는 건 천공의 자유다. 얼마나 입장이 곤란하면 저러겠는가. 마찬가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남영신 전 육군 참모총장과 공관을 관리하던 부사관의 입장도 이해한다. 자신의 진술로 인해 과거 부하와 동료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걱정을 왜 안하겠는가.

처음부터 거짓말 한 자들이 문제다. 이들은 뻔뻔하게 거짓말로 무고한 사람을 고발하고, 현역 군인과 공직자에 대해 대놓고 거짓말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진상규명을 교활하게 방해하고 사적으로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은 반드시 심판받아야 한다. 이제는 진실 앞에 겸손할 줄 모르고 국민을 상대로 행정 권력을 남용한 책임을 물어야 할 시간이다. 위증과 무고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을 것이다.

이들은 부승찬 전 대변인에 대해 군사기밀 누출이라는 별건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하였다. 방첩사령부를 통해 부승찬 박사의 대변인 재직 시절에 대한 신상 털기가 본격화되었다. 정적에 대한 압수수색이 일상이 된 이 나라에서 새로울 것도 없는 고질적 현상이다. 권력이라는 완장을 차고 걸핏하면 뒤지고 다니는 판에 부 박사라고 해서 그냥 지나치겠는가. 게다가 방첩사령부는 용산의 지시가 아니라 “공익제보”에 의해 수사를 진행한다며 또 황당한 논리를 들이댄다. 그 공익 제보자는 누구인가. 무엇이 과연 공익인가. 이 역시 반드시 밝혀내야 할 중요한 진실이다.

내가 아는 부승찬은 한 때 고액 직장의 유혹도 뿌리치고 정직하게 공직과 정치의 길을 걸어 온 사람이다. 항상 군을 생각하며 양심을 지켰다. 어렵게 살아온 그에게 정 이런 식으로 정치보복을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나 역시 같은 방법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부 박사의 대변인 시절 행적을 털겠다면 나는 그들이 군 재직시절의 고위 장교답지 못한 행적을 공개할 것이다. 이런 행적이 낱낱이 드러나면 윤석열 대통령조차 부담스러울 거다. 이제까지는 아무리 그들이 밉더라도 군의 명예를 생각해서 참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전략적 인내의 시간이  끝났다. 실력이 아니라 권력에 줄 서는 방식으로 출세 가도를 달려온 그들이 과연 공직을 맡을 자격이 있는지, 국민들은 좋은 판단 기준을 얻게 될 것이다.

국군 방첩사령부를 지휘감독하는 국방부장관, 입만 열면 거짓말하는 대통령 경호처장은 자신들이 군 재직시에 과연 떳떳했는지 돌아보는 뼈아픈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언론을 통해 공개할지, 책으로 발간할 지는 더 고민해 보겠다. 그러나 한 번 시작되면 멈추지 않는다. 이런 진실 투쟁은 공직자가 진실을 말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 민주공화정의 두터운 방화벽을 재건하는 과정이다. 진실 앞에 겸손한 권력, 주저함 없이 진실을 말하는 언론, 정적 제거에 남용되지 않는 행정 권력, 즉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지난 30여년 간 절차적 민주주의는 그런대로 확립해 왔다.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초보적 민주주의는 훌륭히 성취했다. 그러나 공론과 검증을 통해 사회의 기준을 정립하는 숙의의 민주주의는 달성하지 못했다. 이것이 민주적 선거 제도는 갖추었으되 여전히 권력의 폭정과 기득권에 굴복하며 적대와 혐오로 얼룩지는 오염된 공론장을 감수해야 하는 왜곡된 민주주의의 토양을 형성하고 있다. 국민에게 고통이다. 그러므로 이 사태는 단지 천공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정치적 경쟁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는 열린 사회의 적들에 대한 투쟁이라는 점을 나는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글, 김종대

[25.Feb.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