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서화담'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외출을 했다가
길에서 우는 사람을 만났더랍니다.
"너는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
"나는 3살 때 눈이 멀어 지금 40년이 되었습니다.
전일에는 어디를 갈 때에는 발을 의지 삼고,
잡을 때에는 손을 의지해 보고.
음성을 듣고는 누군지 분별하니 귀를 의지해 보았고,
냄새를 맡고는 무슨 음식인지 살폈으니 코를 의지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두 눈만 가지고 보지만
내 손과 발, 코와 귀가 눈 아닌 것이 없었답니다.
어찌 수족과 코, 귀 뿐이겠습니까?
기간이 이르고 늦음을 낮에는 피곤할 정도로 보았고.
사물들의 모습과 색깔을 밤에는 꿈으로 봅니다.
그래도 아무런 장애가 없이 의심되고 햇갈리는 것이 없었는데,
오늘 길을 오는 도중에
두 눈이 갑자기 맑아지고
백태가 낀 것이 절로 열려 천지가 확 트이고
산천이 어지럽게 널렸는데
만물이 눈을 막고
온갖 의심이 가슴에 차여
손과 발, 코, 귀의 감각이 뒤집혀지고 섞여
모든 것이 정상을 잃게 되어 아득하니
집도 잊어버려
혼자 찾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울고 있습니다."
"너는 네가 의지하던 손, 발, 코, 귀에 물으면
그것이 응당 알 것이 아닌가?"
"내 눈이 이미 밝아졌으니 그것을 어디에 사용하겠습니까?"
"네가 다시 눈을 감아라. 즉시 너희 집을 찾아갈 것이다."
이로 본다면
밝다는 것은 믿을 바가 못 됨이 이와 같습니다.
오늘, 요술구경을 본 것도
요술쟁이가 우리를 속인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제 자신을 속인 것이외다.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 대문장가요, 실학의 대가이다.
'Wälbs > 화롯가 이야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부부의 사랑 (0) | 2007.06.24 |
---|---|
아버지의 조건 (0) | 2007.06.24 |
마이크 메도프, "허약한 신의 아이들" (0) | 2007.06.24 |
"인사부"(忍死符), [박지원 자음] (0) | 2007.06.24 |
저녁 종소리 [정채봉 지음] (0) | 2007.06.24 |