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i-Di/하느님께 구합니다

묵상집 <2024 말씀 그리고 하루>

행복나무 Glücksbaum 2024. 3. 28. 07:25

그리스도교 신교 역사상 가장 오래전부터 출간된 묵상집인 헤른후트 묵상집. 독일 헤른후트 공동체에서 1731년 책의 형태로 매년 200만 여명이 애독하는 “로중”이다.
아주 짧은 말씀이 나를 무너지게 하는 힘들에 대항하는 “아주 작은 영적 무기”이다.
이 책은 매년 새로운 내용으로 출판되된다. 그렇게 매년 출판된 지 벌써 294년째다. 이 로중은 일반 책과는 달리 1년 365일 우리를 말씀묵상과 기도로이끌어 주는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을 알기 위해서, 먼저 이 책을 발간하는 공동체 헤른후트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 서문에 소개되어 있는  내용에 따르면 ‘주님이 보호하시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헤른후트 공동체는 300년 전 독일의 북동부 작센주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이 공동체의 창립자인 니콜라우스 루드비히 폰 친첸도르프(1700.7.9~1760.5.9)는 오스트리아 귀족 출신으로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그의 삶의 전기는 1415년 로마 가톨릭과의 마찰로 체코에서 화형당한 얀 후쓰의 후예인 모라비안 교도들과의 만남에서 일어났다. 그는 이들에게 정착할 곳을 제공하고 그들의 신앙전통에 기초한 헤른후트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이 공동체를 인정하지 않고, 이단심의까지 받아야만 했다. 이 때문에 친첸도르프는 자신의 믿음 색깔을 증명하고,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튀빙겐에서 신학수업을 받고 형제교회 감독으로 안수를 받는다. 1727년 7월 첫 작은 모임이 생긴 이후 1749년에 이르러서야 이 공동체는 드디어 교회로터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 친첸도르프는 20여년을 국내외로 떠돌아 다녀야 했다. 이런 시련의 시간을 거쳐 신교 전통에서는 드물게 헤른후트 공동체 280여년 역사를 지닌 그리스도교 믿음공동체가 되었다. 이 공동체는 경건주의 믿음공동체, 생활공동체, 그리고 모든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면서 기독교의 사회적 실천 디아코니아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로중은 바로 이 공동체를 지탱하는 영성의 토대인 것이다.

이 말씀명상집의 시작은 단순했다. 1728년 5월 3일 친첸도르프는 공동체의 찬양모임에서 다음 날을 위한 간단한 성서말씀을 전했다. 이 날을 시작으로 그는 저녁마다 간단한 성서말씀과 찬송을 전하면 다음날 아침 공동체원들이 집집마다 전했다. 이러한 말씀 전달 전통을 통해 헤른후트 매일 말씀 묵상과 기도서로 발전한 것이다.

“로중”은 군대에서 사용하는 “암구호”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군대에서 암구호는 자신과 부대를 보호하는 생명과도 같은 언어이다. 이런 뜻에서 보듯이 매일의 하느님 말씀명상은 우리의 영적인 삶에 생명을 공급하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5개로 구분된 말씀과 기도 중의 첫 부분인 구약말씀을 그 날의 ‘암구호’로 정하고 있다.

이 말씀명상집의 구성이 매우 독특하다.

첫 번째 말씀은 그 날 ‘하루의 로중’으로서 헤른후트에서 매년 약 1.800개의 구약성서에서 제비뽑기 방식으로 결정된다. 이런 제비뽑기는 하느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 ‘이 날’에 꼭 필요한 말씀을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기 가능한 것이다. 또한 제비뽑기는 뽑힌 말씀이 우리의 영적 삶을 지키는 암구호로서 작동되리라는 믿음에서 출발한 신비주의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감춰진 뜻을 알고 읽고 새기면 그날의 로중 말씀이 더욱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두 번째 말씀은 ‘가르침의 본문’으로 신약성서말씀에서 선택되는데, 앞에 있는 첫 로중이나 마지막 기록되어 있는 성서본문과 연결된 말씀으로 결정된다. 이 또한 매우 세심한 작업이다. 말씀을 깊이있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서로 연관된 말씀을 찾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세 번째 부분은 기도 또는 찬양시이다. 대부분 저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고, 간혹 이름이 없는 경우는 이 책자의 집필진이 쓴 것이다.
네 번째 부분은 첫 번째 성서본문으로서 이 말씀은 교회력에 따른 말씀이다. 이 말씀은 그 주간의 주제와 주일의 복음에 관련되어 있다. 마지막 성서말씀(두 번째 본문)은 에큐메니칼 성서읽기의 본문에서 따온 것이다. 이 본문을 4년 동안 계속 읽으면 신약성서를 한  번 읽게 되고, 구약성서의 중요한 부분을 8년에 걸쳐 읽게 된다.

많은 하루 말씀 명상집들이 있지만 로중이 갖고 있는 독특한 장점들이 있다.
첫째로 로중은 말씀명상의 품위와 깊이를 유지하는 힘이 있는 명상집이다. 여기에 기록된 말씀들은 어느 한 개인이 임의적으로 선택된 말씀이 아니라 공동체 스스로, 공동체원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선택된 말씀들이기 때문에 같은 성서말씀이라도 더 깊이 있게 다가오게 한다. 이어지는 성서말씀들은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어 말씀을 더 깊고 넓게 명상하도록 안내한다.

두 번째 특징은 로중은 말씀명상을 일상의 하나로 자리잡게 하는데 큰 힘이 된다. ‘말씀의 종교’를 강조하는 신교에서 정작 말씀의 영성이 빈약하다는 비판을 받는 요즘이다. 그 이유는 ‘말씀의 영성’이 일상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의 삶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그렇게 묵상된 말씀을 생명양식 삼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읽기나 묵상을 마치 아주 특별한 믿음생활의 하나로 생각하는 한 말씀의 영성은 형성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로중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말씀묵상의 일상화’로 이끌어 준다.

세 번째 특징은 이 로중은 ‘말씀의 영성’과 ‘기도의 영성’을 하나로 연결시켜준다는데 있다. ‘말씀과 기도’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두 기둥이다. 하느님의 말씀묵상하면서 그 말씀이 전하는 뜻을 새기는 말씀명상과 그렇게 깨달아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내어놓는 고백기도는 하나로 이어져야 한다. 기도 없는 말씀명상은 깊이 없고, 말씀 없는 기도는 허공에 흩어지기 십상이다. 말씀의 영성과 기도의 영성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다. 로중은 가능하면 더 깊게 명상할 수 있도록 말씀이 짧게 기록되어 있고, 다음으로 그 말씀과 연관된 고백으로서 기도문과 찬양시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가 자연스럽게 하나 되도록 도와준다. 기도문 하나하나가 너무도 감명된 기도문들이라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진정한 말씀명상은 흔히 말하는 큐티 말씀묵상 자체보다 자칫 말씀적용에 급급하게 한다. 물론 우리는 말씀에 따라 행동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더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조차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신 하느님 말씀 자체에 운동력, 힘이 있어서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어야 한다.(히 4, 12)
그리고 우리의 지정의(知情意)를 통해 말씀을 적용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제대로 깨달아지면 성령께서 그 말씀을 붙들어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에는 그 말씀을 믿는 사람에게 살아서 역사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살전 2,  13)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에 대한 해석이나 설명, 예화 없이 먼저 말씀 그 자체를 직접 대면하는 ‘소박하고 단순한’ 말씀묵상이 필요하다.
로중은 이런 말씀명상을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텍스트다. 군더더기 없이 우리에게 말씀에 더 깊이 빠지게 한다.
이 로중은 슐라이에르마허, 본회퍼, 코트비츠, 비헤른 등 수많은 신교인들에게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특히 행동하는 신학자로 20세기 후반에 신교의 신학과 실천에 큰 영향을 끼친 디트리히 본회퍼는 헤른후트 기도서의 애독자였다. 본회퍼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했다가 발각돼 2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고 전쟁이 마치기 직전 교수형으로 숨진 인물이다. 그는 1933년 히틀러가 국가사회주의를 주창하며 유대인 600만여 명을 학살하고 수천 만명의 희생자를 낸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쟁광인 히틀러에게 항거한 것이다.
그는 히틀러를 ‘적그리스도’로 보고 이에 저항하는 ‘고백교회’운동을 하면서 그리스도교 믿음을 지켜나갔다.

헤른후트 로중에 관련된 디트리히 본회퍼의 일화가 있다.
1939년 7월 미국 유니언 신학교 초빙교수로 있던 본회퍼는 당시 그의 심경을 그의 책 '공동의 삶(Gemeinsames Leben)'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
헤른후트 기도서는 단순한 성서말씀 구절에 그치지 않는다.
매일 주어지는 말씀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갈 길을 결정할 수 있게 한다.” 본회퍼는 1939년 여름, 미국에서 기록한 일기문에 아주 분명한 필치로 자신이 미국에 계속 머물 것인지 아니면 독일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로중 말씀을 읽으며 고민하는 흔적이 나온다. 그러한 고심을 하는 가운데 로중의 한 말씀이 그를 강타한다. “주님은 은을 정련하고 깨끗하게 하신다.” 말라기서의 이 한 말씀을 읽고 덧붙여 옆에 기록한다. “나는 나를 더 이상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님은 나를 잘 알고 있다. 결국 모든 행동과 실천은 분명하게 될 것이다.”
이 말씀과의 부딪침 이후, 본회퍼는 지체하지 않고 독일로 돌아온다. 그리고 저항운동에 가담한 본회퍼는 1943년 4월 5일 체포되고, 1945년 4월 9일 전쟁이 끝나기 바로 직전에 프로센뷔르크 니차슈용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된다.

살아가는 삶은 무게있게 새상을 등질 때는 거볍게!
“좋은 용기, 매일 아침 새롭게!”라는 문구는 우리에게는 순간순간 새로운 힘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무게가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꿋꿋히 버텨낼 힘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용기를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힘에 의지한다. 힘센 사람들과의 관계, 재물, 명예 등 자신이 내세울 만한 것들에 의지하여 용기를 덧입히려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로중은 단 두 개의 말씀을 통해 좋은 용기를 매일 공급받고자 처음부터 지난 300년간 매일 아침 새롭게 우리를 깨워왔다. 소중한 전통이요 보화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 하느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살아있는 생기로 채워주는 일종의 무기이다. 단순히 로중말씀은 신앙의 경건성을 유지하는 큐티에 그치지 않고 단순한 말씀 하나가 “영적 투쟁의 암호”로 무기처럼 역할을 하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는 처절한 절연의 순간이 있고 매서운 이별을 요구한다. 마치 십자가를 지고 뒤를 절대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주님의 명령처럼.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바로 말씀이 삶이 되어야 가능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을 진정으로 알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게 된다. 비록 짧은 두 개의 암호같은 말씀이지만 우리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주의 길로 우리의 발길을 옮기게 한다. 2024년 한해, 이 작은 로중을 통해 매일 매일 말씀으로 말씀하시는 분으로부터 “좋은 기운”을 공급받아 선한 세상 펼쳐나가길 바란다.



[30. Dezember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